[세리머니의모든것]헐크…물폭탄…오버할수록짜릿해진다!

입력 2009-08-05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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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머니는 개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적잖은 상징성을 내포한다. 1990년대까지는 ‘헐크’이만수처럼 주먹을 들어올리는 수준에 그쳤지만 봉중근의 어퍼컷, KIA 나지완의 덕아웃가리키기, WBC 대표선수들의 태극기 꽂기, 히어로즈 선수들의 가슴 부딪치기처 럼 근래 들어서는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면서 상대팀과 관중에게 강력한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WBC마운드에꽂힌태극기를기억하는가감동세리머니하나에전세계가주목했다…나를표현하는수단서고도의심리전까지진화하는기쁨의몸짓,다양한개성연출
팬들은 시원한 홈런포에 열광하기도 하지만, 삼진을 잡고 포효하는 투수의 ‘어퍼컷’ 세리머니에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9회말 2사 후, 끝내기 안타를 친 타자는 동료들의 ‘뭇매’가 무서워(?) 그라운드를 내달리기도 하고 그 장면을 보는 상대팀은 더 큰 허탈감을 느낀다. 세리머니(Ceremony)는 야구 뿐 아니라 축구, 농구, 배구 등 다른 스포츠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기쁨의 몸짓’. 승리의 기쁨에 겨워 환호하는 스타의 몸짓은 사진기자들에겐 놓쳐서는 안 될 ‘아찔한 순간’이고, 팬들에겐 선수와 동화될 수 있는 ‘대리만족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세리머니 잘 하는 선수가 스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라운드 안에서 세리머니는 관중들에게 어필하는 또다른 볼거리가 된지 오래. 세리머니의 모든 것을 짚어본다.

○세리머니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

요즘 홈런을 친 선수들은 대부분 홈 플레이트를 밟은 뒤 자신만의 독특한 세리머니를 펼친다. 세리머니가 자신을 표현하는 또다른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말이다. KIA 최희섭은 한 때 홈런을 치면 양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 세우는 세리머니를 했지만 언제부턴가 그의 손가락은 덕아웃을 향하고 있다. 이에 대해 SK 김성근 감독은 “최희섭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팀과 하나가 됐다는 증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준비된 것이든, 즉흥적인 것이든 세리머니는 선수를 표현하는 하나의 표출 수단이다.

○세리머니의 불문율

프로야구 초창기, ‘헐크’ 이만수(전 삼성·현 SK 코치)는 홈런을 치면 양팔을 번쩍 치켜들고 만세를 부른다던지, 베이스를 돌며 껑충껑충 뛰어 올라 기쁨을 표시하는 등 유독 감정 표현에 강했다. 당시만해도 그의 남다른 뒷풀이는 상대팀에겐 ‘비호감’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그는 보복사구를 유난히 많이 맞은 아픈 기억도 갖고 있다. 이 코치는 “요즘 그 때 화면을 보면 창피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다”고 웃는다.

야구에서 상대방 덕아웃을 자극하는 세리머니는 해선 안 되는 불문율 중 하나. 일반적으로 그라운드 세리머니는 한국이 미국보다 그나마 더 역동적(?)이다. 빅리그에선 ‘정도 이상’의 세리머니의 경우, 반드시 보복 사구가 날아들기 때문. 반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상대방의 세리머니에 관대한 편이다.

○다양하게 진화하는 세리머니

지난 달 28일 잠실 삼성-LG전. 9회말 최동수의 끝내기 홈런이 터졌을 때, 덕아웃을 박차고 나온 LG 모 선수의 손에는 ‘생수통’이 들려져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끝내기 안타 때 선수들은 페트병에 담긴 물을 쏟아 부으며 승리의 기쁨을 즐겼는데, 이날은 페트병이 아닌 정수기 위에 올려 있는 큼지막한 생수통까지 등장했다. 삼성 한대화 수석코치는 “나가서 물 뿌리고 그런 모습을 보면 솔직히 격세지감을 느낀다. 우리 때는 그런 게 없었다. 상대팀 선배들이 무서워 좋아도 티 못내고 조용히 들어왔는데…. 덕아웃에서 선배들에게 맞는 게 세리머니의 전부였다”고 말했다.

○세리머니의 이미지 효과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과의 8강전. 한국의 2-1 승리가 확정된 뒤 서재응은 에인절스타디움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다. 야구팬 뇌리에 선명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명장면. 일본 팬들은 적잖이 비난했지만, 이 장면은 국제적으로도 큰 화제가 됐다. 세계 4강신화보다도,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서재응의 모습은 한국 야구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세리머니의 이미지 효과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하는 국내 구단들 역시 ‘세리머니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단순히 현수막 내걸고 기념 촬영하는 수준이 아닌, 역동적인 세리머니 연출도 각 구단이 고심하는 ‘마케팅 아이템’ 중 하나다.

○심리전에도 이용되는 세리머니

세리머니는 그렇다면 단순히 자신의 기쁨을 표현하는 것일까. 아니다. 분위기 싸움에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2007년 10월,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 선발로 나선 SK 김광현은 평소와 달리 마운드에서 액션이 화려했다. 삼진을 잡으면 상대방에겐 ‘기분 나쁜’ 웃음까지 지었고, 위기를 막고 이닝이 끝날 때면 마운드에서 껑충껑충 뛰어 올라 환호했다. 상대와의 기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훗날 김광현은 “상대가 에이스 리오스인데다, 분위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고 밝혔다. 2008년 또다시 두산과 만난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패전 투수가 된 뒤 김광현은 스스로 “너무 얌전했다”고 반성했고, 두 번째 선발이었던 5차전에선 다시 ‘전투 모드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는 6.1이닝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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