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배의열린스포츠]일본야구문화의결정체‘고시엔고교대회’

입력 2009-08-18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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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본 학회 출장길에 고시엔 고교야구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언젠가 한번은 보고 싶은 대회였다. 올해로 91회째를 맞는 고시엔 전국고교야구선수권 대회. 이 대회는 일본야구문화의 결정체이며, 일본야구의 로망을 상징한다. 경기장 바깥의 풍경은 1970년대 우리나라의 시골장터를 연상시킬 정도로 정겨움이 넘쳐났다. 대회가 열리는 2주간 하루 평균 7만 명, 연인원 90만 명 정도가 입장한다.

게다가 개막전부터 결승전까지 전 경기가 NHK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고시엔 고교야구는 단순한 야구대회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현대 일본의 정신문화와 고교야구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질서, 전통, 획일, 인내 그리고 경쟁이 고시엔 고교야구에 녹아 있다. 출전한 49개 학교 선수들의 획일화된 머리스타일이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그것이 일본고교야구의 정체성이니 함부로 평하기도 힘들다. 고시엔 고교야구에 유난히 명승부가 많은 이유는 단순하다. 토너먼트이고 상대에 대한 파악이 부족하다 보니 선취점을 내기위해 번트가 많다. 번트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추격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뒤지고 있는 팀의 역전이 언제나 열려있는 것이다.

이번 대회 예선에 참가한 야구부수는 4041개교이다. 일본의 고교야구 팀 수에 대한 통계가 천차만별인데 2009년 7월 일본고교야구 연합회가 공식으로 발표한 팀 숫자는 경식 4132개 학교, 연식 488개 학교로 총 4620개 고교이다. 그 숫자에 기가 죽기는 하지만 우리와는 구조가 다르다. 간사이의 명문 PL학원처럼 엘리트 위주의 팀이 있기도 하지만, 많은 팀들이 학교 클럽활동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지난 2007년 89회 대회는 ‘기적의 대회’로 기억된다. 야구특기생 한 명 없고, 주전 9명 중 6명이 170cm에도 못 미치고, 하루 연습시간은 2시간이 채 안되며, 감독도 국어교사가 이끄는 ‘순수 아마추어’ 사가키타(佐賀北)고가 1-4로 패색이 완연하던 8회 역전 결승 만루홈런으로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당시 대회에서 1승을 거둔 직후 팀 주장은 “1승만으로 사가키타고의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2승은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결국 우승했다. 우승직후 국어교사인 감독이 밝힌 비결은 “시간을 잘 지킨다.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 공부도 열심히 한다” 등 야구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수준을 떠나서 그들의 시스템이 부럽다.

일본도 입시 경쟁이 치열하지만 중등학생들은 누구나 클럽활동을 해야 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에만 매달리는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크다. 16만 일본 고교야구 선수의 ‘건강성’은 일본 사회의 ‘건강성’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다.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고시엔 본선에 올라왔지만, 프로는 커녕 야구로 대학진학을 못하는 선수도 많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고시엔 본선 진출의 의미는 계량화할 수 없다. 16만 고교야구선수들의 고시엔 본선을 향한 대장정은 개인적으로는 인생에 가장 의미있는 추억이고, 사회적으로는 일본야구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동명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라는 경구를 좋아한다.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로망과 스포츠의 '진정성'을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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