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베이스볼]적이된아들…“나를넘어라,그것이효도다”

입력 2009-08-27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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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으로.’ 서울고 강타자 김동빈(왼쪽)은 한화에 지명돼, 아버지가 코치로 활약하는 삼성과 적으로 만날 운명이다. 그러나 삼성을 위협할 타자로 성장해주길 아버지는 바랄 것이다. [잠실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지난 17일 개최된 프로야구 2010년 신인드래프트. 삼성 김용국 코치 아들인 서울고 내야수 김동빈은 6라운드에서 전체 45순위로 한화에 지명됐다. MBC-ESPN 이순철 해설위원의 아들 이성곤(경기고) 역시 한화 지명을 받았고, 경남고 이종운 감독의 아들이자 제자인 이정윤은 지역연고팀 롯데의 부름을 받았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처럼, 태어나서부터 야구를 보고 자란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잇는 경우가 많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KIA)의 아들 역시 초등학교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대를 이어 부자가 같은 길을 걸으면서 남모를 애환이 있게 마련. 이들에게서 그 뒷얘기를 들었다.

야구 패밀리 누가 있나

1990년 9월, 애너하임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애틀-캘리포니아전. 시애틀에서 함께 뛰던 켄 그리피 시니어와 그리피 주니어, 부자는 희대의 진기록을 남겼다. 당시 40세였던 아버지가 1회 선제 2점포를 때리자, 3번 타자였던 21세 아들이 솔로 아치를 때려 ‘부자 연속타자 홈런’이란 다시 나오기 힘든 역사를 썼다.

이들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국프로야구에서도 ‘부전자전’을 보여준 예는 적지 않다. ‘인천야구의 대부’로 불리는 김진영 전 삼미감독과 김경기 현 SK 코치가 대표적. SK 김성근 감독의 아들인 김정준 과장은 같은 팀에서 전력분석원으로 일하고 있고 경찰청 유승안 감독과 한화 유원상 역시 부자관계다. 박종훈 두산 2군 감독의 아들 박윤은 2007년 SK에 입단한 뒤 현재 상무에서 뛰고 있다. 전 LG 2군 감독 출신으로 현재 충훈고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인식 감독의 아들 김준도 현 SK 소속. 김호인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운영위원은 심판으로 재직 당시, LG에서 뛰던 아들 김용우와 ‘심판과 선수’로 직접 만나기도 했다.

부자 뿐만 아니라 그라운드를 나란히 누비는 형제도 많았다. 프로야구 형제 선수 원조로, 프로 원년 구천서-재서 쌍둥이 형제가 나란히 OB에서 뛰었고 양승관-후승(삼미,청보), 지화동-화선(빙그레), 윤형배-동배(롯데) 형제 등이 이름을 날린 ‘용감한 형제’들. 현재 프로 선수 중에는 정수근(롯데)-수성(히어로즈), 조동화(SK)-동찬(삼성) 형제가 있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김용국-동빈
삼성 코치 & 서울고·한화지명 선수

신인 전면 드래프트가 열리던 날. 삼성 김용국 수비코치는 초조한 마음으로 TV 생중계와 휴대전화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지난해 큰 아들 동영의 미지명으로 씁쓸한 입맛을 다셔야했던 김 코치는 작은 아들 동빈의 이번 도전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4라운드까지 아들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체념한 채 대전으로 이동하기 위해 짐을 챙기고 있을 때, 문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동빈이가 6라운드에서 전체 45번으로 한화에 지명됐습니다.’ 김 코치는 자기도 모르게 그만 만세를 외치고 말았다.

21일 잠실구장에서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한 부자(父子). 서울고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아들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얼굴을 붉혔다.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프로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이상 앞으로 쉬는 날이 없을 것”이라며 “캠프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고 기량을 인정받아 3년 안에는 1군에서 자리매김하라”고 진심어린 충고를 건넸다.

동빈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형인 동영을 따라 야구를 시작했다. 동영은 워낙 운동신경이 좋은, 타고난 야구선수였다. 동빈도 “형이 야구를 훨씬 잘 한다”며 몇 번이고 강조했다. 그러나 동영은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미지명이라는 고배를 마셨고, 결국 삼성 신고선수로 입단해 현재 상무에서 복무중이다.

이에 반해 동빈은 어린 시절 잘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 아이였다. 김 코치가 보기에도 야구를 하기에는 체력이 약하고 느린 발도 마이너스였다. 그러나 “야구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하는 아들을 말릴 방도가 없었다.

동빈은 아버지의 믿음에 부응하듯 서울고 2학년 때 대통령배 전국 고교야구대회에서 4할대 맹타를 휘두르며 타격·타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타고난 센스에 노력이 더해져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올 봄 황금사자기 대회에서는 주춤했지만 가능성을 인정받아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더 힘들다는 프로입단에 성공했다.

게다가 이번 신인드래프트에서는 김동빈을 비롯해 이순철 MBC- ESPN 해설위원의 아들 성곤 등 ‘야구인 2세’가 여럿 지명돼 화제가 되고 있다. 김 코치는 “당시 81학번이었던 또래들이 대체적으로 야구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 아이를 낳다보니 올해 2세들이 프로 입단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오랜만에 잠실구장에서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늘 원정이다, 캠프다 바빠 부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게 새삼 놀라운 듯 김 코치는 “왜 사진을 그동안 한 장도 안 찍었지?”라며 멋쩍게 웃었다. 동빈도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늘 원정으로 바쁜 아버지의 얼굴도 못 보는데 사진 찍을 겨를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김 코치는 아들에게 “열심히 해라” 이상의 충고도 하지 않는다. 동빈의 주 포지션은 3루수. 선수시절 같은 포지션을 맡고 있는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누구보다 많을 것 같지만 김 코치는 “내가 말을 하게 되면 충고가 아닌 잔소리가 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만약 이후에 아들이 1군에 올라와서 한화와 삼성이 맞붙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질문에는 한동안 생각을 하더니 “그건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며 웃었다. 팀이 이기길 바라지만 아들의 선전도 바라는, 코치와 아버지의 복잡한 마음이었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못하면 호통칠 거야.’ 청소년대표로 선발된 아들 이성곤(왼쪽·경기고 3학년)이 ‘호통해설’로 유명한 아버지 MBC-ESPN 이순철 해설위원의 ‘훈수’를 듣고 있다. [신월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이순철-성곤
MBC 해설위원 & 경기고 유격수

이순철 MBC-ESPN 해설위원의 아들 성곤은 경기고 야구부 3학년 유격수다. 청소년대표로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선발됐다. 드래프트에서 한화의 10라운드 지명을 받았으나 아버지의 모교인 연세대로 진학할 예정. 이 위원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자원했다. 힘든 길이란 걸 알았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국가대표 승마선수 출신인) 집사람도 뜻을 존중했다”고 했다.

유명 야구인 아버지를 둬서 얻는 이점은 집에서도 원 포인트 레슨이 가능한 점. 이 위원은 “학교 지도자가 가르치는 방식을 존중해줘야 하기에 기본기 위주로만 가르친다”고 밝혔다. 반면 ‘이순철의 아들’이란 꼬리표는 평생을 짊어져야 될 부담일 수도 있다.


이 위원은 아들을 후배 야구인 차명주가 운영하는 트레이닝센터에 보내고, 대표팀에 선발된 최근엔 스케줄이 되면 데리고 다니면서 훈련을 봐주기도 한다. 아버지가 아닌 해설가로서 이 위원은 “주루 센스가 괜찮다. 어깨도 좋아서 투수 전업도 고려하고 있다. 단 수비와 타격은 아직 응용이 필요하다”고 야구선수 이성곤을 평가했다. 또 “아시아청소년대회를 해설하게 됐는데 아니다 싶으면 (호통에) 예외를 두지 않겠다”고 웃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아빠들의 남모를 고충

KIA의 ‘정신적 지주’이자 ‘바람의 아들’인 이종범의 아들 정후 군은 초등학교 5학년인 지금부터 야구에 싹수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야구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는 쉽지 않다. 특히 감독과 선수로서 같은 팀에 있게 되면 더 그렇다. 개성중학교에 다니던 아들 정윤을 자신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경남고로 영입(?)하면서 아버지 이종운 감독은 고민이 많았다. “내 애를 달리 어디로 보내기도 그렇고, 막상 받아들이자니 주변 시선이 걱정됐다”는 게 이 감독의 말.

결국 그는 ‘보다 더 엄격하게 아들을 가르치자’고 다짐했고, 이를 실천했다. 게임 중 실수를 하면 가차없이 질책성 교체를 하길 여러번. 다른 선수, 학부모에게 불평을 듣지 않으려면 그 길밖에 없었다. “아빠는 감독이고 아들은 선수였으니, 쉽지 않았다”는 이 감독은 “아들이 나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제 몫을 해준 아들이 고맙다”고 했다.

이 뿐 아니다. 대스타인 아버지는 그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KIA 이종범의 아들, 정후(서석초·5학년)는 아버지의 옛 포지션인 유격수를 맡는다. 3학년 때 시작했는데, ‘혼자서 다 한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야구를 잘 한다. 아빠를 빼 닮아 발도 빠르다. 아들이 직접 뛰는 모습을 당연히 보고 싶을 터. 그러나 이종범은 “‘누구 아빠 왔다’는 소리가 부담스러워 경기장에 자주 가지 못한다”고 했다.

아들은 정작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한데 아빠가 제발이 저린 듯하다. 아빠가 대스타여서 아들이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지만 “어려서인지 아직 그걸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종범은 “본인이 원한다면 끝까지 야구를 시킬 것”이라며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갖고 항상 노력한다는 자세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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