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국의사커에세이]‘유망주뺏기기’남의일아니다

입력 2009-09-04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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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굴지의 기업들이 특허권을 대량 보유한 특허괴물(Patent Troll) 회사로부터 수조원대의 소송을 당하면서 산업체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가난한 기업이나 연구기관들로부터 특허를 사들여 나중에 대기업들의 목덜미를 낚아채는 이들을 가리켜 ‘현대판 봉이 김선달’로 부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치밀한 전략을 구사하는 국제적인 전문가 집단이다. 자칫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버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 국가차원의 대응책도 연구되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은 조용하지만 축구계에도 머지않아 국제적인 사냥꾼들이 상륙할지도 모른다.

‘테베스 파동’으로 잘 알려진 MSI(미디어스포츠인베스트먼트)와 같은 거대 에이전시가 구단들에 앞서 유망주를 싹쓸이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알려진 바와 같이 2년 전 테베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할 당시 맨유는 전 소속팀 웨스트햄이 아닌 MSI와 임대협상을 했다. 소유주가 MSI였기 때문.

이후 MSI의 선수 소유권 적법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결론적으로 국제축구연맹(FIFA)는 합법, 잉글랜드축구협회(FA)는 불법이라는 기조를 유지했다. 결국 MSI는 이번 여름 테베스를 맨체스터 시티에 500억원이 넘는 돈을 받고 소유권을 완전히 넘겼다.

비슷한 사례는 한국선수에게도 발견된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안정환이 시미즈 S-펄스로 이적할 당시 170만 달러에 달하는 이적료를 전 소속팀 부산 아이콘스에 지불한 것은 시미즈가 아니라 일본의 매니지먼트사 PM이었다. 올 여름에도 브라질 코린치안스 구단은 2명의 선수를 FC바르셀로나에 팔았는데, 정작 돈을 챙긴 것은 구단이 아니라 선수의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던 한 사업가였다. 코린치안스가 이 선수들을 영입할 당시 막대한 이적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 이 사업가에게 선수들의 소유권을 넘겼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에겐 낯설지만 남미에선 선수 소유권을 사고파는 일이 하나의 비즈니스로 정착했다. 테베스 파동은 이러한 남미의 분위기에서 태동했다고 보면 된다. ‘지분 쪼개기’도 횡행하는데 남미 선수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주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등장해 골머리를 앓았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런 선수사냥은 이제 유럽으로도 번지고 있다. 특허괴물은 특허권을 입도선매하는 것이지만 선수에 대한 소유권은 초상권을 보유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대리권(에이전트 계약)은 FIFA 규정상 2년을 넘을 수 없지만 초상권을 사고파는 것은 일종의 상거래 행위로 간주돼 이러한 법망을 피하고 있다.

따라서 MSI, SEM 등의 거대 에이전시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한국의 유망주들을 어린 나이에 입도선매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금 한국축구의 상황은 이러한 사냥꾼들이 군침을 흘릴만하다. 완전한 클럽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아 프로계약을 맺기 전에 선수를 낚아채 가면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선 축구협회와 프로연맹, 클럽들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지쎈 사장.
스포츠전문지에서 10여 년간 축구기자와 축구팀장을 거쳤다. 현재 이영표 설기현 등 굵직한 선수들을 매니지먼트하는 중견 에이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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