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기자의베이스볼벤치스토리]김민우,세번의기회…두번의실수…

입력 2009-09-05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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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의기회…두번의실수…김민우는더강해지고있다
기회는 딱 세 번이었다.

2001년 말, 현대는 용병 퀸란을 내보내고 3루를 비워뒀다. 공·수·주를 두루 갖춘 특급 내야수가 입단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계약금 3억원을 안기며 잔뜩 기대에 부푼 것도 잠시. 그 선수는 2002년 25경기에서 41타수 8안타를 쳤다. 이듬해에는 2루수 박종호가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삼성으로 떠났다. 또 그 다음 해에는 유격수 박진만이 역시 삼성으로 FA 이적했다.

그래도 현대는 매번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조만간 그 선수가 잠재력을 보여 줄 거라고 믿었다. 2003년에도, 2004년에도, 출장 경기 수가 ‘20’을 못 넘길 거라곤 미처 예상 못한 채로.

그 후로 5년이 더 흐른 지금, 김민우(30·히어로즈)는 담담하게 말한다. “검증되지 않은 선수를 위해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린다는 게 얼마나 드문지 알아요. 그 기회를 놓친 제 탓이지요.” 두 차례의 뼈아픈 판단 미스가 없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인생인데 말이다.

○두 번의 잘못된 선택, 아버지의 눈물

입단 후 첫 전지훈련. 그는 스위치 히터에 도전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자신감이 충만하던 때였다. 귀가 솔깃했다. 게다가 자체 청백전에서는 좌타석에서 2안타를 쳤다. 어깨가 으쓱했다.

“주변에서 모두 치켜세워주니 나 잘난 맛에 살았다”는 그의 첫 번째 섣부른 선택. 청백전과 실전은 달라도 한참 달랐고, 두 마리 토끼는 양 갈래 길로 멀리 달아났다.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믿었던 2004 시즌. 이번엔 더 잘못된 두 번째 선택을 했다. 병역비리, 그리고 8개월의 징역형. 마음의 병이 너무 심해 탈모 증세까지 겪었다. “더 이상 추락할 데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경험을 한 거죠.”

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결심한 계기는 따로 있었다. 아버지의 눈물이 묻은 편지 한 통이었다. ‘그 때 너의 잘못된 판단을 말리지 못한, 이 못난 아버지를 용서해라. 정말 미안하다.’ 그는 펑펑 울면서 다짐했다. 욕심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제대 후 상황은 당연히 이전과 달랐다.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전쟁. 하지만 그의 마음가짐도 달라져 있었다. 오른쪽 타석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몸이 안 따라주면 오기로 다잡았다. 나아지고 있다는 걸 느낄 때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말한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때 이후 저 밖에 모르던 성격이 많이 변했거든요. 그 어떤 후회도 원망도 없습니다.” 그렇게 그는 ‘스타’ 대신 ‘어른’이 됐다.
어느덧 우리 나이로 서른 하나. 그래도 그는 비로소 꿈을 꾼다. 남들보다 시련이 길었을지 몰라도, 그만큼 더 오래 그라운드에 남아있겠다는, 소박하지만 절박한 바람이다.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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