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베이스볼]수술의기적?…피나는노력만있을뿐

입력 2009-09-10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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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토미존 서저리를 받은 삼성 배영수. 올 시즌 생애 최악의 부진을 보였던 배영수는 내년이면 수술 후 4번째, 복귀 후 3번째 시즌을 맞게 된다. 스포츠동아DB

배영수를통해서본토미존서저리
2007년 1월, 수년째 팔꿈치 통증을 안고 살았던 배영수(삼성)는 결국 토미존 서저리(인대접합수술)를 받았다. 1년간의 재활을 거쳐 현장에 복귀한 지난해 9승8패 방어율 4.55를 기록했다. 지난해는 배영수 본인도 ‘재활 과정 중’이라고 생각했고, 올해는 예전 구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과는 영 딴판이었다. 23게임 등판에 1승12패, 방어율 7.26. 그야말로 참담했다. 2004년 17승2패 방어율 2.61로 페넌트레이스 MVP를 차지하는 등 한때 마운드를 호령했던 그의 성적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최악의 상태에서 선택한 수술

그가 먼저 찾아간 이는 제임스 앤드루 박사였지만, 앤드루 박사는 팔꿈치 상태를 보고 수술이 어렵다며 “수술을 하겠다고 하면 해줄 수 있지만 이 팔로는 수술을 해도 공을 던지기 어렵다”고 했다. 배영수는 그래서 토미존 서저리의 대가로 꼽히는 앤드루 박사의 스승, 프랭크 조브 박사를 찾아갔고, 조브 박사에게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 그의 인대는 완전히 손상돼 있었다. 거기다 뼛조각도 발견됐고, 팔꿈치가 심하게 굽어있는 최악의 상태였다. 보통 토미존 서저리는 1시간 안팎이면 끝나는데 그는 무려 4시간 동안 대수술을 받았다. 왼쪽 팔목 인대를 떼어 오른쪽 팔꿈치에 이식하는 수술이었다.

○토미존 서저리를 받으면 구속이 빨라진다는데…

지난해 스프링캠프 때, 147-148km의 빠른 볼을 뿌리면서 자신감을 얻었지만 배영수는 5월부터 구속이 점차 떨어지더니 6월 이후에는 140km도 나오지 않았고, 이는 올해까지 계속 이어졌다. 올 초까지만해도 그나마 통증은 없었는데, 5월이 지나면서부터 통증까지 다시 찾아왔다.

배영수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구속이 회복되지 않아서였다. 한때 150km를 넘나드는 빠른 볼로 상대를 윽박질렀던 그는 올 시즌 줄곧 기껏해야 130km대 후반을 찍는데 그쳤다.

통상적으로 토미존 서저리를 받으면 수술 후 3년째부터 대체로 수술전에 비해 구속이 3-5km 더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화 류현진, 삼성 오승환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는 새로운 인대에 함유된 강하고 싱싱한 콜라겐이 더 탄력적으로 근육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라는 의학적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수술 후 모든 선수들의 구속이 빨라지는 건 아니다.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1999년 5월, 토미존 서저리를 받았던 서재응(KIA)은 재활 후 복귀 첫해였던 2001년 잘 해야 140km를 찍었다. 수술 전 150km안팎까지 기록했던 최고 구속이 10km가까이 떨어졌고, 이는 그가 그 이후 강속구 투수에서 변화구 투수로 변신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2005년 10월 역시 인대접합수술을 받았던 야쿠르트 임창용은 일본 진출 첫해였던 지난해부터 150km가 넘는 볼을 뿌렸고, 올해는 160km에 가까운 광속구를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임창용은 “토미존 서저리 덕분에 구속이 늘어난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 “재활 후 프로그램이 팔꿈치에만 집중된 게 아니었다. 어깨까지 전체적인 근육 강화를 할 수 있도록 돼 있었고, 전체적으로 몸이 좋아진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LG 트윈스 트레이너를 거친 권태윤 R&C 스포츠센터 원장은 “인대접합수술 후 구속이 늘어나는 것은 팔꿈치 통증에서 벗어난 선수들이 투구 메커니즘상 최상의 각도에서 볼을 뿌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개인별 상태에 따라, 그리고 재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구속이 빨라진다, 느려진다 명확히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재활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되나

통상 토미존 서저리를 받으면 첫 3주는 조직의 보호 및 근위축 지연 등 기본적인 것을 목표로 재활이 진행된다. 중간기로 볼 수 있는 4-8주 정도에는 근력의 증가에 중점을 두고 팔꿈치의 굽힘과 폄을 반복하는 등 기초적인 운동에 들어간다. 통상 8주 후부터 본격적인 근력보강에 들어가 수술 후 14주부터 ITP(Interval Throwing Program·단계별 투구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된다. 대개 26주, 즉 7개월 가까이 지나면 시뮬레이션 피칭까지 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인 내용에 불과하고 개인의 의지와 팔꿈치 상태, 그리고 재활에 얼마나 힘을 쏟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서정식 R&C스포츠센터 실장은 “대개 수술 전과 100%%에 가까운 컨디션을 되찾기 위해선 1년 6개월 정도의 재활을 거쳐야 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개인차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배영수의 고민

배영수는 “구단이나 코칭스태프도 답답해하지만 사실 가장 답답한 건 나”라면서 “수술이 잘못됐다는 말도 있고, 공을 잡은 시점이 너무 빨랐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니까 더 답답하다. 투구 밸런스 문제 때문에 구속이 안 나올 수도 있고…”라고 토로했다. “수술 후 3년 정도 지나야 수술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하니 내년에 모든걸 걸어보겠다. 지금 구속이 나오지 않는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해볼 수 있는 것은 모두 해 보겠다”는 다짐이다. “만약 내년에도 구속이 회복되지 않으면 (투구 스타일 변신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봐야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이기도 했다.

○정민태 코치의 기억

정민태 현 히어로즈 투수코치는 1992년 8월,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앤드루 박사의 집도로 토미존 서저리를 받았다. 한국 선수 중 최초였다. 당시 국내에선 토미존 서저리를 받은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 주위에선 ‘정민태는 이제 끝났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1년 7개월 재활을 끝내고 실전에 등판해 첫해 8승을 했던 정민태 코치도 한동안 스피드가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마운드에 오른지 2년 정도 지나서야 예전 스피드가 돌아왔고, 그 이후 5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던졌으니 정 코치는 팔꿈치 수술의 효과를 톡톡히 누린 셈. 정 코치는 “‘혹시 팔꿈치가 또 어떻게 되는게 아닐까’하는 스스로의 불안과 걱정을 이겨내는 게 제일 힘들었다”면서 “배영수가 고생하고 있지만 마운드에서 볼을 던지고 있다는 점 자체가 재활을 잘 이겨냈다고 봐야한다. 내년, 내후년에도 지금처럼만 노력한다면 스피드도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수술의 성패는 고통을 이겨내고 지루한 재활과정을 어떻게 잘 이겨내느냐에 달려 있다. 자기와의 싸움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믿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재응의 조언

배영수와 마찬가지로 수술 후 구속이 현저히 떨어져 마음고생이 심했던 서재응은 “영수가 우선 구속보다도 제구력에 주안점을 뒀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구속이 떨어진 상태에서 빅리그에 올라가 5년 가까이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내가 한창 잘 나갈 때 남들은 나보고 변화구 위주로 볼을 던진다고 했지만, 사실 내 구질을 평균적으로 보면 60-70%% 정도가 140km안팎의 직구였다. 직구 비율은 다른 투수들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았다”고 설명한 뒤 “구질을 다양하게 만들거나, 구속 회복에 마음을 졸이기보다 직구 제구력을 회복해 타자들하고 승부하면서 자신감을 찾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술 후 제법 시간이 흐른 2006년을 전후해 구속이 다시 회복됐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는 점도 덧붙였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인대접합수술의 대표적인 두 가지 방식. A는 동양에서 많이 쓰는 ‘원도킹 수술법’. 구멍을 한개 뚫어 새 인대를 접합하는 방식으로 한화 류현진, 삼성 오승환도 이 같은 방식으로 국내에서 수술을 받았다. B는 프랭크 조브 박사가 주로 쓰는 ‘8자 매듭법’. 건강한 인대를 부상 팔꿈치 위쪽과 아래쪽에 각각 두개의 구멍을 뚫고 8자 모양으로 끼우는 방식이다.사진제공 | R&C스포츠센터


토미존 서저리란?

‘토미존 서저리(Tommy John Surgery)’는 1974년 9월, 최초로 이 수술을 받았던 LA 다저스 좌완투수 토미 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의 부상명은 왼쪽 팔꿈치 내측 측부인대 파열. 당시 다저스 주치의였던 프랭크 조브 박사는 오른 팔꿈치의 건강한 인대를 왼쪽 팔꿈치에 갖다 붙이는 획기적인 방법을 시도했고, 토미 존은 수술 이후 14년간 선수 생활을 더 하면서 164승을 거뒀다. 현재까지 조브 박사에게 토미존 서저리를 받은 투수는 세계적으로 1000명이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투수들이 받는 수술로 알려져 있지만 클리블랜드 외야수 추신수도 이 수술을 받는 등 야수들도 가끔 투수와 똑같은 증상으로 이 수술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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