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국의사커에세이]에이전트정글‘드라마는없다’       

입력 2009-09-25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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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TV드라마와는 담을 쌓고 지내온 터지만 스포츠에이전트를 다룬 드라마가 나왔다기에 몇 편을 녹화해 얼마 전 유럽출장 중에 짬짬이 시청했다. ‘드림’(Dream)이라는 드라마인데 직업적인 호기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출장 중의 무료함을 해소하는데 꽤 효험이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슬그머니 걱정도 됐다. 괜히 스포츠에이전트라는 직업에 대해 환상을 심어주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스포츠에이전시는 마치 대형 연예기획사를 보는 듯 웅장하다. 몇 개의 자동 출입문을 지나야 대표실에 도달하게 되는 구조도 그렇고, 엄청난 규모의 회사빌딩도 그렇다. 필자는 지금까지 이 같은 매머드급 스포츠에이전시를 그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시작된 환상은 소속 선수에 대한 약물투여, 약점을 노린 비밀촬영, 녹취, 고발 등 파렴치한 행위들이 더해지면서 에이전트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뒤틀리게 만든다. 이후 드라마는 급격하게 ‘제리 맥과이어’ 류의 휴먼드라마로 반전되지만 드라마 초반의 굴절된 이미지는 두고두고 뇌리에 남았다.

스포츠에이전트 하면 누구나 ‘제리 맥과이어’라는 영화를 떠올리는데 솔직히 필자는 이 영화가 불만이다. ‘드림’의 에이전시 대표(박상원 분)처럼 몇몇 선수 생명쯤은 간단하게 끊을 정도의 파워는 없다손 치더라도 제리 맥과이어(톰 크루즈 분)처럼 성마른 고객(선수)에 붙어서 처절하게 살아가야 하는 존재는 더 더욱 아니다. 물론 선수와 에이전트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드라마도 이를 간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신뢰는 에이전트가 선수를 위해 얼마나 정직하고 깔끔하게 일처리를 해주느냐 하는 ‘실적’과 직결돼 있다. 드라마와는 달리 에이전트 업계의 현실은 처절하다. 시장에 비해 에이전트들이 턱없이 많고 그나마 출혈경쟁을 하다 보니 창업과 폐업이 숱하게 반복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단행본이나 신문이 쏟아내는 기사들은 이런 현실은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 에이전트는 역동적인 직업이다. 그 점은 분명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만큼 체력적, 정신적으로 피곤한 직업이다. 필자의 경우 1년에 4개월 정도를 해외에 머무는데 체류기간 보다는 1년에 십 수번 반복해야 하는 시차적응이 더 어렵다. 때로는 밤낮이 바뀐 채로 며칠간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할 때도 많다. 내려오는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상대방과의 수 싸움을 이겨내는 일은 웬만한 체력과 정신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렇게 팍팍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려면 일 자체를 즐기지 않으면 안 된다. 스릴, 긴장, 초조, 인내, 고독, 이런 감정들을 즐기고 다스릴 준비가 되어있다면 당신은 스포츠 에이전트로서 적격이다.

지쎈 사장
스포츠전문지에서 10여 년간 축구기자와 축구팀장을 거쳤다. 현재 이영표 설기현 등 굵직한 선수들을 매니지먼트하는 중견 에이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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