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 눈 3루로 유인하면 2루는 공짜야!

입력 2009-10-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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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의 교란작전 KIA 이종범이 8회말 1사 1·3루서 SK 정대현의 2번째 투구 때 상대 수비를 교란시키는 위장 스퀴즈번트를 시도하고 있다. 덕분에 1루주자 김상현은 여유있게 2루 도루에 성공했고, KIA의 분위기는 고조됐다.광주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키워드=위장 스퀴즈번트
한국시리즈(KS) 1차전은 SK의 디테일 야구를 KIA가 세밀함으로 뚫었다는 사실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압권은 3-3으로 맞선 8회말, 1사 후 4번 최희섭의 볼넷과 5번 김상현의 우전안타로 1·3루. 이어 등장한 이종범은 초구 볼을 고른 뒤 2구째에 스퀴즈번트 모션을 취한 뒤 재빨리 방망이를 거둬들였다.

이 순간 발이 빠르지 않은 1루주자 김상현이 2루로 뛰었다. 그러나 SK 포수 정상호는 2루에 송구할 수 없었다. 3루주자 최희섭(생각보다 빠름)이 홈으로 쇄도할 듯한 순간 움직임을 보여줬기 때문. 결과적으로 위장 스퀴즈번트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고, 2·3루가 되면서 KIA는 병살 가능성을 최소화시켰다.

SK 김성근 감독은 ‘이종범의 스퀴즈가 헛스윙’이라고 항의했지만 그마저도 인정받지 못했다. 볼카운트 0-2이 됐고, 이종범은 SK 마무리 정대현의 4구째를 밀어 쳐 1∼2루 간을 꿰뚫었다.

이렇듯 위장스퀴즈는 큰 경기 승부처, 1점 싸움에서 빛을 발하지만 타자 및 주자들의 센스와 벤치의 감각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다. 그 원조는 1995년 KS의 승장인 김인식(당시 두산) 감독이다. 김 감독은 3차전 연장 10회 1·3루에서 타자 이명수에게 위장 스퀴즈번트 작전을 내렸고, 발 느린 1루주자 김형석에게 도루를 시켰다. 상대였던 롯데 배터리는 3루주자 김상호를 견제하느라 김형석의 도루를 두 손 놓고 바라봤다. 당시엔 야구 전문가들조차 “이명수의 스퀴즈번트 실수, 두산이 운이 좋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런 ‘오해’를 속으로 즐긴 김인식 감독은 7차전 3회 1·3루(3차전과 같은 주자)에서 다시 위장 스퀴즈번트를 걸어 2·3루를 만들었고, 곧바로 롯데 2루수 박정태의 ‘알까기’ 에러가 나온데 편승해 우승을 품에 안았다.

위장 스퀴즈번트를 비롯해 주자 1·3루 상황에서 야구의 작전 포메이션은 갈수록 진화했다. 1루주자가 일부러 런다운에 걸리는 사이 3루주자가 홈을 밟는 ‘사석작전’이 등장했고, SK는 김성근 감독 부임 이래 2·3루 상황에서 투수가 2루에 견제하도록 틈을 주고 3루주자가 홈스틸을 시도하는 전술을 창안해냈다.

그러나 당대의 전술가인 김성근 감독도 16일 KS 1차전에선 제자인 KIA 조범현 감독에게 허를 찔렸다. 김 감독은 이어진 1·3루에서 또 위장 스퀴즈번트를 대비했던지 김상훈 타석 볼카운트 2-2에서 피치아웃을 걸었지만 조 감독은 움직이지 않았다. 뒤이어 풀카운트에서 우전안타. SK의 디테일은 이렇듯 미세한 지점에서 균열됐다. ‘청출어람’이란 고사가 떠오른 순간이기도 했다.

광주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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