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가을이야기]예비아빠이재주의부푼가을꿈

입력 2009-10-20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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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주. 스포츠동아 DB

누군가 묻습니다. ‘2009년의 KIA에 한국시리즈를 경험했던 멤버가 누구누구 있죠?’ 사람들은 대번에 이종범과 이대진을 지목합니다. 조금 더 기억력이 좋은 이들은 장성호와 김종국의 이름도 끄집어냅니다. 가장 가까이에는, 2005년 두산에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던 최경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은 빠뜨리기 일쑤입니다. 1998년 한 타석, 2000년 한 타석. 그 때는 현대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이재주(36·KIA·사진)입니다.

워낙 멤버가 쟁쟁했습니다. 주전은 꿈도 못 꿨죠. 방망이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한 채 두 번의 한국시리즈가 막을 내렸습니다. 2002년 KIA로 옮긴 후에도 8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올 가을, 천금같은 기회를 맞이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어떻게든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같아요. 이런 순간이 또 언제 올지 모르니까요.” 얼마나 기다렸던 가을인지 모릅니다. 한국시리즈가 열리는 야구장 덕아웃에서 파이팅이라도 할 수 있는 게 마냥 벅차다는, 프로 18년차 베테랑의 생생한 증언입니다.

그는 곧 아빠가 됩니다. 2007년 말 결혼한 아내 김나연(32) 씨의 뱃속에서 딸 ‘지음’이가 8개월째 자라고 있습니다. 다음달이면 세상의 빛을 봅니다. 첫 아이를 만난다는 설렘이 커질수록 어깨는 무거워집니다. 게다가 야구는 갈수록 어렵습니다. 올해도 51경기에서 타율 0.198을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시즌이 중반으로 흘러가면서 점점 초조하고 힘들더군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도 걱정이 앞서더랍니다. TV로 지켜보고 있는 만삭의 아내가 혹시 크게 실망이라도 할까봐서요. 자랑스러운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받아들이는’ 미덕을 압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됐나’ 좌절하기보다는 내 역할을 스스로 찾아가는 거죠. 안타나 홈런도 좋지만, ‘고참의 역할’도 팀에 필요할 테니까요.” 원하는 만큼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없다면, 은퇴의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로 남고 싶다는 희망도 품어봅니다. “정규시즌 우승도 정말 좋았는데,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은 그 두 배가 아닐까요? 그날 하루만큼은 정말 마음 놓고 미쳐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비 아빠’ 이재주가 꿈꾸는 이 가을의 끝. 그곳은 바로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입니다.

문학|스포츠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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