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가을이야기]광길이동생광림‘우정과승부’

입력 2009-10-08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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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길 SK 주루코치(사진 왼쪽) 김광림 두산 타격코치

미군이 쓰다 버린 낡은 글러브. 하지만 소년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었습니다. 어쩌다 상태 좋은 글러브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머리맡에 고이 모셔두고 한참을 바라보다 잠이 들곤 했죠.

새 장비를 살 돈은 둘째 치고, 바나나 한 번 먹어보는 걸 ‘하늘의 별 따기’로 여기던 시절. 그래도 소년들은 행복했답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야구가 있었으니까요.

대전 자양초등학교 이광길(49)과 김광림(48). 이들 역시 춥고 배고팠던 1970년대 초반에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육성회장이었던 광길의 부모가 동네 아이들을 위해 야구부를 신설한 게 계기였죠. 한 동네에 살던 광길이 형이 매일 야구에 푹 빠져 사는 모습을 보자, 광림도 점점 야구에 대한 열망이 커져갑니다. 결국 광림의 어머니는 숫기 없는 아들 대신 광길에게 부탁합니다.

그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광림아! 야구하러 가자!” 아침에 형의 목소리가 들리면, 동생은 신이 나서 운동화를 발에 꿰고 서둘러 대문을 나섭니다. 그리고 날이 어둑어둑해지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야구를 합니다. 광길은 “형, 형” 하며 잘 따르는 동생이 귀여웠고, 광림은 늘 앞장서서 이끌어주는 형이 듬직하기만 했답니다.

둘은 결국 자양초 야구부 출신의 ‘유이한’ 프로 선수로 남게 됩니다. 광림이 졸업하자마자 야구부가 해체됐거든요.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이후의 길도 모두 달랐습니다.

그러다 재회한 건, 쌍방울 시절인 1996년입니다. 광길은 코치, 광림은 선수단을 대표하는 주장이 돼 있었죠. 1992년에 어머니와 영영 작별한 형, 그리고 4년 후 어머니를 하늘로 떠나보낸 동생. 둘은 서로를 위로하며 어린 시절의 꿈을 기억해냅니다.

13년이 흐른 2009년 10월7일 문학구장. 김광림이 2군에 있었던 재작년은 빼고 둘은 2년째 적진에서 마주봅니다. 이광길은 SK의 주루코치, 김광림은 두산의 타격코치입니다. 상대를 밟고 일어서야 하는 얄궂은 운명. 그래도 둘은 여전히 ‘그 때 그 시절’을 기억하며 입을 모읍니다.

“참 순수한 마음으로 야구를 했죠. 어렵지만 행복했던 시절이었는데….” 불타는 승부욕 만큼이나 뜨거운 남자들의 우정. 그래서 더 빛나는, 가을의 그라운드입니다.
문학|스포츠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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