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말한다]박충식의1993년KS 3차전

입력 2009-10-20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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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식. 스포츠동아 DB

15회까지홀로181개‘역투’
“몸은 호주에 있지만 저도 지금 코리언시리즈 보러 한국에 들어가고 싶어요.”

2003년 말 호주로 이민을 가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박충식(39·사진). 그는 현재 한국시리즈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며칠 전 경희대 동기인 KIA 최태원 코치와도 통화했다고 전했다.

그도, 팬들도 16년 전 가을의 전설을 어찌 잊으리. 1993년 해태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1승1패로 맞선 3차전. 삼성 우용득 감독은 신인으로 14승7패2세이브, 방어율 2.54를 기록한 잠수함 박충식을 선발로 내세웠다. 해태는 그해 5승2패 방어율 3.82의 문희수가 선발등판했다. 문희수는 묘하게 1987∼89년 3년 연속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모두 승리투수가 된 인연이 있었던 인물이어서 김응룡 감독의 낙점을 받았다.

“제가 광주상고를 나왔잖아요. (이)종범이는 고향팀에 지명됐는데 저는 선택을 받지 못해 서운했던 게 사실이죠. 정규시즌 때도 해태에 강했고, 한국시리즈에서는 더더욱 이기고 싶었어요. 그날 경기 전부터 컨디션이 아주 좋더라고요.”

국제전화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고향팀에 지명받지 못한 16년 전의 서운한 감정이 여전히 묻어났다. 실제로 그는 그해 해태를 상대로 3승2패 방어율 1.79로 강했다.

삼성이 2회말 선취점을 뽑자, 해태는 3회초 동점을 만들었다. 3회말 삼성이 2사 1·2루의 기회를 잡자 김응룡 감독은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을 등판시켰다. 6회초 홍현우의 좌중월 솔로홈런이 터지자 삼성은 6회말 이종두의 적시 2루타로 2-2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부터는 0의 행진. 해태는 결국 10회까지 101개의 공을 던진 선동열을 내리고 11회부터 송유석을 올렸다. 그러나 삼성 마운드에는 여전히 박충식. 15회까지 홀로 181개의 공을 던지며 해태 강타선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그가 던진 것은 공이 아니라 혼이었다. 결국 2-2 무승부.

“홍현우에게 홈런 맞은 것을 제외하고는 실투가 없었죠. 권영호 투수코치가 몇 번이나 마운드에 올라와서 바꾸자는 얘기를 했지만 제가 괜찮다고 했어요. 갈수록 공이 더 좋아졌고 힘든 줄을 몰랐어요. 끝장승부를 했더라면 저는 더 던졌을 거예요.”

그러나 삼성은 4차전을 잡았지만 내리 3연패로 한국시리즈에서 7번째 눈물을 흘렸다. 7차전에 다시 선발등판한 박충식도 4.2이닝 7안타 2실점으로 1-4 패배의 책임을 지고 말았다.

“주변에서 혹사라는 얘기도 나왔지만 다음해 14승을 거두고 방어율도 더 좋았으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 한 게임으로 선수생명이 얼마나 단축되겠어요. 그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한국시리즈가 되면 저를 기억하는 팬이 있잖아요. 후회는 없어요. 개인적으로 한국시리즈는 정말 무승부 없이 끝장승부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스포츠잖아요.”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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