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삼성 허삼영 감독의 확실한 철학 “데이터의 본질? 야구는 사람이 한다”

입력 2019-12-11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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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영 삼성 감독. 주현희 기자 teth1147@donga.com

[인터뷰] 삼성 허삼영 감독의 확실한 철학 “데이터의 본질? 야구는 사람이 한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KS)에 진출하며 4년 연속(2011~2014시즌) 통합우승, 5년 연속(2011~2015시즌) 정규시즌 패권을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는 최근 4년 연속(2016~2019시즌) 가을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낙점된 허삼영 신임 감독(47)은 선수 시절 1군에서 4경기(2.1이닝 4자책점)에 등판한 게 전부였을 정도로 선수 경력이 짧았지만, 은퇴 이후 전력분석의 대가로 이름을 알리며 자신만의 확실한 야구 철학을 정립한 덕분에 지휘봉까지 잡을 수 있었다. 최근 스포츠동아와 만난 자리에서도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답했다. 지난 3년간 팀을 이끈 김한수 전 감독에게도 “어려운 상황에서 팀을 잘 만들어주셨다”는 진심을 전했다.

-감독으로 맞이하는 첫 비시즌이다.

“전력분석을 할 때는 ‘어떻게 도움을 줄까’를 생각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싸울까’를 고민해야 한다. 업무의 확장이라고 본다. 큰 조직, 현장의 리더 역할을 하며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한다.”

-결정권자라는 게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결정권자이기 이전에 모두가 구성원이다. 나는 월등하고 우월한 사람이 아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선수들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그러려면 신뢰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조직을 이끄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야구를 잘하는 것은 2차원적인 문제고, 1차원적인 감정과 의식 변화 등에 대해 컨트롤하는 게 중요하다. 나와 선수들 사이에 벽이 있으면 자발적인 행동이 나올 수 없다. 코치님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하면서 의미 있는 ‘미션’을 부여해야 자기 일이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코칭스태프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겠다.

“코치님들에게는 분배적인 리더십을 요구할 것이다.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와 마무리캠프를 거치며 선수들의 기량 향상도 중요하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성과는 코칭스태프의 소통과 화합이다. 내년 2월 스프링캠프 때 그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코치들이 많은 의견을 낸다. 유익한 반대의견도 있다.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다 보면 결국 타협점이 나온다. 좋은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허 감독의 부임을 두고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파격’이다. 그때마다 오기가 생기진 않나.

“애초에는 감독은 내가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선수단과 첫 상견례 때 나를 오픈했다. ‘여러분처럼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하는데 왜 두렵겠나. 오히려 기대된다. 감독이 야구하는 게 아니다’고 했다. 선수들이 충분히 기분 좋게, 건강하게 야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 두려움 없이 가겠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다른 길이지만, 삼성 구단에 대한 자긍심이 있다. 내가 성장하고 가정을 꾸리게 해준 구단이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혜택을 받았으니 3년 뒤에는 지금보다 더 좋은 ‘라이온즈’를 만드는 게 목표다. 시스템과 색깔을 구축해야 한다. ‘액션 플랜’은 짰다.”

-팀 운영의 기본 원칙은 무엇인가

“신뢰다. 선수들은 본인을 위해 야구하는 것이다. 내가 (외국인선수 물색을 위해) 도미니카공화국에 머물고 있을 때 한 선수로부터 문자가 왔다. ‘감독님을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그래서 ‘나를 위해서 하지 말고 너를 위해 야구해라. 네 가정과 부모님, 자식을 위해서 하라. 내가 뭐라고 나를 위해 야구하냐’고 했다. 신뢰와 존중, 사랑은 모두 소통과 연결된다.”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 있다면.

“야구장에선 무조건 베스트 컨디션을 쏟아내야 한다. 그것도 나는 물론 구단과 팬들에 대한 신뢰다. 선수가 야구장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불성실한 태도는 아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선 강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무조건 칭찬을 하진 않는다. 권한을 부여하면 그에 따른 책임도 물어야 한다.”

허삼영 삼성 감독. 주현희 기자 teth1147@donga.com

-‘데이터 전문가’로 통한다. 허 감독이 생각하는 데이터야구의 본질이 궁금하다.

“야구는 사람이 한다. 나는 데이터를 아예 무시하지도, 맹신하지도 않을 것이다. 라인업 구성, 상대 매치업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코치들의 조언을 먼저 들을 것이다. 비시즌은 2020시즌을 위해 공부하는 과정이다. 감독은 공 하나하나, 5초 사이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직업이다. 전력분석을 할 때는 플랜이 잘못되면 수정하면 됐지만, 결정권자는 수정할 시간이 없다. 그런 과정들을 경험 많은 코치님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가르쳐주셔야 한다. 메시지를 달라’고 말씀드렸다. 선수들에게도 교체 타이밍과 작전 등을 통해 ‘감독이 이 경기는 잡으려고 하는구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멘탈과 부상 위험 등 데이터에 포함하지 않는 무형의 지표들도 있다.

“데이터로 모든 것을 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부상은 컨디셔닝 파트에서 매뉴얼을 짜고 있다. 효율적인 선수기용이 데이터의 기반이 될 것이다. 멀티포지션을 강조하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부상은 예측 불가능한 요소이기에 대비하는 차원이다. 무조건 멀티포지션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기본 포지션을 지키되 플랜B와 C를 대비해야 한다. 전력 누수를 막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두산이 왜 야구를 잘하나. 주전이 빠져도 표가 나지 않는다. 그게 강한 전력이다. 승리에 기여하는 선수가 한정적이면 언젠가는 무너진다. 주전과 백업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하위권 팀들의 공통 과제일 것이다. 선수의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장점을 부각하고 살려주려고 한다.”

-성공을 위한 키워드를 꼽는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야구는 실패의 스포츠다. 실패는 내가 한다. 김용달 타격코치님이 처음 오셨을 때 3시간 넘도록 독대했다. 걱정을 많이 하셔서 ‘코치님 방식대로 하시면 된다. 라인업은 코치님이 짜고, 대타를 기용해야 하면 말씀해 달라. 아니라고 생각하면 제가 말씀드리겠다. 대신 서로 존중하자’고 했다. 그렇게 꾸리면 아무 문제없다. ‘내가 실패했을 때 내게 책임을 전가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똑똑한 사람은 혼자 일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럿이 일한다고 하지 않나. 나는 선수들은 물론 불펜포수들에게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입장이다. 또 현명한 코치님들이 계시니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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