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석의 팁인] 문태영의 계약 불발과 귀화혼혈선수 시대의 종식

입력 2020-05-25 16: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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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영. 스포츠동아DB

KBL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 막을 내렸다. 미계약자에 문태영(42·194㎝)이 포함됐다. 창원 LG, 울산 현대모비스, 서울 삼성에서 11시즌 동안 뛰며 우승반지 3개, 한 차례 득점왕 등극 등 리그에서 어느 정도 명성을 쌓은 그는 최종 선택을 받지 못했다. 1년 뒤 다시 FA 시장을 두드릴 수 있다. 그러나 문태영의 나이를 고려하면 사실상 은퇴 수순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명예롭게 은퇴할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문태영의 FA 계약 실패에 따라 별도의 드래프트를 통해 한국무대를 노크했던 귀화혼혈선수를 더 이상은 KBL에서 볼 수 없게 됐다. 대학 또는 고교 시절부터 한국무대에서 뛰며 국적을 취득해 현재 KBL에서 활약 중인 귀화선수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2009년부터 특별 드래프트를 통해 한국무대에 뛰어들었던 귀화혼혈선수는 이제 더 이상 리그에 남아있지 않다. 전태풍도 2019~2020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그 시작은 2009년이었다. KBL은 외국 국적을 지닌 선수들 중 부모 가운데 한 명 이상이 한국 국적을 가졌던 이력이 있는 자는 귀화를 조건으로 KBL 무대에서 국내선수로 인정하는 규정을 신설됐다. 형평성을 고려해 신인드래프트와 별도로 특별드래프트를 실시했다. 첫 번째 특별드래프트에 참가해 선발된 선수가 전태풍, 이승준, 문태영, 원하준, 박태양 등이었다. 2010년 문태영의 형인 문태종이 이 드래프트로 한국무대에 가세했다. 미국, 유럽 등 프로무대를 경험한 선수들이 대다수여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KBL이 귀화혼혈선수 제도를 도입한 데는 리그 활성화라는 이유도 있지만 남자농구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가 가장 컸다. 실제로 전태풍, 이승준, 문태영, 문태종 등은 태국마크를 달고 국제무대에서 활약했다. 문태종은 한국남자농구가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데 큰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귀화혼혈선수 제도가 긍정적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3년 이 제도는 폐지됐고, 박승리가 마지막 수혜자였다. 그 해 서울 SK 유니폼을 입은 박승리는 한국무대에서 3시즌을 뛰는 동안 귀화를 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KBL에서 뛸 수 없었다. 박승리는 귀화 의사가 없었는데도 돈을 벌 목적으로 한국행을 결정했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당연히 대표팀에서도 뛸 수가 없었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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