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수비수의 ‘아름다운 충성’

입력 2020-01-2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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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충성’. 루카렐리가 영구결번이 된 자신의 6번 유니폼을 들고 감격해 하고 있다. 사진출처|파르마 공식 SNS

■ “파산 당한 팀 지키겠다”…세리에A 파르마의 ‘영원한 6번’ 루카렐리

구단 파산·강등에도 파르마 지켜
2017∼18시즌 1부 승격 이끌어
“내 심장이 시키는대로 했을뿐…”

현대 축구계에서 선수들의 이적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됐다. 정말 다양한 방식의 이적이 일어나고 있고, 그에 따라 계약조건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팀에 대한 충성도’는 옛말이 되어가는 요즘이다.

헌데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팀에 충성을 바치며 낭만을 보여준 선수가 있다. 바로 이탈리아의 수비수 알레산드로 루카렐리의 이야기다.

루카렐리는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던 선수는 아니었다. 1977년생인 그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적이 없이 세리에A 중하위권 팀에서 경력을 보낸 ‘평범한’ 수비수였다. 지난 2017∼18시즌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그런 그가 낭만적인 선수로 불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루카렐리는 2008년 파르마에 입단해 꾸준한 실력과 인품을 인정받아 2012년부터는 주장으로 활약한다. 하지만 얼마 뒤 루카렐리의 파르마는 재정적 어려움에 빠진다. 선수들은 유니폼을 직접 세탁해야 했고 구단의 버스 매각으로 원정경기 이동비용도 지불해야 했다. 결국 2015년 파르마는 세리에A 최하위를 기록하며 파산에 이른다. 파산으로 인해 파르마는 기존의 구단명을 박탈당함과 동시에 세리에D로 강등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구단명 박탈과 아마추어 리그인 세리에D로의 강등으로 파르마는 혼돈에 빠졌다. 파르마 칼초 1913이라는 이름으로 재창단된 후 선수들은 하나둘 팀을 떠났다. 주장 루카렐리에게도 여러 팀에서 제안이 왔다. 그러나 그는 ‘내 심장이 시키는 대로 파르마에 남는다’라는 낭만적인 말을 남기며 세리에D에서 경력을 이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루카렐리의 파르마 칼초 1913은 이후 거짓말 같은 드라마를 쓴다. 2015∼16시즌 세리에D에서 무패 우승을 거두며 세리에C로 승격하더니, 2016∼17시즌 세리에C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세리에B 승격에 성공한다.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파르마 칼초 1913은 기어이 2017∼18시즌 세리에B에서 2위에 오르며 세리에A로 돌아가는데 성공한다. 100년이 넘는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초로 4부리그 팀이 1부리그로 3년 만에 승격하는 저력을 보여준 것이다.

세리에A로의 승격을 확정지은 후 루카렐리는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남기고 은퇴를 선언했다. “저는 우리의 이야기의 일부로 이 엄청난 팀의 일원이자 리더였다는 점, 그리고 이 아름다운 셔츠를 입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리고 알레산드로 루카렐리로서 충실히 살아온 것에 만족합니다”. 이후 루카렐리의 등 번호 6번은 파르마 칼초 1913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된다.

거액의 돈이 오가는 현대 축구계에서 팀을 사랑한다는 낭만적인 이유 하나로 팀과 함께 고된 길을 걸었던 선수. 자본으로 팀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꾸는 현대 축구계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충성심을 보여준 루카렐리의 드라마는 지금도 이탈리아 축구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정훈 명예기자(한국외대 아랍어 전공) vientof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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