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여고 2학년 정호영. 동아일보DB
배구는 에이스 한명의 능력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래서 선명여고 2학년 정호영은 모든 여자구단이 놓치기 싫은 선수다. 아직 국제대회에서는 기대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잠재력만큼은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모든 팀들이 정호영을 잡기 위해 전략적인 판단을 하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번 시즌은 여자부 경기가 처음으로 남자경기와 분리돼서 실시된다.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때문에 시즌 개막도 22일로 늦춰졌다. 이 바람에 1라운드 경기는 2주일 사이에 마쳐야 한다.
숨쉴 틈 없는 경기일정이라 초반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는 구단은 분위기를 바꿀 기회도 없이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아예 시즌을 포기하겠다는 팀이 나올 수 있는데 이 경우가 문제다. 2005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흥국생명과 GS칼텍스는 치열한 ‘꼴찌경쟁’을 했다. 두 팀은 인천 도원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맞대결에서 꼴찌를 가렸는데 의도적인 서브아웃과 공격범실이 나오는 등 리그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플레이가 거듭됐다. 이번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사전에 방어장치를 만들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지난 2일 이사회에서 이 방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실무회의애서 상정했던 FA선수 등급제도와 FA자격부여 기준, 신인드래프트 방법의 수정 등의 안건을 이사회가 모두 부결시켰다.
이사회는 “제도들이 실행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필요에 따라 바꾸는 것은 명분이 없다. 제도를 한 번 만들면 오래가야 한다”며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더라도 몇 년의 유예기간을 둬서 각 구단이 새 제도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래를 생각하면서 제대로 된 제도를 만들자는 이사회의 뜻은 존중한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문제가 있다는 여자구단들의 뜻을 모아 18일 사무국장들이 다시 의견을 나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사회의 결의를 통해 확정되겠지만 모든 팀에게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정호영을 위한 새로운 룰이 탄생할 것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룰이 아니다. 각 구단의 시즌을 대하는 자세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순위를 떨어트리는 플레이가 나올 경우 리그의 위상은 급추락한다. 리그의 품격은 구성원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 15번째 시즌을 맞는 V리그가 연륜에 맞는 품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번 시즌 각 구단이 정호영 드래프트를 앞두고 정정당당한 플레이를 해줘야 한다. 팬들이 이번 시즌을 더욱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이유가 새로 생겼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