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배구대표팀 스테파노 라바리니 신임 감독. 사진제공|대한배구협회
● 박기주 이사의 건의와 오한남 회장의 결단이 만든 외국인감독
여자경기력향상위원회 박기주 이사가 23일 비 보도를 전제로 배구협회의 구상 일부분을 밝혔을 때 외국인감독을 언급했지만 듣는 기자조차도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봤던 일이었다.
여자경기력향상위원회 이사로 선임된 뒤 가진 첫 회의에서 그는 외국인감독을 영입하자고 건의했다.
“한국배구의 전환점을 만들고 뭔가 획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건의였지만 당시 회의에 참석한 어느 누구도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이들은 “우리 배구협회의 경제능력이 떨어져 외국인감독이 원하는 만큼의 대우를 해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게 조용히 사라질 뻔했던 아이디어는 오한남 회장 덕분에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살려냈다.
오 회장은 외국인감독에 큰 관심을 가졌다. “만일에 돈이 필요하면 협회의 출연금은 내가 부담하겠다”면서 영입에 나서보라고 비밀리에 지시했다. 박기주 이사는 “6명 현역 프로팀 감독의 능력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기존의 틀을 바꿔보자는 뜻에서 일이 진행됐다. V리그가 4월까지 벌어지는데다 구단사정에 따라 우리가 원하는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선정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어서 외국인감독 선임에 우선을 뒀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 4명 후보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라바리니
결국 라바리니 감독만이 남았다. 문제는 그도 현재 브라질리그에서 활동하는 현역 감독이어서 빨리 한국에 올수 없다는 점이었다. 아직 계약서에 도장도 찍지 않았다. 낮은 확률이지만 중도에 협상이 깨질 우려도 여전히 남아 있다.
박기주 이사는 “유럽에서 평판이 높은 지도자다. 나이도 젊고 올림픽에 꼭 나가야한다는 신념과 집념이 있다. 감독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꼭 올림픽 본선무대를 가야한다는 의지가 있어서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자리를 수락한 것으로 본다. 전 세계 배구인이라면 모두 아는 김연경의 존재도 한국행을 결정하는데 어느 정도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라바리니 감독은 브라질리그를 마치자마자 한국으로 이동해 대표팀을 지휘한다. 빨라야 4월 말 늦으면 5월 초까지 한국행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물론 예정보다 빨리 감독의 스케줄에 여유가 생기면 계약서를 마무리하고 우리 선수들의 경기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 방한할 계획도 있다. 협회는 감독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비행기 티켓을 보내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브라질리그의 일정 등 변수가 많아서 장담할 수 없다. 비행시간 등 왕복에 최소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최악의 경우 라바리니 감독은 배구협회가 보내주는 동영상과 프로필 자료만 보고 우리 선수들을 판단해서 대표선수를 구성해야 한다.
● 라바리니의 정확한 계약조건은
우리 선수들에 편견이 없을 감독의 눈과 역량을 믿지만 시한이 촉박하다는 점은 아무래도 꺼림칙한 대목이다. 배구협회가 밝힌 감독의 계약조건은 10~11월에 예정된 도쿄올림픽 아시아예선전까지다. 만일 도쿄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따게 되면 새로운 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제 한국 여자배구에 외국인감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된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팬들의 기대치는 엄청나게 높다. 외국인감독 시대에 중요한 것은 한국배구와 선수들에게 생소한 감독에게 올바른 정보를 주고 제대로 보좌할 코칭스태프와 통역을 구하는 일이다. 박기주 이사는 “설 이후 정식으로 공고를 내고 수석코치와 통역을 뽑을 계획”이라고 했다. 체력담당 트레이너는 감독이 데리고 오기로 했다. 과연 라바리니 영입은 독이 든 성배일지 한국배구의 축복일지 앞으로 더 열심히 지켜보고 한국 여자배구를 응원해야 한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