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베이스볼] 선수 차바퀴에 대못…번호판 떼가기도

입력 2011-07-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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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의 경계 속에서도 SK 구단 버스가 움직이기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해 5월 사직 롯데전이 끝난 뒤 이동하려는 SK 선수단이 팬들의 방해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테마 베이스볼 |구멍뚫린 야구장밖 스타들의 안전

차량 흠집내기 예사…펑크·도난사고 속출
연패에 성난 팬들 구단버스 막고 분풀이

CCTV·보안요원에도 ‘위험 무방비 노출’
외부인 접촉 봉쇄…성숙한 관중문화 절실


두산 최준석(29)은 며칠 전 경기가 끝난 뒤 구장을 나서다 황당한 일을 당했다. 술에 취한 한 관중이 자신의 차를 부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그는 “내가 직접 봤기에 망정이지 차를 부순 뒤 발견했다면 누가 그랬는지도 모를 뻔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는 비단 최준석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현재 8개 구단 선수들이 차량 파손, 도난 등의 피해를 적잖이 보고 있다. 구장 내부의 위험성만큼 외부에도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은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수들의 차량파손 심각하다

LG 정의윤도 지난 6월 당혹스러운 일을 당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승용차 앞바퀴에 대못을 박아 놓은 것이다. 어두컴컴한 밤에 이런 사실도 모르고 운전했더라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얼마 전에는 LG 선수 5명의 차 유리창이 깨지고 안에 있던 귀중품이 없어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범인은 차량 안에 있는 음료수를 마시고 빈 병은 차 안에 두는 대담함을 보였다. 경찰은 전문털이범의 소행으로 보고 조사를 벌였지만 만인이 사용하는 공용주차장, 하루에 수만 명이 드나드는 운동장에서 용의자를 색출하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같았다. 목동구장도 마찬가지. 누군가가 넥센 허도환의 차를 동전으로 긁어놓는가 하면 김성태의 차 유리에는 휴지를 물에 풀어서 붙여놓는 장난을 쳐놓았다.

지방구장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방 4개 구단 선수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본 결과 피해를 입은 선수들의 증언이 속속 나왔다. KIA 최희섭은 홈경기 때 구장에 차를 세워놓았다가 누군가가 차 앞바퀴부터 뒷바퀴까지 날카로운 물건으로 긁어놓아 수리비로 수백만 원을 써야 했다. 롯데 강민호도 “요즘 그런 일이 없지만 3∼4년 전에는 종종 있었다. 내가 차를 몰고 가고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옆을 지나가면서 흠집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KIA 안치홍은 “(윤)석민이 형은 경기를 마치고 나왔더니 차 번호판이 없어져있던 적도 있었다. 나는 타이어에 펑크 나있어 몇 십 만원을 주고 교체했다”고 푸념했다.


○선수들도 위험에 노출돼 있다

문제는 위험이 차량에만 도사리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8개 구단의 구장은 선수들과 팬들이 쉽게 접촉할 수 있도록 건설돼있다. 가장 잘 지은 야구장이라고 평가받는 문학경기장도 원정구단 버스가 지하주차장에 들어가지 못해 선수단이 주차장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구장 출입구로 이동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원정 선수단이 도착하는 시간이면 주차장 입구는 선수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과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량들이 한데 얽혀 대혼란이 빚어진다. SK 김성근 감독도 “며칠 전 야구장에 오면서 ‘왜 이렇게 좋은 야구장을 지을 때 원정선수 버스 전용주차장 및 통로를 지하에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며 “인천 공무원들이 문학구장을 만들기 전에 메이저리그도 가봤는데 그 점을 빠트린 것 같았다”고 지적했다.

물론 선수들은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 선수들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고 응원의 한 마디라도 건네고 싶은 게 팬들의 마음이다. 그러나 선수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986년 대구구장에서 삼성이 해태에 역전패를 당하자 한 관중이 원정버스에 불을 지른 대표적 사례도 있지 않은가. 지금은 예전과 달리 과격한 언행을 일삼는 이들이 많이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안전하다고 볼 수도 없다. 실제 2009년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은 경기를 마치고 나오다가 한 관중과 언쟁이 붙은 적이 있고, 지난해 연패 중이었던 KIA는 잠실구장을 빠져나가려다 버스를 둘러싸고 야유를 퍼붓는 팬들 때문에 30분간 꼼짝 못했던 사건도 있었다. 당시 조범현 감독은 차량에서 내려 팬들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하며 사태를 수습했다.

▼ 2008년 6월, ‘윤길현 사태’가 벌어졌을 때 잠실구장 주차장에 세워진 SK구단버스 옆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고 있는 팬. 이동 동선이 철저하게 팬들과 차단되는 메이저리그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스포츠동아DB



○메이저리그에서는 선수와 일반인 철저히 차단

메이저리그 구장은 선수단과 일반인들의 경계가 확실하다. 송재우 메이저리그 전문 해설위원은 “샌프란시스코 구장이나 LA 다저스 구장, 양키스타디움의 경우 선수들이 주차하는 모습까지만 철조망 너머로 볼 수 있을 뿐 구장에 출입하는 모습은 아예 볼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미국의 경우 총기 소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만에 하나 해코지를 당할 것을 대비해 접근하지 못 하도록 조치를 취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선수가 혹 외부인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거나 재산 피해를 입을 경우 구단 차원에서 피해를 보상하도록 규정돼 있다.

송 위원은 “일본 구단은 메이저리그보다 더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보안상태가 취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야구선수들은 많은 이들에게 노출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 구단 차원에서, 또는 구장을 관리하고 있는 지자체에서 선수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단도 자구책 강구, 그러나…

각 구단도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목동·대전·대구구장의 경우 자체적으로 선수전용 주차구역을 설정하고 보안요원을 배치해 외부인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하고 있다. 롯데도 지난해부터 구장 정문 오른편에 울타리를 치고 선수들이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만들었다. 김건태 롯데 홍보팀 대리는 “선수들의 요청에 따라 전용주차공간을 따로 만들었다”며 “2008년부터는 ‘귀가서비스’라고 해서 구장을 나서는 선수들에게 팬들이 몰리는 것을 대비해 중앙출입문에서 주차장까지 줄로 바리게이트를 쳐 이동하기 편하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SK 진상봉 운영팀장도 “선수들이 문학야구장 지하 1층 중앙출입구 근처에 차량을 대기 때문에 주차인력을 배치해 외부인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고 말했고, 대전 최태식 구장관리소장은 “선수전용주차장에 CCTV를 설치해 감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자구책’일 뿐, 근본적 해결방안은 아니다. LG 정성태 구장관리팀장은 “잠실구장에도 선수들의 전용주차공간이 있고 CCTV까지 설치돼 있지만 사고를 완벽하게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선수들 개개인이 차량에 블랙박스도 설치해봤지만 블랙박스의 녹화시간도 24시간이다 보니 3일씩 원정경기를 다니는 선수들의 스케줄상 무용지물이다.

그렇다면 구장을 운영 관리하는 지자체가 움직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실제 LG와 두산은 선수들의 전용출입구를 만들기 위해 서울시에 구조물 설치를 의뢰했지만 ‘조례상 광장이라는 개념이 훼손된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정 팀장은 “전용주차장이라고 해도 줄을 쳐놓고 보안요원들이 선수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주차하는 방식”이라며 “CCTV가 있지만 범위가 한정돼 실효성도 떨어진다. 새로 짓는 구장은 이런 부분들을 모두 감안해 지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관중들의 성숙한 의식도 필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수는 “라이벌 구단의 경우 승패에 따라 선수들의 차량 등에 분풀이를 하는 팬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롯데 전준우는 “나는 직접적으로 그런 일을 못 겪었는데 주변 선수들이 팬들이 가끔 차에 나쁜 짓한다고 얘기 들었다”면서 “선수들을 아끼고 팀을 사랑한다면 안 그러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홍재현 기자 (트위터 @hong927)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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