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토픽] 승점 1점… ‘가난한 독립국’에 핀 희망꽃

입력 2016-09-0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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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대표팀 발론 베리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분쟁과 내전 시달렸던 약소국 코소보
러월드컵 예선 데뷔전서 핀란드와 1-1
리우올림픽 女유도 金에 이어 또 감격

‘유럽 최빈국’ 코소보에게 2016년 5월은 영원히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5월 4일(한국시간) 유럽축구연맹(UEFA)은 총회를 열고 코소보를 55번째 정식 회원국으로 승인했다. 독립국가로 탄생하기까지 거친 복잡한 과정만큼이나 반대도 많았다. 코소보의 UEFA 가입에 찬성표를 던진 나라는 28개국에 불과했다. 24개국이 반대했고, 2개국은 기권했다. 열흘 뒤 낭보가 또 전해졌다. 5월 13일 국제축구연맹(FIFA)은 멕시코시티 총회에서 코소보와 지브롤터를 각각 210·211번째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이번에는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141개국이 코소보의 FIFA 가입을 승인했다. 반대는 UEFA 가입 때보다 적은 23표였다.

그로부터 4개월이 흘렀다. 코소보는 역사적인 월드컵 예선 데뷔를 치렀다. 결과도 아주 훌륭했다. 6일 핀란드 투르쿠 베리타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핀란드와의 2018러시아월드컵 유럽 최종예선(I조) 1차전에서 1-1로 비겼다. 전반 18분 먼저 골을 내주며 끌려갔지만, 후반 15분 페널티킥(PK) 찬스를 발론 베리샤(잘츠부르크)가 침착하게 성공시켜 적지에서 값진 승점 1점을 얻었다. 첫 득점과 첫 승점…. 코소보는 작지만 위대한 역사의 첫 발걸음을 뗐다.


● 끔찍한 고통 딛고 일어선 코소보 스포츠

유럽 발칸반도 세르비아의 자치주에 머물다 2008년 2월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의 역사는 온갖 아픔으로 점철됐다. 터키의 기나긴 지배가 끝난 1913년 이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많은 국가들에 편입됐다. 알바니아를 시작으로 1946년 유고슬라비아연방 자치구가 됐다가 구 유고연방을 거쳐 2003년 세르비아-몬테네그로에 다시 편입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분리된 2006년 세르비아의 영토가 됐고, 지금에 이르렀다.

잘 알려졌다시피 독립은 쉽지 않았다. 분쟁을 피할 수 없었다. 1998년 3월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졌다. 코소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알바니아계 반군이 지배층 세르비아 경찰을 공격했다. 세르비아의 무자비한 보복이 이어졌다. 반군 소탕을 빌미로 반군 거점 주민들까지 대량으로 학살했다. 이에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시위와 게릴라전으로 맞섰다. 세르비아는 그해 5월 대규모 소탕전을 전개했다. 무시무시한 인종청소였다. 코소보를 탈출하려는 수십만 명의 알바니아계 난민이 줄을 이었다. 국제사회가 개입했다. 사태 초기 국제연합(UN)이 구 유고연방에 무기금수조치를 내린 데 이어 미국과 유럽연합(EU)이 6월 코소보 개입을 선언했다. 인종청소 중단 요구를 세르비아가 무시하자 10월 무력사용을 승인했고, 이듬해 3월 대대적 공습을 전개했다.

내전이 끝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상흔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정치·사회·경제 전체가 불안정하다. 잔뜩 지친 국민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안긴 것은 스포츠였다. 출발은 올 8월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었다. 2014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회원 자격을 얻은 코소보는 8명의 선수만 출전시켰음에도 금메달을 땄다. 마일린다 켈멘디가 유도 여자 52kg급에서 시상대 꼭대기에 섰다. 4년 전 알바니아국기를 가슴에 달고 런던올림픽에 출전했던 켈멘디는 “부모형제와 생이별했고, 어린이들은 책도, 음식도 부족하다. 그러나 가난하고 작은 나라도 간절히 노력하면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다”며 감격해했다.



● 축구에서도 영광을 얻다!

UEFA·FIFA 가입을 성사시킨 파딜 보크리 코소보축구협회장은 “우리는 정말 끔찍한 시대를 경험했다. 이제 코소보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고 밝혔다. 사실 코소보는 독립 직후인 2008년 5월 FIFA 가입을 희망했지만 거절당했다. 국제사회가 독립국으로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2012년 FIFA는 처음 “코소보를 회원국에 가입시킬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는데, 최종 가입까지는 그로부터 4년이 더 필요했다.

러시아, 스페인, 세르비아, 중국 등 일부 국가들은 지금 이 순간도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올해 초 현역 은퇴를 선언한 세르비아의 명 수비수 네마냐 비디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시절, 조국을 둘러싼 기류가 심상치 않을 때마다 스승인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찾아가 ‘군 입대’와 ‘참전’ 의사를 전달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코소보에 대한 감정 역시 좋을 리 없다.

그러나 코소보의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 코소보와 발칸반도의 특수성에 의거해 과거 타국 대표팀으로 A매치에 출전했더라도 본인이 희망할 경우, UEFA의 허가를 받아 코소보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도록 했다. 2010남아공월드컵에 스위스국가대표로 나선 알베르트 분야쿠(세인트갈렌)가 대표적이다. 알바니야계 스위스인인 분야쿠는 보장된 삶이 아닌, 새 인생과 도전을 택했다. 핀란드 원정경기에서 골 맛을 본 베리샤는 노르웨이 각급 청소년대표를 거쳐 A매치 18경기를 뛴 특급 공격수다. 한국국가대표 황희찬과 잘츠부르크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어 더욱 큰 관심을 끈다. 골키퍼 사미르 위카니(AC피사)도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알바니아대표로 A매치 20경기에 출전한 바 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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