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병헌, 블록버스터 아닌 ‘싱글라이더’ 택한 이유

입력 2017-02-20 16: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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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병헌이 연기한 영화 속 캐릭터들은 장르를 막론하고 선이 굵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역할이었다. ‘마스터’에서는 수만 명 회원들에게 사기를 치며 승승장구해 온 원네트워크 ‘진회장’ 역으로, 할리우드 작품이었던 ‘매그니피센트7’에서는 암살자 ‘빌리 락스’를, 그리고 ‘내부자들’에서는 정계인물들을 돕는 정치깡패 ‘안상구’역을 맡았다. 전작들 모두 그가 하고 싶어 선택했지만 한동안 액션, 범죄, 사회고발 영화 등이 유행을 했기 때문에 그 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있었다.

이에 감성드라마 ‘싱글라이더’는 그에게 더 없이 특별한 작품이다. 인터뷰 내내 그는 “‘싱글라이더’가 운명처럼 다가온 작품”이라며 “정말, 꼭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절대 뺏기고 싶지 않은 역할”이라고 했고 “제작자인 하정우가 출연 욕심을 내지 않은 것 조차 고맙다”고(?) 하기까지 했다.

“영화 제작사, 배급사 쪽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흥행 부담은 크지 않았어요. 어떻게 모든 영화가 흥행을 하겠어요. 숫자로 영화를 평가하는 현실이 되긴 했지만 그게 꼭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전부터 느끼긴 했거든요. 이번 영화를 선택했을 때 ‘천만 영화’라고 1%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 영화가 평이 안 좋고, 관객들이 얼마 들지 않는다 해도 이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후회하진 않아요. 그 만큼 시나리오가 좋았어요.”

이주영 감독의 데뷔작 ‘싱글라이더’는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성공한 증권회사 지점장 강재훈(이병헌 분)이 어느 날 부실채권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 가족들이 있는 호주로 떠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재훈은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고 호주로 갔지만 다른 삶을 준비하고 있는 아내 수진(공효진 분)을 보고 선뜻 다가가지 못한 채 우두커니 지켜만 보고 있다. 수진의 속마음은 모른 채 아내에 대한 오해만 쌓여가는 재훈은 그 만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한 남자의 심리와 미세한 감정을 연기해야 했던 이병헌은 작품에 만족감을 느꼈다. 그냥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좋았다고 한 이병헌은 “배우로서 작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재미있다”라며 “이런 작품은 세세한 감정을 놓치면 영화의 큰 부분을 놓치는 것이라 조금 더 심혈을 기울이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더 신경을 쓴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영화의 전체적인 감성이 좋았어요. 또 재훈의 마음에 참 공감이 가더라고요. 벼랑 끝에 섰을 때에 그 무기력함? 뭔가 부딪혔을 때 맞서 싸우거나 그것을 이겨내 보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다 포기한다는 심정의 무기력함이 와 닿더라고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재훈과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요. 다른 남자와 있는 모습을 봐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그걸 보고 가만히 내버려 두나? 멱살이라도 잡아야지’라고 하시는데(웃음). 저는 재훈의 마음을 와 닿았고 이해가 돼서 꼭 해보고 싶었어요. 만약 다른 배우에게 이 역할이 넘어갔으면 되게 아쉬웠을 것 같아요.”


신인감독인 이주영 감독에게도 건 기대가 컸다. 그는 “어떤 색을 갖고 계신 감독일까 궁금했다. 물론 신인감독이기 때문에 걱정도 됐지만 정말 오랫동안 이창동 감독과 이주영 감독이 시나리오를 붙잡고 있었지 않나. 그 시간 동안 본인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을 테니 누구보다 연출을 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며 이 감독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함께 호흡한 배우 공효진과 소희에 대해서는 극찬을 했다. 아내 역으로 나오는 공효진과는 연기적으로 부딪힐 일이 많지 않았다. 이병헌은 그저 먼 발치에서 공효진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효진의 연기력을 보는 내내 무릎을 ‘탁’쳤다고.

“원래 공효진 연기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함께 연기를 해보니 ‘역시 공효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효진이는 앞에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요. 관리인 아저씨에게 전화를 하는 장면이라든가 화장실 안에서 오열하는 장면을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힘을 줄 때는 주고 뺄 때는 확실히 빼는 것을 보면서 그저 감탄만 해댔죠.”

함께 출연한 소희에 대해서도 “열정이 넘치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과거 잠시 같은 소속사에 있었지만 연기를 하며 마주칠 일은 없었다. 그는 “자기가 촬영이 있는 날이든 아니든 그 역할만 생각을 하고 있더라. 배우들끼리 식사를 할 때도 영화 이야기만 했다”라며 “모니터도 굉장히 열심히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면에서는 선배들과 촬영해서 부담이 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배우로서 자세가 열정이 있어 보기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덧붙였다.

이 영화는 호주의 눈부신 자연 풍광으로 완성된 영상미도 한 몫을 한다. 호주의 랜드마크인 하버 브릿지, 오페라 하우스, 본다이 비치, 그레이트 오션 로드 등지에서 촬영을 했다. 이중 하버 브릿지나 오페라 하우스 내부가 등장하는 것은 한국영화로는 최초다. 호주에서 촬영을 물어보니 “정말 힘들었다”라며 심경을 토로했다.


당시 이병헌은 ‘매그니피센트7’ 촬영을 마친 후였다. 수개월 동안 사막에서 촬영을 한 터라 진이 빠지고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한 달 후 곧바로 ‘마스터’ 촬영을 들어가야 했는데 그 사이 30일을 ‘싱글라이더’ 촬영을 진행한 것이다. 정말 혹독한 스케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처음에 이병헌도 자신이 속단을 했음을 인정했다.

“호주는 날씨도 좋고 자연도 좋으니까 괜찮을 것 같았어요. 게다가 뭐 몸을 쓰는 게 아니라 관찰하고 걷는 장면만 찍으면 되니까 좋은 곳에서 체력을 비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더 힘들었어요.(웃음) 거의 쉬는 날이 없었어요. 열흘에 한 번씩 쉬었나? 제가 전체 분량의 90%를 나오니까 정말 빡빡했죠.”

쉴 틈 없이 작품을 찍으니 자연스레 이병헌에게는 ‘소처럼 일한다’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는 “작품이 연속적으로 나오는 것은 계획적이라기보다 우연이 더 많은 것 같다. 놓치고 쉽지 않은 작품도 많았고. 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작품이 안 나타나면 긴 시간 쉴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재충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했다.

“쉬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어요. 작품 욕심은 많지만 어느 순간 내가 소비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돼서 내면적으로 풍요로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더라고요. 최소한 2~3개월 정도 쉬면서 재충전도 하고 싶고요. 저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긴 해요.”

하지만 당분간 쉴 수는 없다. ‘남한산성’을 촬영 중이고 ‘그것만이 내 세상’에 출연을 확정한 상태다. 그는 “’그것만이 내 세상’도 블록버스터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그것도 감정선이 중요한 작품이라. ‘남한산성’ 촬영 이후로 끝나고 좀 여유롭게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크랭크인 시기가 안 정해졌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위해 한 마디 해달라고 했다. 그는 “시간이 몇 번이나 되돌려진다고 해도 이 작품을 택하겠다”고 말하며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안 좋아할 수 있어요. 누구에게나 다 재미있을 수는 없죠. 하지만 어떤 관객에겐 인생영화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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