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여기자들의 수다①] 서정희 “쉰다섯에 찾은 ‘나, 정희’…인생? 지금부터!”

입력 2017-07-14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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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희. 3년 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련을 맞았던 그는 몰라보게 강해졌다. “다시 시작하는 지금이 진짜 내 인생”이라며 웃는다. 가냘픈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단과 긍정적 기운이 대단하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아픔 딛고 1년을 10년처럼 사는 ‘미친 동안’ 서 정 희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에세이 출간
어릴적부터 말보다 글이 더 좋았죠
연예인 안됐다면 작가 됐을 것


책 제목이 왜 ‘정희’냐고요?
‘서’까지 넣으면 생각나는 사람 있잖아요

두 아이의 힘으로 이겨낸 지난날 아픔들
운전도 못했던 정희,
이젠 1년에 4만4000km 달려요

이제 서정희(55)를 어떤 수식으로 불러야 할까. CF모델로 데뷔했지만 오랫동안 유명 연예인의 아내였고 지금은 방송인이자 교수 그리고 얼마 전에는 작가 타이틀까지 가졌다. 지난달 에세이 ‘정희’를 출간하면서다. 최근 예능프로그램 출연 횟수도 늘리고 있다.

서정희는 “요즘 1년을 10년처럼 여기면서 바쁘게 살고 있다”고 했다. 의도치 않게 자신의 가족 문제로 뉴스에 오르내린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절망감에 빠져 바닥까지 내려갈 때도 있었지만 책의 제목처럼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찾아 대중 앞에 다시 섰다.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고통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이라는 말은 그가 자주 떠올리는 문구다.

‘여기자들의 수다’에 초대한 서정희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날을 이야기했다. “두 번째 스무살처럼, 다시 태어난 것 같다”는 그는 “세상을 향해 끝없이 도전하겠다”고도 했다.

도무지 50대 중반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모는 여전했고, 강단 있는 면모는 새로웠다.


-밝고 편안해 보인다.

“언제나 오전에는 ‘쌩쌩’하다. 매일 새벽 3시30분쯤 일어나서 정오까지는 활발하다. 30년 동안 비슷하게 살아서 알람도 필요 없다.”


-에세이의 부제가 ‘쉰 다섯, 비로소 시작하는 진짜 내 인생’이다.

“엄청 좋다. 다시 시작하는 입장에서 일단 정리를 해야 할 부분이 있지 않았겠나. 많은 사람에게 노출이 돼 있다가 갑자기 사라졌으니까. TV프로그램 한두 편에 나온다고 해서 대중과 소통을 이룬 것도 아니고. 내가 겪은 일을 매번 설명할 수도 없으니, 그동안 쓴 기록을 정리해 출판사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출판 제안을 먼저 받은 게 아니었나.

“상 받은 책이나 베스트셀러, 인문학 책은 많이 읽는 편인데 다독보다는 정독 스타일이다. 오래 전부터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시도 적고, 내가 느낀 감정도 적는다. 그것들로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싶었다. 하루는 교보문고에 가서 잘 팔리는 책 여러 권을 무작위로 사왔다. 전부 핫한 출판사였는데 그 중 다섯 곳을 추려 맨 뒷장에 있는 회사 전화번호를 살펴봤다. 어느 출판사부터 연락할까 고민 많이 했다.(웃음) 거절당하는 걸 극복해야 하니까. 두 번째로 전화를 건 출판사와 이야기가 잘 됐고, 6개월간 준비해 책을 냈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정리해보고 싶었고.”


-글을 잘 써서 깜짝 놀랐다.

“어릴 때부터 인정받은 솜씨다. 하하! 연예인이 안됐다면 당연히 작가가 됐을 거다. 말보다 글로 표현하는 게 좋다. 글짓기, 웅변대회 상은 놓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지 못해 자신감이 없었다. 세상에 나왔을 때 바로 광고모델이 됐기 때문에 재능을 확인할 기회조차 없었고. 출판사에도, 주변에서도 정말 내가 쓴 게 맞냐고 묻더라. 하하! 리라이팅 작가와 함께 정리했지만 인용구 하나까지, 토씨도 바꾸지 않고 직접 썼다.”


-책 제목이 왜 ‘정희’인가.

“내 정체성을 알리려고. 자주독립의 자세로 말이다. 하하! 서정희라고 안한 이유? ‘서’까지 쓰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잖아. 제목은 딸이 정해준 거다.”

-다른 책도 구상 중이라고?

“2년에 한 권씩 낼 생각이다. 지금 두 번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데 한국과 일본 합작으로 각각의 나라에서 동시에 출판하는 방식이다. 일본에서는 뷰티 전문가가 참여하고 나는 라이프스타일을 맡는다. 작가의 영역은 포기하지 않을 거다. 70살이 돼도.”


-바쁘겠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내 가정은 어차피 해체됐잖아. 아놀드 토인비라는 역사학자가 ‘문명에는 사이클이 있다’고 말했다. 탄생하고, 성공하고, 해체돼 붕괴되는 과정. 그대로라면 나는 태어나 성장해 번성의 기간을 가졌고 그러다가 붕괴돼 해체됐다. 그 다음은 다시 탄생이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스무 살을 살고 있는 거다.”

방송인 서정희.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현재의 서정희를 이야기하라면 2014년 개그맨 서세원과 이혼은 짚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다. 두 자녀를 바르게 키운 엄마이자 헌신적인 내조로 남편을 도운 아내로서 대중에 각인됐지만 그 가정은 이제 없다.

“내가 그토록 지키려던 성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들이 ‘너무 지나치다’고 할 때도 와 닿지 않았다. ‘잘 할 수 있어요’, ‘난 좋은 엄마이고 좋은 아내가 될 거에요’라면서 귀를 닫았다. 내가 평강공주가 되어서 전쟁에서 이기고 과거에 급제하는 온달을 만들고 싶었다. 열심히 살았다. 그러니까 내가 그동안 했던 애씀, 수고로움까지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는 거다.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나.

“내 열등감일 수도 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가정환경도 있고. 책에도 썼지만 어린 시절에 어렵게 살았던, 가난으로부터의 해방? 지식을 향한 목마름? 결혼하고 나서는 완성도가 높은 엄마 그리고 아내여야 한다는 압박이 컸다. 고달프고 지쳤지만 놓을 수가 없었다.”


-물론 보람도 컸을 텐데.

“엄마는 아내와 다르다. 엄마는 세상을 뚫고 나가는 힘이 있다. 남편과 관계가 무너져도 엄마는 이겨내고 지킬 수 있는 힘이 있다.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력이 있다.”


-힘든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다.

“창 밖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도 했다. 많이 아팠지만 다시 일어설 기회가 빨리 왔다. 내가 철저히 지켰던 게 아무 것도 아닌 게 됐으니까.”


-치료도 받지 않았나.

“트라우마 치료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았다. 신경정신과 치료 과정도. 물론 신앙도 힘이 됐다. 새벽기도는 지금도 한다. 교회, 서정희 그리고 새벽기도는 여전히 하나다.(웃음). 치료하면서 식습관도 바꿨다.”


-건강식단을 즐길 것 같은데.

“콜라를 끊었다. 중독 수준이었다. 많을 땐 하루에 10캔까지. 하지만 혼자 일어나야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그날 단번에 콜라를 끊었다. 햄버거 같은 정크푸드를 안 먹는 일은 정말 힘들다. 난 무조건 육식 스타일이고. 지금은 채소도 먹고 건강을 위해 여러 시도를 한다.”

-다시 일어서기까지 무엇이 가장 큰 힘이 됐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다. 그동안 ‘정희’라는 이름의 내 정체성에 관심 없이 살았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조차 되지 않았다. 본 적이 없으니까. 가정 안에서 빛났지만 나는 없었다. 2년 동안 정희에 대해 관심을 갖고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제3의 눈이 돼 바라보기도 했다. 리얼하게 바라봤다. 그렇게 나를 추적하면서 내가 참 매력적인 사람이란 사실도 깨달았다. 아직 발견되지 않았구나, 내 가치를 나조차 모른 채로 무방비로 세상에 나온 거다.”


-자녀들도 좋아하겠다.

“우리 딸은 늘 ‘엄마는 지니어스(genius)!’라고 한다. 많은 걸 갖고 있는데 발견되기도 전에 접어버렸다고. 이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도전하라고 한다. 나를 일깨워주는 존재, 나를 버티게 한 힘은 아이들이다. 꼭 정상은 아니지만 꿋꿋하게 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한때 서정희는 ‘슈퍼맘’으로 불렸다. 딸과 아들을 각각 미국과 일본의 명문대에 보냈기 때문이다. 그 교육법이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자신은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고 했다. “아이들을 퍼펙트하게 끌어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마음을 챙겨볼 겨를도 없이 푸시만 했다”고 했다.

국제대 산업디자인과 초빙교수로 강단에 서는 지금 그를 향한 학생들의 반응은 다르다. 학생들은 줄곧 그에게 ‘엄마는 몰라주는 마음을 교수님이 이해해 준다’고 했다.


-‘불타는 청춘’부터 ‘택시’까지 예능도 자주 한다.

“성격이 단순 명쾌해서 출연 고민은 오래하지 않았다. 해보지 뭐! 욕먹지 뭐! 즐기는 여유가 생겼다. 날 미워하는 ‘안티’도 나에 대한 관심이라고 여긴다. 사람들은 나더러 왜 이렇게 튀냐, ‘불타는 청춘’에서 왜 그렇게 옷을 자주 갈아입느냐고 지적한다.(웃음) 왜냐고? 나는 정희이니까. 하하! 치렁치렁한 롱 드레스를 입어도, 나는 그게 편하다.”


-새로운 별명이 여러 개다.

“주위에선 ‘보스 베이비’라고 한다. 하하! ‘미친 동안’이라는 말도 있다. 여러 반응이 어색하면서도 신기하다.”


-강연 요청도 많다.

“여성 위주로 한다. 지금 막 세상에 일어나려고 하는 사람들, 꿈을 꾸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무너진 사람들에게 용기 주고 도전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40∼50대도 있지만 젊은 여성도 많다. 사실 우리 나이는 나태해지기 쉽고, 침대에서 내려오기 싫고, 갱년기까지 겪었잖아. 노년을 준비해야 하지만 또 너무 막막하다. 그런 여성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자립심이 강해진 것 같다.

“나는 돈에 대해서도 몰라서 어느 날 보니 빚을 진 사람이 돼 있었다. 운전도 못했는데 최근 1년 동안 4만4000km를 탔다. 세상을 향해 도전한 거고, 모르는 길을 가 본 거고, 길을 잃어보고, 출구를 찾은 거다. 자신감을 얻고 이겨낸 거다. 그런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어려운 질문이지만,이혼 상처도 많이 극복했나.

“이제 (전 남편을)축복해줄 여유가 있다.”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나는 지금 1년을 10년 같이 살고 있다. 그만큼 빨리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에게 새 가정만큼은 잘 지키라고 말하고 싶다. 게다가 아이도 있지 않나. 내가 애쓰면서 발버둥친 것처럼 본인도 실패를 경험 삼아 지금 다시 꾸린 가정에 책임을 지라고 하고 싶다. 나? 나는 자신이 없으니까 그냥 혼자 살 거다.(웃음)”


-혼자 살아보니 좋은 점이 뭔가.

“좋다. 밥 안 해도 된다. 만약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연애도 화끈하고 싶다. 안 해본 모든 걸 하고 싶다. 정말 감명 깊게 본 영화 ‘박열’을 보면서 극장에서 손을 잡고 있는 일. 그런 거 해 보고 싶다. 어디까지 꿈이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상관없다. 내 꿈은 계속 진행형이다.”


● 서정희


▲1962년 12월14일생 ▲1981년 해태제과 CF모델로 데뷔, 이후 1980년대 초중반 CF계 스타로 군림 ▲1982년 개그맨 서세원과 결혼해 화제, 2015년 이혼 ▲2017년 6월 방송계 복귀. SBS ‘불타는 청춘’ 등 출연 ▲현 국제대 산업디자인과 초빙교수 ▲저서:서정희의 주님(2008년), ‘정희’(2017년) 등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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