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칸&피플]日 가라타 에리카, 케이팝팬에서 여배우 되기까지

입력 2018-05-19 16: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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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연예계 관계자의 눈에 들어 데뷔한 연기자. 초등학생 때부터 그룹 빅뱅의 노래를 들으면서 케이팝에 매료된 소녀 팬. 처음 출연한 영화에서 주연을 맡고 그 작품으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주인공.

일본 여배우 가라타 에리카(21)를 둘러싼 대표적인 설명들이다. 그렇다고 이게 전부는 아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연기를 갈망하고 탐구하는 신인이자, 곧 한국에서도 활동하겠다는 의지로 현재 우리말 수업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훗날 함께 연기하고픈 한국의 배우가 누군지 물으니 배두나와 양익준의 이름을 꺼내는 ‘내공’도 보인다.

영화 ‘아사코 Ⅰ&Ⅱ’를 갖고 제71회 칸 국제영화제를 찾은 가라타 에리카를 칸 현지에서 만났다. 첫 출연영화이자 첫 주연작을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먼저 소개하는 기회를 맞이한 그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인터뷰에서 가라타 에리카는 화사한 미소로 주변까지 환하게 만들었다. ‘인간 비타민’이라고 불러도 될 법한 긍정적이면서도 상큼한 매력으로 현장에 모인 사람들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러다가도 영화와 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누구보다 신중했다.


○ 日 케이팝 세대에서 여배우 되기까지

얼핏 패션모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는 어릴 때 패션 잡지를 보면서 막연하게나마 모델을 꿈꿨다고 했다. 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한,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기 목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고, 그 곳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고등학생 때는 여자친구들끼리 ‘꺅꺅’ 소리지리면서 모여 다니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난 정말 시끄러운 사람이었다. 하하! 인간적으로 본다면 솔직한 편이다. 생각이나 감정이 얼굴이 많이 드러나는 편이고. 주변에서도 나를 솔직하다고 평가한다.”

가라타 에리카는 이미 국내서도 어느 정도 얼굴이 알려져 있다. CF 덕분이다. 지난해 LG 휴대전화 광고에 출연, 화사한 매력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푸른 하늘을 등지고 꽃이 날리는 가운데 웃음 짓는 그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 그 광고가 주목받으면서 ‘새 얼굴’ 가라타 에리카를 향한 관심도 늘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방송에서 케이팝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문화를 접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 많이 찾아보기도 했고. 데뷔했을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한국과 관련한 일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내 마음을 회사에 전하기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적극적인 방식이 될 줄은 몰랐지만.”

가라타 에리카의 일본 회사는 마침 배우 한효주의 일본 활동을 돕는 곳이기도 하다. 그 인연으로 가라타 에리카가 2016년 한국을 찾았고, 한국에서의 연기활동을 바라는 그의 ‘의지’, 그런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국내 연예 관계자의 ‘선택’이 맞물려 BH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한국에서의 연기 활동을 원하는 그는 한국영화도 꼼꼼하게 챙겨본다. 영화 ‘도희야’와 ‘똥파리’를 꼽으면서 “배두나 그리고 양익준 배우와 꼭 연기하고 싶다”고도 했다.

“특히 배두나 배우를 정말 좋아한다. ‘나의 소녀’(‘도희야’의 일본제목)를 보고 완전히 팬이 됐다. 나는 감정을 그대로, 솔직하게 보이는 배우가 되고 싶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연기로 담아낼 수 있는 배우 말이다. 힘을 주지 않지만 존재감이 있는 배우. 배두나를 보면서 바로 그런 배우라고 생각했다. 정말 대단하다.”


○ 해석의 여지 많은 첫 주연작 ‘아사코 Ⅰ&Ⅱ’

가라타 에리카가 주연한 ‘아사코 Ⅰ&Ⅱ’는 사랑하는 연인이 갑자기 모습을 감추고 2년 뒤 그 연인과 똑같이 생긴 남자를 만나게 되는 아사코의 이야기다. 언뜻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다양한 해석을 낳는 여지를 남긴다.

‘아사코 Ⅰ&Ⅱ’는 가라타 에리카의 영화 데뷔작이다.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가운데 첫 주연작으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직행한 사실은, 현재 칸 국제영화제에서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는 한국영화 ‘버닝’의 주인공 전종서와 겹친다.

“이 영화를 찍기 전에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다. 연기가 너무 어렵고, 연기를 즐기지 못하게 됐으니까. 어떻게 할지 고민이 쌓이던 때에 마침 이 작품을 만난 거다. 감독님은 내게 잘하는 것보다,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려줬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신중하게 답하는 가라타 에리카는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영화를 했다고 해서 지금 ‘연기자란 직업이 저와 잘 맞아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은 아직 없다. 하지만 지금은 연기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지고 있고, 그래서 잘하고 싶다.”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아사코는 저돌적인 성격의 남자 바쿠와 사랑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그를 잊지 못하는 인물. 2년 뒤 우연히 바쿠와 똑같이 생겼지만 성격은 전혀 다른 료헤이라는 남자를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진다. 가라타 에리카는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아사코와 나는 닮은 모습이 많다”고 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직감이나 감정에 솔직하고, 행동하면서 움직이는 것도 비슷하다. 아사코의 행동에는 거짓이 없다.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일도 생기지만. 그런 후회까지도 나와 비슷하다. 하하!”

‘아사코 Ⅰ&Ⅱ’에는 일본 센다이 지역이 중요한 설정으로 두 차례 등장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피해로 일본은 물론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바로 그 장소. 주인공 아사코는 센다이 바닷가에서 두 명의 서로 다른 연인, 즉 바쿠 그리고 료헤이와 다른 시간과 사건을 겪는다. 이는 영화를 통틀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주효한 기점이다.

또한 이 영화가 동일본 대지진의 은유를 담아내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뿐 만이 아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모티프를 얻은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 주인공들은 첫 만남에서 자주 “너의 이름”을 묻고, 그 뜻까지 다시 묻는다.

이에 대해 가라타 에리코는 그만의 해석을, 제법 길게 내놨다.

“기본적으로 영화 속 가장 큰 맥락은 바닥까지 내려갔던 주인공의 감정이 서서히 다시 올라오면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런 맥락에서 그 작품(‘너의 이름은.’)과 비슷하지 않을까. 직감적으로 움직이고 감정에 솔직한, 그것에 따라 움직이는 주인공의 모습이 서로 비슷한 것 같다.”

가라타 에리카의 대답은 짧게 끝나지 않았다.

“실제 촬영을 센다이 지역에서 했다. 아직도 (지진)피해 복구가 전부 이뤄지지 않아서 가건물에 사는 지역 사람들이 많이 있다. 촬영을 갔을 때 그곳의 피해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눴고, 현지 주민들이 우리 영화에서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자원봉사처럼, 자원해서 한 출연이었다.”

더불어 ‘사랑’과 ‘운명’이라는 키워드는 영화 ‘아사코 Ⅰ&Ⅱ’를 관통하는 감정이다. 가라타 에리카 역시 이에 동의하고 있다. 연기와 작품을 떠나 실제 사랑할 땐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물었다.

“아…. 하하! 아직 경험이 없고, 어른들의 연애는 잘 모르겠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랑은 뭘까, 생각하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사랑은 굉장히 멋진 일 같다. 마음을 멈출 수 없는 것, 갑자기 생겨나는 것.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것. 하하! 어렵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아사코 Ⅰ&Ⅱ’는 9월 일본에서 개봉한다. 이와 함께 가라타 에리카는 촬영을 마친 또 한 편의 영화도 있다고 알렸다. 빠르게 성장하는 신예이자, 활약이 기대되는 연기자인 그에게 한국에서의 활동도 중요한 계획. 인터뷰가 끝난 뒤 그는 우리말로 “같이 사진 찍어요!”라고 외쳤다.

칸(프랑스) |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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