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해숙 “마음으로 다가가는 엄마라는 장르…그래서 더 애틋하죠”

입력 2019-04-19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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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엄마’로 불리는 연기자 김해숙은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역할이 엄마”라고 말했다. 이어 “수많은 엄마를 표현하는 일이 배우로서 보람된 과정”이라며 웃었다. 사진제공|준앤아이

■ 드라마 ‘세젤예딸’ 영화 ‘크게 될 놈’ 열연…‘국민엄마’ 배우 김해숙이 말하는 ‘엄마 인생’

같은듯 미묘하게 다른 엄마 역할
세상 모든 엄마 표현하는게 목표
연기만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녹슬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 김해숙(64)이 잔잔하게 풀어내는 세상 여러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쩐지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았다. 영화에서도 주로 엄마를 연기하고, 드라마에서는 어김없이 누군가의 엄마를 맡아온 경력 46년의 배우는“세상의 모든 엄마를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모정이란 감정은 하나일지 몰라도 그 감정을 느끼고 풀어내는 엄마는 전부 다르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KBS 2TV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을 통해 주말마다 안방을 눈물과 연민으로 적시는 김해숙이 18일 개봉한 영화 ‘크게 될 놈’으로 또 다른 엄마의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일주일을 꽉 채워 진행하는 드라마 촬영 가운데 “단 하루 틈이 났다”는 김해숙을 15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최근 5년간 출연한 드라마가 총 10편, 같은 시간 출연한 영화가 8편(특별출연까지 포함하면 11편)에 이를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벌여온 김해숙은 지금도 펄펄 뛰는 에너지를 감추지 않으면서 “연기하고 싶다는 순수한 갈망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골프도 쳐보고 다른 취미도 시도해봤지만 가장 재미있는 건 역시 연기였다”고도 했다.

KBS 2TV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의 김해숙. 사진제공|지앤지프로덕션·테이크투


● “‘엄마’라는 장르…전부 표현하고 싶다”

김해숙은 한동안 ‘국민엄마’라는 타이틀로 불렸다. 2000년 송혜교의 엄마 역을 맡은 드라마 ‘가을동화’가 한류를 일으키면서 주목받았고, 이후 원빈의 엄마(영화 ‘우리 형’)를 거치면서 이런 수식어는 공고해졌다. 하지만 지금 이런 평가는 진부하다. 그의 설명처럼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역할이 바로 엄마”라는 사실에 이젠 대중은 물론 수많은 후배 배우들까지 공감하고 있다.

“사람들이 ‘세상 모든 엄마는 그냥 다 엄마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을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 비슷한 시기에 영화 ‘무방비도시’와 ‘해바라기’ ‘박쥐’를 연이어 하면서 ‘세상에 이런 엄마도 있구나’ 깨달았죠. 그때 제 입으로 ‘엄마도 장르다’는 말을 한 거예요.(웃음) 수많은 엄마를 표현하는 일이 배우로서도 보람된 과정이라는 걸 알았어요.”

김해숙은 지금 서로 다른 두 엄마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주말드라마에선 애지중지 키운 세 딸을 뒷바라지하면서도 때론 악에 받쳐 소리치는 친정엄마다.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에 시청자의 깊은 공감을 얻고 있다. 영화에선 극적인 엄마다. 집 나간 아들(손호준)이 사형수가 됐다는 소식에 뒤늦게 한글을 배워 편지를 띄운다. 두 작품을 소화하면서 김해숙은 세상을 떠난 “내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했다.

“드라마는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라서 정말 좋아요. 맏딸 미선(유선)을 보면 제 모습을 보는 듯하죠. 저도 두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친정어머니께서 맡아 키워주셨거든요. 영화로도 어머니를 생각했어요. 우리 엄마 마음이 이랬구나, 싶은. 제가 어머니께 불효한 걸 두 작품을 통해 속죄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김해숙은 “엄마를 연기하다보면 그 인물에 ‘마음’으로 다가가야 해서 더 힘들다”고 털어놨다. 캐릭터가 분명하다면 인물을 탐구하면서 기술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엄마 역할은 그저 “마음으로 다가가는” 방법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때때로 “심장이 찢어지는 듯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고 했다.

“작품마다 엄마가 가진 슬픔이 다 다르니까, 그걸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는 고통스럽죠. 사람들은 흔히 ‘엄마를 연기해왔는데 이번엔 차별점이 뭐냐고’ 물어요.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늘 마음으로 다가가는 과정이니까요. 그게 또 배우의 숙명이지 않나 싶고요.”

영화 ‘크게 될 놈’에서의 김해숙. 사진제공|영화사 오원


● “늘 새로운 걸 갈망한다”

영화에서 김해숙은 아들을 위해 한 글자씩 꾹꾹 눌러 편지를 쓴다. 마지막에 띄운 편지에는 ‘바람이 되어서라도 네 옆에 있겠다’는 말을 건넨다. 김해숙은 “시나리오를 읽다가 그 문장에 눈물이 뚝 떨어졌다”고 했다.

60대 배우 가운데 김해숙처럼 스크린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를 찾기 어렵다. 이번 ‘크게 될 놈’이나 앞서 출연한 ‘희생부활자’에서처럼 아들을 향한 절절한 모성을 가진 엄마를 연기할 때도 있지만, 박찬욱 감독의 ‘박쥐’나 ‘아가씨’ 혹은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 ‘암살’ 에선 대담할 만큼 과감한 도전에도 나섰다. “새로운 걸 늘 갈망”하기에 가능한 행보다.

“이미지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에 대한 겁도 없고,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열정이 어떤 면에선 과하죠. 하하! ‘박쥐’ 때는 겁 없이 덜컥 나섰고 ‘도둑들’ 땐 정말 신이 났어요. 훌륭한 감독들과 작업을 할 수 있으니,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 같아요.”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 질문을 받은 그는 망설임 없이 “특별한 생각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답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연기를 사랑하는 열정 하나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요. 연기와 새로운 캐릭터를 맡고 싶은 갈망, 그것 외엔 없어요. 좋기 때문에 열심히 최선을 다한 것뿐이죠. 제 자신이 녹슬지 않는 배우이면 좋겠어요. 나이와 상관없이 녹슬지 않는 배우!”

배우가 ‘직업’이고, 연기도 ‘일’이 될 수 있을 텐데 김해숙은 달랐다. “사람들과 골프도 쳐봤지만 재미가 없었다”며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연기할 때뿐”이라고 했다. 순간, 무엇이 떠올랐는지 “그리고 맛있는 걸 먹을 때”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까르르 웃었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만 해도 감기몸살 탓에 다소 힘이 없는듯 보인 그는 연기와 작품 그리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이내 힘이 났는지 목소리에 에너지가 넘쳤다. “항상 깨어 있으려 하지만 만약 이런 열정이 식으면 연기를 못할 것 같기도 합니다.”

다시 ‘엄마’로 돌아온 김해숙에게 물었다. 그 자신도 오랜 기간 워킹 맘으로 살아왔고, 지금 출연하는 드라마에서 워킹 맘 딸을 둔 친정엄마를 연기하고 있는 상황. 직접 혹은 간접경험이 많을 선배의 입장에서 이 시대 워킹 맘에게 전하는 한 마디를 부탁했다.

“힘내시길! 하하! 일하러 나와서 자식 생각에 너무 미안해하지 않길 바라죠. 저도 그랬지만 항상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죠. 누군가 ‘좋은 엄마’냐고 물으면 50점짜리 엄마라고 답했어요. 하지만 엄마의 부족한 부분에서 아이들도 자립심을 키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 경우는 그랬으니까요. 다만 딸을 돕고, 손주를 챙기는 우리의 어머니들을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저도 예전에는 모르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배우 김해숙. 사진제공|준앤아이


● 김해숙

▲ 1955년 12월30일
▲ 1974년 MBC 7기 공채 탤런트, 드라마 ‘수사반장’ 데뷔
▲ 2000년 KBS 2TV ‘가을동화’ 등 현재까지 130여 편 출연
▲ 2006년 영화 ‘해바라기’
▲ 2008년 ‘무방비도시’·대종상 여우조연상
▲ 2009년 영화 ‘박쥐’·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 2012년 영화 ‘도둑들’ 1200만 흥행
▲ 2015년 영화 ‘암살’, ‘사도’
▲ 2018년 영화 ‘허스토리’
▲ 2019년 KBS 2TV 주말극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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