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볼 브레이크] “감독 말이 정답은 아니야” DB 바꾼 ‘갓상범의 역설’

입력 2017-11-2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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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 이상범 감독. 사진제공|KBL

“감독이 지시한 대로만 하면 발전 없어”
스스로 답 찾는 ‘생각하는 농구’ 강조
시즌 전 최약체 평가서 리그 2위 파란


DB는‘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예상 밖의 성과를 내고 있다. 시즌 개막 이전까지만 해도 최하위권으로 평가 받았지만, 14경기에서 10승4패를 기록하면서 SK(13승3패)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

이변을 넘어 ‘파란’이라고 해도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물론 파란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지난여름부터 땀 흘려 준비한 ‘이상범표 신바람 농구’의 결실이다. 이상범(49) 감독은 4월 DB의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지난시즌까지 DB는 주전의 의존도가 높은 팀이었지만 이제는 선수 전원이 코트에서 제 몫을 하는 농구를 펼치는 팀으로 변모했다. 경기에 투입되는 선수마다 에너지 넘치는 플레이를 펼친다.

“감독 말이 정답은 아니야.”

DB의 놀라운 변화는 이 감독의 이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DB는 9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나고야와 가와시키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일본 프로팀과의 연습경기 때였다. DB가드들이 일본 가드들의 돌파에 연신 뚫리기만 하다가 경기가 끝났다.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 파이트 스루(수비자가 상대 스크린에 상관없이 공격자를 계속 따라가는 수비)를 지시했는데, 일본 가드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경기 뒤 이 감독은 선수들을 불려 모았다.

그는 선수들에게 “무조건 감독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어떡하느냐. 지시한 수비가 효과가 없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감독의 말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 경기준비는 감독이 하지만, 코트에서 뛰는 너희들이 ‘이 전술은 안 되겠다’고 느끼면 바꾸면 된다. 그래야 생각하는 농구가 된다”고 했다. 감독 말에 절대적으로 따라야하는 한국농구의 틀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지시였다. 이는 선수들에게 생각의 변화를 가져왔다.

DB 두경민. 사진제공|KBL


DB 가드 두경민(26)은 “그 때 감독님의 말씀이 선수들을 바꿨다. 생각을 하면서 경기를 하니까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온다. 얼마 전에는 감독님이 상대 빅맨의 도움수비를 앞쪽에서 가라고 지시하셨는데, 잘되지 않아서 선수들끼리 뒤에서 도움수비를 가자고 얘기하고 바꿨는데 효과를 봤다. 감독님이 잘했다고 박수를 치시더라. 경기 도중에 선수들끼리 이야기를 하면서 기존의 전술에서 변화를 만든다. 아마 상대 팀에서 우리 팀 분석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이어 “다만, 수비를 안 하거나 백코트가 늦는 등 기본적인 틀에서 벗어날 경우에는 엄청나게 혼난다”고 덧붙였다. 불과 6개월 만에 나타난 변화다. 선수들은 이제 감독을 ‘갓상범’ 또는 ‘마법사’라 부른다. 그의 생각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감독이라는 완장을 찼다고 해서 모든 선수들이 진정으로 선수들이 따르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서로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이 감독은 “감독의 말이 어떻게 100% 정답이 될 수 있겠나. 평소 생각을 하지 않는 선수들은 ‘너 왜 이렇게 했어?’라고 물으면 대답을 못한다. 감독이 지시한 것만 하면 혼나지 않기 위해 농구하는 것 밖에 안 된다. 그러면 발전이 없다. 생각을 하고 변화를 만들어야 감독이 ‘왜 지시와 다르게 했느냐’고 물어도 선수가 설명을 할 수가 있지 않나. 지금까지는 선수들이 잘 따라줬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경기가 나오는 것이다. 내가 잘한 것이 아니다. 우리 선수들 칭찬 많이 해 달라”며 웃었다.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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