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행정가’ 홍명보, “유소년 육성 & 명확한 방향 설정이 생존의 길”

입력 2018-04-2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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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홍명보 전무이사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6층 집무실에서 축구공을 안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축구 행정가로선 새내기인 그는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항상 사랑을 받는 축구가 됐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대한축구협회 홍명보(49) 전무이사는 한국축구의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스타 출신이다. 월드컵 경험도 그 누구보다 풍부하다. 현역 4회(1990이탈리아·1994미국·1998프랑스·2002한일), 코치 1회(2006독일), 감독 1회(2014브라질) 등 선수, 코치, 감독으로서 모두 지구촌 최대 스포츠이벤트를 찾았다.

50일도 채 남지 않은 2018러시아월드컵을 앞둔 그의 신분은 기존과 다르다. 말쑥한 정장과 넥타이 차림은 같지만 더 이상 익숙한 벤치에 앉지 않는다. 관중석에서 초록 그라운드를 누비는 옛 제자들을 응원해야 한다.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마냥 성공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던 지도자의 걸음에 아쉬움은 남지 않았을까. 최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6층 집무실에서 만난 홍 전무는 “오래 전부터 하고 싶은 업무를 하고 있다. 많이 적응도 됐다.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항상 사랑을 받는 축구가 됐으면 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현역 은퇴 후 가장 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축구 행정가의 길에 입문한지 5개월여, 점차 위축되고 인기가 시들해지는 축구의 불씨를 다시 지피는 데 열정을 쏟고 있는 홍 전무와의 대화록을 공개한다.

대한축구협회 홍명보 전무이사.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장기발전을 위해 선행돼야 할 풀뿌리 안정

-멀리 돌고 돌아 행정 업무를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선수를 끝내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지도자의 길도 있었으나 그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부분을 조금이나마 우리나라 축구에 접목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LA 갤럭시에서 2년 정도 뛰면서 축구가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과 활동을 하는지, 관계형성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했다. 충분히 축구가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전무의 위치에 오르면서 어떤 목표를 세웠나.

“알찬 유소년 시스템 구축이다. 대표팀이 잘되기 위해선 풀뿌리가 단단해야 한다. 협회도 이 부분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청취하면서 향후 협회가 어떻게 정책을 반영하고 세워나갈지를 고민 중이다. 최대한 많은 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수반돼야 한다.”


-유소년 발전을 위한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듣고 싶다.

“일단 축구를 접하고 본격적인 꿈을 키워가는 시점을 낮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대부분 초등학교 3~4학년 때 축구에 입문하는데 좀더 어린 선수들이 즐기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저학년일수록 흡수도 빠르다. 시스템 개편도 동시에 모색 중이다. 대회 위주가 아닌, 진정한 성장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협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에서 활약한 박지성(37·JS파운데이션 이사장)을 책임자로 임명한 유스전략본부를 운영하는 등 실제로 유소년들의 성장과 육성에 상당히 적극적이다. 사회공헌과 유소년 투자를 연계하는 형태로 기업 스폰서들을 설득하는 작업도 병행 중이다. 다만 불필요한 제도에 가로막힐 때가 종종 있다. 전문스포츠지도사 자격증과 같은 규제다. 특히 축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등 국제기구 차원에서 지도자 라이선스 제도를 오래 전부터 시행해왔다. 국내외 기준을 전부 충족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버겁다. 운동역학, 심리, 해부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정작 현장에서 선수들을 지도할 능력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무난한 정책 조율이 필요한 이유다.

대한축구협회 홍명보 전무이사.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치열한 국제축구계, 우리가 생존하려면?

-축구계의 여야 구분이 예전보다 많이 사라진 추세다.


“화합이 꼭 반대의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축구발전이 곧 모두의 화합이다. 각자의 목표와 속한 조직은 다를 수 있지만 과연 진정 축구발전을 위한 목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인지는 고민해봐야 한다. 모두가 진심으로 축구를 대해야 발전도 가능하다.”


-최근 자주 거론되는 문제가 우리 축구의 외교력이다.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최대한 많은 인재들이 국제축구계로 진입해야 한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AFC 등에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다행히 좋은 일도 생겼다. 정몽규 협회장이 최근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회장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는 점이다. 돌아가며 나눠 갖는 직함이 아닌, 선거를 이기는 과정을 거쳤다. AFC 내부에도 한층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중동은 2022카타르월드컵까지는 위세를 유지할 것이고, 중국의 입김이 커졌다. 아시아의 판도는 어떨까.

“우리를 부러워하는 한편, 경계의 시선도 많다. 우린 모범을 보여야 한다. 대표팀과 클럽의 성적은 물론, 인프라와 문화, 팬까지 고른 성장이 필요하다. 다만 일본, 중국 등 경쟁국들의 발전 속도가 매서운데 이에 대비한 우리 나름의 로드 맵을 설정해야 한다.”

홍 전무는 ‘한국축구 전반의 위기론’에 동의했다. “협회와 산하조직의 구성원들이 굉장히 심각하게 현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고도 했다. 비단 대표팀과 K리그의 부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전 분야에 걸쳐 과도기에 놓였다. 결국 명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또한 각기 다른 입장들을 최대한 아우를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대한축구협회 홍명보 전무이사.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의 길을 걷는다!

-협회의 가장 큰 변화가 기술위원회의 구성이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와 기술발전위원회로 구분됐다. 기술 분야의 독립성은 확실히 가져가야 한다. 전문가들이 자신감과 의지를 갖고 활동하는 환경을 열어야 한다.”


-그럼에도 기존의 기술위원회 역할을 할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의 경우, 국제대회에서 부진했을 때 고위층의 방패막이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당장 월드컵이 있는데.

“물론 성적이 좋지 않을 때 무거운 책임감에서 모두가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만 누군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단순한 대표팀 성적에 따라 인물이 거듭 교체되는 건 악순환의 반복일 뿐이다. 이제는 부정적인 고리를 끊어야 한다.”


-올 하반기에 한국축구는 여러 차례 시험대에 오른다.

“임박한 월드컵은 총력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소속 팀에서부터 국가대표 선수들의 부상과 체력관리, 조별리그 상대국 및 선수단에 대한 정보 수집과 분석 등 체계적인 작업이 진행 중이다. 상대국 분석도 원활하다.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준비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들이 굉장히 민감한 시기인데….

“맞다. 월드컵 최종엔트리를 앞둔 지금은 굉장히 초조하고 불안할 때다. 다만 최대한 마음을 편하고 차분하게 가졌으면 한다. 이미 3월 유럽 원정 시리즈까지 거치며 주사위는 던져졌다. 오히려 부상을 방지하고 컨디션을 최대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뒀으면 한다.”


-2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나설 여자대표팀의 경쟁력 극대화도 필요하다.

“최근 여자축구도 많이 침체돼 있다. 팀도 많이 해체됐다. A매치 추진도 남자부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당연히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는 데 모두가 공감한다. 클럽부터 협회 차원의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최대한 좋은 환경을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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