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C.S.I]“뻔뻔한럭셔리영웅아이언맨이되겠소”

입력 2008-06-02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안방극장과 스크린에는 ‘돌아온 영웅들’이 넘쳐난다. 방송3사의 간판 사극들은 정조의 용병술을, 세종의 지략을, 일지매의 의협심을 펄럭인다. 스크린에서는 화려한 CG로 무장한 영웅들이 업그레이드된 능력을 과시한다. 대부분의 영웅들이 우발적인 사건으로 초인적 힘을 얻는 것과 달리,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은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세팅하고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디스플레이하는 ‘CEO형’ 영웅이다. “나는 배고픈 스파이더맨보다 배부른 아이언맨이 되겠소”라는 어느 네티즌의 명언처럼, 아이언맨의 괴력은 영웅의 순수한 용맹보다는 ‘빌 게이츠도 울고 갈 재력’에서 우러나온다. 전사의 명예를 유일한 재산으로 삼던 과거 영웅과 달리 아이언맨은 시계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럭셔리 아이템으로 무장한 ‘보보스족’의 화신이다. 슈퍼맨, 스파이더맨, 헐크, 원더우먼 등 전형적 할리우드 영웅과 달리 아이언맨은 외부를 향한 복수심보다 자신의 과거를 향한 죄책감으로부터 영웅의 여정을 시작한다. 세계 최고의 무기제조회사를 경영하는 CEO 토니는 게릴라군에 납치되어 무기제작을 강요당하는 수모를 겪은 후 비로소 ‘내가 한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인간을 학살하는 데 쓰이던 재능을 인간을 구원하는 데 쓰기로 결심한 토니. 그의 첫 번째 미션은 그의 위대한 업적을 파괴하는 것이다. 토니의 진정한 적은 게릴라들이 아니라 스스로의 성공 자체다. 자기파괴가 곧 자기창조가 되는 아이언맨의 눈부신 역설은 이렇게 탄생한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속편을 암시하는 마지막 대사(스포일러 주의!), 즉 ‘내가 바로 아이언맨이다!’라는 폭탄선언이야말로 아이언맨을 영웅의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정적 명대사(?)다. 21세기의 눈에 비친 슈퍼맨은 느끼하고 촌스럽지만 적어도 자신의 정체성을 무기로 삼진 않는다. 아무리 뻔뻔한 할리우드 영웅이라도 영웅의 본질은 ‘나타나자마자 사라지는’ 부재(不在)의 미덕에 있었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덜 떨어진(?) 영웅이었던 헐크조차도 모든 임무가 끝난 뒤 아마존 밀림 깊숙이 은둔을 택한다. ‘다크맨’의 마지막 대사는 영웅의 필살기는 무쇠팔 무쇠다리가 아니라 ‘부재로서만 존재를 증명하는’ 소멸의 윤리임을 일깨운다. “I’m everyone, but no one. I’m everywhere, but nowhere.” (나는 모든 사람이지만, 아무도 아니다. 나는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다.) 영웅의 가면은 비겁의 상징이 아니라 영웅적 행위의 ‘저작권’을 말소하는 카피 레프트의 용기를 증명한다. 그러나 진정 치명적인 진실은 영웅의 진화 자체가 아니라 영웅을 끊임없이 불러내는 현대인의 갈증이다. 영웅의 업그레이드 지수는 현대인의 불안과 권태에 정비례한다. 우리의 결핍과 혼돈이 아이언맨같은 ‘3척동자’(잘난 척, 있는 척, 아는 척)의 결정판을 완성한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최근 안방극장의 진정한 영웅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렸던 출산의 기적을 이룬 엄지공주(‘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 엄마와 아빠가 모두 떠나버린 세상에서 제2의 걸음마를 시작한 새미(‘엄마, 난 괜찮아’)였다. 인생이 죽음보다 무서운 곳에서는 적어도 살아남는다는 일 자체가 가장 참되고, 가장 커다란 용기가 아닌지. 정 여 울 TV와 책, 대중문화와 문학 사이의 공존을 꿈꾸는 문화, 문학 비평가. 저서로는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내 서재에 꽂은 작은 안테나’ 등이 있다. C. S. I.는 Culture, Screen And Internet의 약어.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