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남편찾아전쟁터에?…“저라면못할것같아요”

입력 2008-07-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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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수애에게는 4개의 이름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연기자 수애. 그리고 본명인 박수애. 나머지 두 개가 바로 순이와 써니다. 영화 ‘님은 먼 곳에’(감독 이준익·제작 타이거픽쳐스)맡은 배역의 본명과 예명. 마치 수애와 박수애 두 이름 같은 관계다. 처음에는 영화 시나리오에 적혀있던 이름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 마음 깊숙이 순이와 써니가 자리 잡았다. 순이와 써니를 만난 영화 ‘님은 먼 곳에’는 그래서 그녀에게 각별한 작품이다. 수애는 “순이와 써니를 만나면서 박수애와 수애도 변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남편 찾아 베트남 전쟁터까지 떠나는 순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고 말하자, 그녀는 얼굴까지 빨개지며 “순이의 선택이 아닌 숙명이다”고 강하게 항변했다. 영화에서 순이와 써니가 겪었을 아픔을 말할 때는 눈가에 이슬까지 맺혔다. 관객을 대신해 만난 기자 앞에서 수애는 인터뷰 내내 질문에 따라 수애에서 박수애, 그리고 순이와 써니로 변했다. 한 사람과 인터뷰였지만 돌아와 다시 읽은 취재 수첩에는 4명의 여인과 나눈 기쁨, 슬픔, 행복과 눈물이 담긴 대화가 있었다. 그녀는 순이가 됐을 때는 순박한 1960년대 시골 여인이었고 써니가 되서는 당찬 여장부였다. 그리고 수애와 박수애로 돌아왔을 때는 이제 떠나 보내야하는 순이와 써니에게 고마워했고 아쉬움에 눈물 흘렸다. 순이와 써니, 수애와 박수애.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서로 인연을 맺게된 그 4명의 이야기를 여기에 옮겼다. “절 사랑하지도 않는 남편인데…제가 바보 같나요?” 남편은 절 사랑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맺어준 저와 결혼하기 전 대학에서 만난 애인을 아직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혼 하자마자 군대에 갔고 또 말도 없이 월남으로 떠났습니다. 절 사랑하지도 않는 남편 찾아 월남 가는 제가 바보 같다구요? 삼대독자 찾으러 가야한다며 눈물로 지새우는 시어머니. 제가 안가면 당신이 가실 텐데. 며느리 된 도리에 그럴 순 없죠. 요즘 사람들은 잘 이해가 안 되지 않겠지만 저희 때는 다 그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위문공연단 따라 월남에 왔지만 무섭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나라 낯선 사람들. 그래도 어쩝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남편을 꼭 찾아 시어머니께 돌아가야죠. 그리고 남편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도 전해야죠. 월남가기 전날 제게 “니 나 사랑하나?”라고 물었어요. 사랑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몰라요. 하지만 남편을 만나면 무엇인가 한 마디는 꼭 하고 싶어요. “물어볼 거예요…사랑이 뭔지 아세요? 저 사랑해요?” 노래라고는 밭일하고 새참 기다리다 동네 어른들 앞에서 불러 본 게 전부에요. 하지만 어떡합니까. 베트남에 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위문단에서 노래 부르는 일이었어요. 밴드 매니저는 제게 순이가 촌스러워 창피하다며 맘대로 써니라는 새 이름을 지어줬어요. 처음에는 떨려서 도망쳤지만 이제 오기가 생겼습니다. 군인들을 상대로 한 위문공연이니 열심히 노래하면 남편 만날 수 있겠죠. 그리고 군인들을 보면 남편 생각나 연민도 생겨요. 절 보며 잠시라도 전쟁의 공포를 잊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짧은 옷도 창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무사히 집에 돌아가길 바라며 노래했습니다. 남편 찾아다니며 노래하는 써니가 된 후 순이 때는 몰랐던 사랑이 어떤 건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순이는 잘 몰랐지만 써니는 남편 만나면 물어볼 말도 정했어요. ‘사랑이 뭔지 아세요? 저 사랑해요?’ “가슴에 대못 박히는 슬픔 경험…순이와 만나 인생 변화” 솔직히 고백할게요. 전 현장에서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배우였어요. 모니터도 보지 않았어요. 제가 맡은 역할만 해내면 충분한 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스태프들과 마음을 나누지도 못했습니다. ‘님은 먼 곳에’는 여배우로 정말 만나기 힘든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촬영을 하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순이이자 써니로 해외에 나가 있으며 팀이 무엇이지 깨달았습니다. 남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고 감독, 선배 배우들에게 많은 시간 배우며 조금씩 달라져 가는 저를 느꼈습니다. 마지막 부분 남편을 찾아 도착한 전쟁터에서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고 연기인데 진짜 제 일보다 더 슬픈 감정을 경험했습니다. 아직 순이와 써니가 마음에 있어요. 새 영화를 위해 곧 떠나보내야겠죠. 그래서 고맙고 슬픕니다. “음악감상 취미 생기고…불면증마저 싹 없어졌어요” ‘2008년의 박수애씨는 남편 찾아 전쟁터로 갈까요?’라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아니요,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때 우리 어머니들이 정말 대단하셨던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 음악이 갖는 의미요? 전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총을 겨눈 월맹 병사들도 노래를 듣고 살려주잖아요. 미군에 포로가 되는 장면도 그 어떤 언어도 할 수 없는 음악이 주는 소통이 담겨진 것 같습니다. 사실 전에는 음악 듣는 재미를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요즘 항상 CD를 갖고 다니며 차안, 집에서 음악을 듣습니다. 음악이라는 새로운 취미도 생겼고 ‘님은 먼 곳에’는 박수애에게 많은 선물을 줬습니다. 순이의 순수함 덕분인지 혼자 있으면 잠에 들지 못했던 불면증도 사라졌습니다. 순이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요? 혹시 가수가 됐을까요? 남편과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도 많이 낳고. 수애는? 수애는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배우로 꼽힌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질리지 않은 순수함. 그리고 계속된 새로운 연기의 도전은 그녀를 정상의 위치에 올라서게 했다. 영화 데뷔작은 2004년 ‘가족’. 소매치기 가출 소녀역할이었다. 2005년 ‘나의 결혼 원정기’, 2006년 이병헌과 함께한 ‘그해여름’에 이어 ‘님은 먼 곳에’가 4번째 영화다. 사실 가수 데뷔를 준비했지만 현 매니저가 연기자의 자질을 발견, 길을 바꾼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수애는 ‘님은 먼 곳에’를 통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며 옛 꿈을 이뤘다. 하지만 “진짜 가수를 할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는 손사래를 치며 “가수를 꿈꾸는 분들을 생각하면 부끄럽다. 실력도 부족하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경호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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