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의스포츠클럽]새해체육계큰어른탄생을기대하며

입력 2009-01-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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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종반 중요 장면에서 일본의 좌투수(이와세)를 상대로 좌타자(김현수)를 내보내 귀중한 득점을 올리게 함으로써 그 선수는 자신감을 얻었고, 한국 팀은 기본전력 이상의 사기를 낳았다며 베이징 올림픽에서 김경문 감독이 보여준 용병술을 극찬한 일본야구의 영웅 나가시마 시게오(72) 요미우리 자이언츠 종신 명예 감독의 칭찬이 며칠 전 일본 언론에 언급되었다. 2회 WBC를 앞두고 일본 대표팀의 하라 감독에 대한 칭찬도 함께 했지만 그의 말 한마디와 행동은 일본야구계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그는 일본인의 우상이다. 일본인들이 감독 시절 어이없는 작전이나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그를 최고의 영웅으로 섬기는 데는 왕정치, 장훈이란 불세출의 스타가 순수 일본인이 아닌 점도 있겠지만 선수시절부터 보여준 기량과 매너가 지도자시절과 은퇴 후에도 이어져 존경받는 인물로 일본인들 가슴속에 남아있다. 아직도 나가시마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칭찬은 무엇일까. 일본인들은 나가시마를 생각하면 즐거워진다는 말을 한다. 오래전 일본인으로부터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정치인, 연예인, 예술가, 운동선수 등 대중에게 친숙한 인물들 중 국민들이 그를 생각하면 즐거워진다는 소리를 끝까지 듣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 스포츠계도 최근 김연아, 박태환, 박지성, 이승엽 등을 생각하면 즐겁고, 지난 시절의 스타들도 현역시절엔 그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즐거웠던 인물들이 많았다. 그러나 선수시절과 지도자를 거쳐 은퇴한 후에도 그런 소리를 듣는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장점보다 단점이나 약점잡기에 익숙하고, 객관적, 합리적 판단기준도 없이 지연·학연 등에 얽매여 눈앞에 보이는 이해관계를 쫓는 쏠림현상을 예사로 받아들이는 풍토가 계속되면서 우리의 영웅 만들기는 실패로 끝난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분위기는 행정에도 이어져 국내 체육계는 대한체육회장, 대한축구협회장 선임을 앞두고 꽤 시끄러울 것 같다. KBO총재선임은 이미 한차례 거센 폭풍이 지난 후 후폭풍이 어떻게 몰아칠지 긴장감이 야구계에 감돌고 있다. 단체장 선임에서 종래의 잘못된 관행을 타파할 수는 없는 것일까. 진정한 체육발전보다는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무리들을 가려낼 수는 없을까. 요즘 한국체육계엔 큰 어른이 없다. 이해관계 챙기기에 급급한 인물들이 활개치고 있어도 제지하거나 따끔한 충고를 할 어른이 없다. 어른이 없으면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언론도 오랜 경험과 깊은 전문성을 갖춘 기자들 외에는 인물들의 옥석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흥미롭고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진 인터넷 문화로 행정문제를 지적하는 언론의 위상이나 힘은 약화되고 말았다. 스포츠의 가장 큰 덕목은 페어플레이에 있다. 그러나 행정 쪽은 완장만 걸려있으면 페어플레이는 실종되고 만다. 모두가 체육인들의 책임이고 잘못이다. 독일 월드컵때 보여준 불세출 스타 베켄바워의 행정력은 인상 깊었다. 우리의 스타들도 은퇴 후에도 팬들이 생각하면 즐거워지는 인물로 남을 수 있도록 자기관리에 엄격하고 지식·지혜 쌓기를 게을리 해선 안된다. 우리도 베켄바워·나가시마와 맞먹는 후보들은 있다. 스스로를 잘 가다듬고 주변에서 잘 도와주면 국민들이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인물이 탄생할 수 있다. 그런 인물들이 많이 나오기를 새해에 기대해 본다. 야구해설가 오랜 선수생활을 거치면서 감독, 코치, 해설 생활로 야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즐긴다. 전 국민의 스포츠 생활화를 늘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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