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마에,“서울시향에A를주고싶다”

입력 2009-01-14 07: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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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해 온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55) 예술감독이 14일 광화문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담 시간을 가졌다. 정감독은 지난 연말 예술감독으로서 3년의 임기를 마쳤고, 최근 서울시향과 향후 3년간의 활동 계약을 다시 맺었다. 연미복을 입지 않은 정감독을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정감독이 연습실로 들어서자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 박수가 나왔다. 지휘자가 등장하면 손바닥이 먼저 맞부딪치고 보는 관객성향 탓일 것이다. 기자들이 앉은 자리는 방금 전까지 서울시향 단원들이 연습을 하던 곳이었다. 정감독은 기자들을 둘러보고는 “여기 서니 어쩐지 지휘를 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자신이 맡고 있는 서울시향에 대한 ‘애정고백’으로 첫 입을 뗐다. “라 스칼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도쿄필 등 외국 지휘가 많지만, 한국에 없더라도 늘 마음은 여기에 있어요. 어떻게 하면 시향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 예전하고 많이 달라진 점이죠. 그래서 기분이 좋아요. 내가 이렇게 변했다는 것이.” 오랜 외국생활 탓에 발음은 다소 어색했지만, 정감독은 정확하고 풍부한 표현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정감독이 올해 서울시향과 함께 가장 비중있게 생각하고 있는 계획은 사회참여다. 어려운 경제 환경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을 위해 서울시향이 보다 적극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겠다는 얘기였다. “저는 음악을 깊이 믿는 사람입니다. 이 음악(클래식)은 다른 일반 음악들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모든 음악이 아름답고 좋지만, 이 음악에는 특별한 깊이가 있죠. 삶에 굉장히 도움이 될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자선콘서트와 찾아가는 음악회, 교육프로그램에 무게를 뒀다. 당장 오는 18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북한어린이돕기 콘서트’를 연다. 정감독은 지난해 5월부터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정감독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서의 자부심이 강해 보였다. 평소에도 ‘어린이를 돕는 일은 내가 가장 아끼는 일’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세계 모든 어린이들을 돕는 유니세프 일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북한 어린이를 돕는 일에 관심이 많다. 본인 스스로 ‘특별’하고 ‘급한’ 일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가 힘든 시대지만 조금 멀리 보자는 말도 했다. 조금만 멀리 보면 모두 한 가족이니 열심히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북한 평양에서 그가 지휘봉을 잡는다면 어떨까? “오래전, 그러니까 20~30년 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죠. 2년 전인가에도 직접 북한에 가서 북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계획이 다 잡혀 있었어요. 마침 남북 관계가 경색되는 바람에 무산됐지만. 지금까지 매번 계획을 세웠다가도 뭔가 일이 터지는 바람에 못 했죠.” 그가 서울시향을 맡은 이후 서울시향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는 점에 이견을 달 사람은 많지 않다. ‘소리’가 달라졌고, ‘자세’가 변했다. 정감독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관계가 결혼 또는 연인사이와 같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파리바스티유오페라 음악감독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결국 헤어졌잖아요. 서로 좋아하고, 함께 있고 싶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억지로 떨어지게 됐잖아요.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뭘 하든 젊은 사람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든,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든 계약적인 것이든 내가 이 오케스트라를 도와줄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이들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할 때까지 일을 할 겁니다. 책임감을 느낍니다.” 정감독은 2005년 음악감독으로 서울시향과 인연을 맺었고, 이듬해부터는 예술감독으로 3년을 보냈다. “서울시향을 맡으면서 목표는 분명했어요. 다른 것은 몰라도 (연주의) 기초적인 부분만큼은 단단하게 만들자. 잘 시작해 놓고 중도에 무너지고, 깨지고 하지 않도록. 이 오케스트라가 분명히 한 계단 올라섰지만, 내가 떠난 뒤에도 넘어지지 않도록.” 서울시향에 대한 정감독의 점수는 그가 보여준 애정과 비례했다. “솔직히 말해 내 귀로 판단하자면 한국 수준으로 볼 때 ‘껑충’ 뛰었다고 봐야죠. 일단 연습할 때 들어보더라도 예전보다 훨씬 잘해요. 하지만 세계 수준을 얘기하자면, 거기까지 도달하기란 워낙 힘든 일입니다. 이제부터는 ‘껑충’ 뛰어올라가기 어렵죠. 그래도 출발점이 좋아요. 만족합니다. 내가 선생님이라면, 그래서 단원들에게 성적표를 나눠준다면 모두 ‘A’를 주겠어요. 하하!” 지난해 드라마 베토벤바이러스로 인해 국내에는 때 아닌 클래식 음악 붐이 일었다. 베토벤바이러스는 전체적으로 서울시향을 모델로 삼았다는 인상이 짙었다. 극중 이순재씨의 역할이 전 서울시향 단원이었고, 여주인공의 이름은 서울시향 현역 단원의 이름과 같았다. 일부에서는 강마에의 독특한 말투가 정명훈을 닮았다는 얘기도 했다. 정감독은 이 드라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 음악은 굉장히 도움이 필요한 음악이에요. 음악이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히려 거부감을 갖거든요. 그래서 세일즈맨이 필요하죠. 그런 점에서 드라마로 인해 클래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니 참 좋죠. 나도 베토벤바이러스의 마지막 편을 봤어요. 음악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아주 잘 했습니다. 주인공이 지휘하는 모습도 멋있고. 연습을 굉장히 많이 한 모양이더군요. 드라마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감독은 서울시향 취임하던 해 ‘10년 안에 서울시향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만들겠다’고 호언했다. 지금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하하! 이래서 인터뷰란 게 위험해요. 가끔 바보같은 소리가 나온단 말이에요. 사실 음악은 경기가 아니라 그런 얘기는 맞지 않죠. 사람들에게 목표가 있고, 포인트가 있으면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한 소리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10년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10년은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이제 3년이 지났죠? 아직 7년이나 남았군요. 제가 10년을 마치면 그때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저보다는 여러분이 판단을 할 일이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감독은 지난 연말과 올 초 서울시향과 함께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을 연주했다. 이때 강렬한, 그 어떤 느낌을 받았다.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가 되는 것. 그 타오르는 듯한 고양감! “운동경기와 비슷하지만 좀 다른 부분이 있죠. 바로 베토벤의 존재입니다. 베토벤 9번 교향곡의 메시지는 형제애입니다. 아무리 말로 설명을 해도 다 못하는 부분을 음악은 채울 수 있지요. 그러니까 세계적인 넘버1의 작품이 됐겠지만요. 이런 훌륭한 음악을 가진 만큼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찾아가고, 더 사람들을 기쁘고 즐겁게 해 주고. 단 두 시간이지만, 음악회장 안의 사람들이 한 마음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훌륭한가요.” 정감독은 웃으며 덧붙였다. 아주 조금은 뼈가 있는 얘기였다. “베토벤 합창 교향곡을 싸우는 사람들 앞에 가서 공연하고 싶어요. 제발 좀 싸우지 말라고.” 인터뷰가 끝나갈 때 즈음 질문을 던졌다. 음악을 담당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정감독에 대해 품은 단 하나의 불만이 있었다. 정명훈 감독은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왕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좋은 계획을 세웠으니, 기자들과도 종종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음, 사실 제가 말을 잘 못해서 그렇습니다. 말을 한 번 시작하면 잘 하지도 못하는 말을 하고 또 하고 … 그리고 나중에는 창피해 하고, 후회하고 그래요. 그런데 이거 아시나요? 만약 제가 길을 가다가 누군가, 정말 아무나 옆에 와서 ‘제가 성악을 공부했는데 한 번 들어봐 주시오’하면 제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항상 듣습니다. 인터뷰를 하시든 오디션을 하시든 꼭 필요하다 싶으면 아무 때나 오세요. 저한테 창피를 주시려면 언제라도 인터뷰 해 주세요. 하하하!” 정감독은 16일 서울시향의 마스터피스 시리즈로 2009년 시즌에 본격 돌입한다. 이날에는 드뷔시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림스키코르사코프 ‘세헤라자데’가 연주된다. 지나온 3년보다 앞으로의 3년이 더 기대되는 첫 공연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제공|서울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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