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베이스볼에세이in하와이]정현욱“뜻밖행운,우승까지쭉”

입력 2009-02-20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삼성 선동열 감독은 하와이로 떠나는 정현욱(31·사진)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답니다. “떨어지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고 씩씩하게 돌아와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투수들이 워낙 쟁쟁하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뜻이었죠. 이 일화를 들려주던 강성우 배터리 코치가 배를 잡고 웃습니다. 정현욱도 웃어버립니다. “저도 이미 체념이 돼 있는 상태였거든요. 1차, 2차 엔트리 발표 때마다 ‘이번엔 빠지겠지’ 하다 ‘어!’ 하고 놀라곤 했으니까요.” 어깨가 아픈 박진만과 나란히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결의도 했답니다. “형은 아파서 탈락하고 나는 그냥 탈락할테니까 둘이 같이 오키나와로 돌아갑시다.” 그런데 남게 됐습니다. 김병현(전 피츠버그)이 여권을 잃어버리면서 자연스레 탈락자가 정해진 거죠. 좌불안석이던 마음이 드디어 차분해졌습니다. “솔직히 얼마나 창피할까 싶었어요. 쓸쓸히 떠나는 것도 그렇고, 팀에 복귀했을 때 동료들이 놀릴 것도 그렇고…. 이제 좀 할 말이 생겼네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활짝 웃는 이유, 물론 있습니다. 첫 WBC가 한창이던 2006년 3월, 정현욱은 공익근무 중이었습니다.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진짜 부럽다고요.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서보고 싶은 무대 아닐까요? 그 경기장, 그 선수들, 그 관중, 그 분위기. 올림픽이랑은 또 다르잖아요.” 팀 동료들의 부러움도 한 몸에 받았답니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에 빛나는 권혁조차 “와, 형님은 좋겠어요” 했다니 말입니다. 물론 첫 태극마크가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아직 서먹서먹한 선수들도 많고, 긴장감도 큽니다. “첫 평가전(19일)에 나갔더니 아무래도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폭투들 보셨죠? 좀 민망하네요. 이러다가 대회 때 던질 수 있으려나 몰라.” 마음을 다잡기 위해 스스로를 낮춰보기도 합니다. “농담 삼아 이런 얘기도 해요. 투수 엔트리 열세 명 중에 제가 열세 번째 투수라고요.” 하지만 3년 전,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예상한 이는 없었을 겁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집니다. 일본과 미국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사람들이 정현욱을 ‘WBC 우승의 주역’으로 기억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정적인 장면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니까요.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