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音談패설]거문고앙상블‘다비’를만나다

입력 2009-08-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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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다비(왼쪽부터 강희진·안정희)가 거문고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음악의 ‘단비’를 부르는 것이 다비의 꿈이다.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인생같은거문고로인생단비뿌려줄래요…때론거칠게때론부드럽게우리네삶같은거문고에푹∼
‘다비’란 이름이 참 예쁘다. 뜻을 물으니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비’라고 했다. ‘단비’가 ‘다비’가 되었다. 음악평론가 현경채는 ‘다비( )’라는 근사한 이름을 선물했다. ‘부드러운 애교로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라’는 얘기다.

다비는 세 명의 여인이 모인 거문고 앙상블이다. 거문고는 중국에도, 일본에도, 하물며 북한에도 없는, 유일하게 한국에만 존재하는 악기다. 그래서일까. 가야금 앙상블은 많아도 거문고만으로 구성한 앙상블은 희귀하다.

거문고만으로 연주하는 금율악회가 있다. 국립국악원 지도위원이자 거문고의 대가인 이세환이 중심이 된 모임이다. 다비의 세 사람은 금율악회에서 만났다. 한 스승 밑에 있다가 의기투합해 독립했다.

다비의 두 사람을 만났다. 본래 세 명이지만 단원 중 정호정(29)씨가 최근 출산을 해 현재는 강희진(32), 안정희(28) 두 사람이 활동하고 있다. 이달 말에 출시되는 다비의 첫 음반은 세 사람이 함께 녹음했다.

대부분의 연주단체가 음반을 내고, 이를 바탕으로 삼아 활동을 시작하는데 다비는 거꾸로다. 2007년 창단 이래 국내외 숱한 무대에서 활발히 연주활동을 했다. 이번 음반은 작지만 커다란 2년의 결실이다.

1집의 타이틀은 ‘The 스토리’이다. 화사한 꽃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국악 특유의 분위기가 기름기 빠지듯 제거돼 있다.

“(안정희)쉽고 재미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거든요. 다만 그 소재가 거문고일 뿐이죠. 요즘 가야금, 해금에 비해 거문고가 많이 밀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비를 통해 ‘거문고도 꽤 괜찮은 악기로구나’해주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거문고는 영원한 가야금의 라이벌이다. 여러모로 비슷해 국악에 익숙하지 않은 이의 귀에는 둘 사이의 소리가 구분되지 않기도 한다.

“(강희진)거문고는 현악기면서도 타악기적인 특성을 지닌 유일한 악기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하죠. 가야금보다 현이 굵어서 저음을 낼 수 있고요. 남성적이면서 씩씩하다고 해야 할지. 꿋꿋한 느낌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잘 맞아요.”

“(안정희)악기 자체가 솔직하거든요. 거칠고, 둔탁하고. 우리 사는 게 그렇잖아요. 항상 예쁠 수만, 항상 행복할 수만은 없잖아요. 사실 거문고는 안 좋은 소리도 나요. 그것도 매력이죠. 그래서인지 거문고 하는 사람들은 다른 악기에 비해 털털한 것 같아요(웃음)”

공연 에피소드를 들려달라고 하자 두 사람 모두 ‘비!’하고 입을 모았다. 다비가 공연할 때는 이상하게 비가 왔단다. 그것도 폭우였다.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다비의 세 번째 정기연주회가 열린 날, 하늘엔 구멍이 났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억수처럼 쏟아졌지만 대공연장은 만석이었다. 인천시립박물관 야외공연에서도 폭우가 내렸다. 이날 공연팀 중 가장 호응이 높았던 팀으로 인정받아 다시 초청 공연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비였다.

다행히 실내공연이었는데, 자리가 모자라 계단까지 관객이 들어찼다. 이쯤 되면 ‘다비’를 ‘다비(多雨)’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다비 첫 음반을 말할 때 작곡가 박경훈(28)을 빼놓을 수 없다. 음반 수록곡 10곡은 모두 박경훈의 창작물이다. 국악계에서는 ‘감성’으로 소문난 젊은 작곡가다.

“(안정희)국악작곡가가 여러 분 계시지만 저희에게 딱 맞는 음악을 만들어 줄 사람을 만나야 했죠. 평소 친분이 있기도 했지만, 박경훈의 감성과 다비의 감성이 합쳐지면 어떨까 기대감이 컸어요.”

“(강희진)선율이 참 예뻐요. 거문고 음악이 대체로 선이 굵고 리듬 위주가 많은데, 박경훈씨의 작품은 달랐죠. 연주자들로선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 작품들이에요. 높은 음도 많고요.”

박경훈은 다비의 곡들을 군 복무 중에 썼다. “작곡료는 많이 받았냐”고 물으니 박경훈씨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면회를 자주 와 주었거든요”.

음반을 내기 전 다비 멤버들은 스승과 여러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했다. 음악을 들려주고 평을 청하기도 했다. 단소리 못지않게 쓴소리도 들었다. 모두 잘게 갈아 발전의 약으로 삼았다. 특히 음악뿐 아니라 인생의 큰 스승들인 서한범(단국대)·홍주희(수원대) 교수의 도움이 컸다.

다비는 첫 음반 발매와 함께 쇼케이스를 겸한 두 차례의 콘서트를 연다. 9월 5일 서울 남산국악당 공연에는 서한범, 홍주희, 이주향 교수와 음악평론가 현경채씨가 초대손님으로 출연한다. 10월 9일에는 인천종합예술회관 야외특설무대에 오른다.

다비는 “이번 공연에는 제발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비가 내릴지언정, 그 비는 단비일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단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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