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스타트도무결점…‘퍼펙트볼트’

입력 2009-08-22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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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주로를 빠져 나오는 우사인 볼트(23·자메이카)는 한 마리의 인간치타였다. 전광판에는 19초19가 찍혔다. 볼트가 21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12회 세계육상선수권 남자200m 결승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17일 남자100m 결승에서도 세계기록(9초58)으로 1위를 차지한 볼트는 베이징올림픽에서 이어 메이저대회 2회 연속 100·200m 세계기록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일 준결승을 마친 뒤, “올 시즌 100m에 집중하다보니 200m 훈련을 많이 하지 못했다” 고 엄살을 부렸던 볼트는 “레이스가 썩 맘에 들지 않았지만 가장 빠른 기록이 나왔다” 며 세계기록 재경신의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이제 스타트에서도 인간한계에 도전한다

일반적으로 단거리선수들의 200m기록은 100m기록을 2배한 것보다 더 낫다. 이유는 스타트와 가속의 메커니즘에 숨어있다. 100m를 20m씩 5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보면, 스타트 이후 구간의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 볼트는 17일 100m레이스에서 60-80m구간을 1.61초 만에 달린 반면, 첫 20m는 2.89초가 걸렸다. 마지막구간(80-100m)은 1.66초. 200m는 100m를 2번 달리는 것과 달리, 스타트 이후 가속의 과정을 1번 생략할 수 있기 때문에 기록면에서 유리하다. 장신(196cm)인 볼트의 유일한 약점은 스타트. 하지만 21일 경기에서는 스타트반응속도(0.133초)까지 가장 빨랐다. 스타트 반응속도가 0.1초 이내이면, 부정출발. 연구결과 인간의 반응속도가 그보다 더 빠를 수는 없기 때문에 예측출발을 한 것으로 간주한다.

팀 몽고메리(미국)는 2002년, 0.104초라는 경이로운 스타트 반응 시간을 기록한 적이 있었다. 볼트는 이제 스타트반응속도까지 인간한계에 다가서며 무결점의 스프린터로 나아가고 있다.

○곡선주로에서 천부적인 리듬감 탁월

200m는 곡선주로와 직선주로를 각각 100m씩 달린다. 곡선주로 100m에서는 원심력이 가속을 방해한다. 만약, 1스타디온(Stadion·약 192m)을 직선거리로 달렸던 고대올림픽의 단거리 종목처럼 현대에도 200m를 직선주로에서만 뛰었다면 19초벽은 이미 예전에 허물어졌을 것이다.

곡선주로 100m 중에서도 초반 50m는 곡선으로 들어가는 구간이고, 후반 50m는 곡선에서 나오는 구간이다. 특히, 선수들은 초반 50m에서 급격한 커브로 빨려 들어가면서 가속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하지만 볼트는 이 과정에서의 리듬감이 천부적이다. 볼트는 21일 경기에서 초반50m를 5.6초 만에 달린 뒤, 50-100m구간에서는 4.32로 가속을 내며 곡선주로 100m를 9초대(9초92)에 통과했다.

남자200m 한국기록(20초41) 보유자 장재근 대한육상경기연맹 이사는 “초반 10m를 넘어서면서부터 원심력과 싸우기 위해 몸을 기울이고, 오른다리를 왼다리보다 더 길게 뻗는다”면서 “볼트는 이때 천부적인 유연성으로 원심력을 이겨 낸다”고 설명했다. 21일 레이스에서 볼트는 이미 곡선주로부터 상대를 압도했다.

○200m에서 볼트의 직선주로 100m기록은 9초27이었다.

곡선주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00m보다 200m의 평균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은 마지막 직선주로 100m의 평균속도가 엄청나다는 것을 뜻한다. 2007오사카세계선수권 200m 결승에서 타이슨 게이(27·미국)는 후반 100m를 9초63에 달렸다. 당시 100m세계기록은 9초77. 21일 볼트의 200m레이스에서도 마지막 직선주로 100m 기록은 17일 자신이 세운 100m 세계기록(9초58)보다 빠른 9초27이었다.

볼트는 21일, 직선주로로 접어든 이후 100-110m 구간에서 폭발적인 스피드로 상대선수들과의 차이를 벌렸다. 체육과학연구원(KISS)에서 단거리를 담당하는 김정훈 박사는 “100m는 근 수축 속도가 너무 빨라 오히려 200m보다 최고파워를 내는데 불리하다”면서 “자동차가 적정 회전수에서 최대출력이 나오는 것처럼 인체 역시 200m 주행 시 근 수축 속도에서 최고 파워를 낸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의 자료에 따르면 볼트의 BMI(신체질량지수)는 20.40. 마이크 파월(24.38)과 타이슨 게이(23.15)보다 낮다. 일반적으로 운동선수의 경우, BMI가 낮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근육량이 적다는 것을 뜻한다. 볼트는 2009베를린세계선수권에서 베이징올림픽 때보다 더 탄탄한 몸매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직 세계의 스프린터들에 비하면, 호리호리한 편. 근력을 보강해 최고파워를 높이면, 더 큰 가속을 낼 수 있다. 김 박사는 “그래서 볼트의 한계는 예측불가”라고 했다.

○계산된 액션은 루틴, 스포츠 심리학의 관점에서도 가장 강한 볼트

볼트는 21일 경기에서 한 번의 부정출발 이후에도 최고의 스타트 반응속도를 보였다. 2번째 부정출발은 바로 실격처리. 선수들의 부담감은 그만큼 컸다. 볼트가 그 와중에서 가장 빠른 스타트를 기록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가장 안정됐다는 증거다.

스포츠심리학을 전공한 체육과학연구원(KISS) 신정택 박사는 “볼트의 과장된 액션들은 스포츠심리학의 관점에서 일종의 루틴으로, 계산된 행동일 수 있다”고 했다. 루틴은 최고의 경기력에 필요한 심리상태를 만들기 위해 취하는 의식이나 절차. 박태환(20·단국대)이 경기를 앞두고 음악을 듣는 것이나 베이징올림픽양궁금메달리스트 박성현(26·전북도청)이 모자를 만지는 것, 심지어 MLB 노마 가르시아파라(36·오클랜드)의 산만한 타격 준비동작도 루틴의 일환이다. 단거리에서 긴장감은 근육의 뻣뻣함으로 이어져, 경기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을 가졌기에, 볼트는 한 줄기 바람이 될 수 있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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