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가 간다] 맥주병도 둥둥 뜬다? 첨단수영복 체험

입력 2009-11-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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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희 기자의 반신 수영복 체험.태릉 |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쫄쫄이’<제로플러스 수영복>입은 비만 돌고래…로프 잡고 SOS
때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9월이었다.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던 시절. “외국선수들도 다 한국을 찾은 손님이니 열심히 응원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당부를 가슴에 새긴 채, 고사리 손들은 수영장에 갔다.

남자100m결승이었나? 한국선수가 없어 약간의 지루함이 엄습하는 순간. 벼락같이 한 선수가 눈에 들어왔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압도적으로 치고나가는 그는 마치 63빌딩 대형수족관 안의 물고기 같았다. 서울올림픽 5관왕 매트 비욘디(44·미국)의 역영(力泳). 조숙한 여학생들은 “얼굴도 잘 생겼다”며 눈빛에서 하트모양을 내뿜었다.

그 길로 88체육관수영장에 등록했다. 하지만 웬걸. 물에만 들어가면 가라앉는 저주받은 몸. ‘인간난파선’이었다. 한 달의 시간이 흐른 뒤, 수영장과는 아쉬운 이별.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2009로마세계수영선수권. 무더기 신기록의 이면에는 ‘첨단수영복’이 있었다. ‘기술적 도핑’ 논란 속에 결국 국제수영연맹(FINA)은 2010년 1월부터 첨단수영복을 퇴출시키기로 결정했다.

이제 2달도 남지 않은 유효기간. 과연 첨단수영복은 일반인에게도 효과가 있을까. ‘20년 만에 실내수영장속으로 풍덩.’ 5일 태릉선수촌을 찾았다.‘쫄쫄이’ 입은 비만 돌고래…로프 잡고 SOS

○기록제조기 수영복, 옷이 날개?


2009년 화제의 수영복은 단연 아레나 사(社)의 ‘X글라이드.’ 무명에 가깝던 파울 비더만(23·독일)은 2009로마세계선수권 남자자유형200m결승에서 이 수영복을 입고, 스피도 사(社)의 레이저레이스를 착용한 마이클 펠프스(24·미국)를 제쳤다. 국내에서는 ‘X글라이드’가 시판되지 않는 탓에, 아레나 사(社) ‘아쿠아포스 제로 플러스(이하 제로 플러스)’를 입고 물살을 가르기로 했다.

‘제로 플러스’는 ‘X글라이드’의 동양선수용 판. 서양선수들은 어깨 등 상체 근육이 상대적으로 더 발달해 물과 공기의 저항을 더 받는다. 따라서 전신수영복은 서양선수들에게 더 효과가 크다. ‘X글라이드’의 주류도 전신수영복.

반면, ‘제로플러스’는 전신수영복에 불편함을 느끼는 동양선수들은 위해 반신 수영복만 개발했다. 재질은 두 수영복이 동일하다.

기자의 ‘첨단수영복체험’은 사실 최초가 아니다. 8월, 로이터통신의 이언 심슨은 전신수영복을 입고 50m를 헤엄쳤다. 기록은 무려 28초73. 평소보다 3초가량 빨랐다. 하지만 심슨은 수영선수 출신에 수영코치까지 역임한 적이 있다. 일단, 50m를 가려면 수영을 할 줄 알아야…. 계영200m 한국기록(1분35초91·1996년)보유자인 경영대표팀 배형근(35) 코치를 일일강사로 초빙했다.

같은 옷, 다른 느낌 서양선수들의 울룩불룩한 근육은 동양선수에 비해 많은 저항을 일으킨다. 박태환(왼쪽)처럼 매끈한 몸매가 저항을 이기는데도 최고. 그렇다면 전영희 기자처럼 축 늘어진 살은 부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반적으로 체지방 비중이 높은 비만체형은 비중이 작기 때문에 물에 더 쉽게 뜬다. 스포츠동아DB(왼쪽) 태릉|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헐레벌떡, 호흡곤란. ‘돌고래가 되고픈 하마’

우선 삼각수영복 착용. 아랫배보다도 더 아래쪽이 드러났다. 빨리 물 속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 뿐. “뒤태는 예쁘다더니 그렇지도 않네!” 경영대표팀 박성원(37) 코치의 짓궂은 농담에 발그레 해진 얼굴. 뒤도 안돌아 보고 입수했다. 거구의 배형근 코치까지 들어오자 태릉수영장의 수면은 더 높아진 듯.

자유형에서는 크롤 영법이 주로 쓰인다. 킥을 통해 몸을 띄우고, 스트로크를 통해 추진. 수영담당기자 2년, 주워들은 것은 많아서 S자형 스트로크를 시도했다. 물을 잡아 뒤로 채는 캐치 업(Catch up)에서 팔 모양이 S자가 돼 붙여진 이름. 배 코치는 “물을 더 많이 긁기 위한 기술로 기교를 중시하는 동양선수들이 많이 쓴다”고 했다.

반면 I자형 스트로크는 더 파워가 있고, 스트로크를 더 빠르게 할 수 있다. 10년 전부터 파워수영이 주류를 이루면서 현재는 I자형 스트로크가 대세. 박태환(20·단국대) 역시 I자형 스트로크를 쓴다.

S자로 팔을 휘젓다보니 몸은 점점 뒤틀리고, 꼬였다. “초보자가 무슨…. 그냥 편하게 (스트로크) 하세요.” 20m를 넘어가니 호흡이 문제다. 옆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 숨을 들이마셔야 하지만, 리듬이 깨지자 한 없이 고개를 쳐들었다. 하마로 변신.

상체가 들리니 하체는 떨어지고, 몸은 물속으로 ‘꼬르륵’ 침잠했다. 숨을 쉬기 위해서는 고개를 더 들어야 했다. 악순환의 반복. “가만있으면 뜬다니까요!” 답답함을 토로하는 배형근 코치.

성인의 경우 숨을 들이 쉰 상태의 비중은 약 0.94, 숨을 내쉬면 1.03이다. 물의 비중이 1.0이므로, 이론상으로는 호흡조절만으로도 수중부양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론이 현실에 바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기에 ‘훈련’은 필수.

숨이 차 폐부가 터질 듯했다. 결국 다리를 바닥에 닿게 하려 했지만, 이미 수심은 2m를 넘어섰다. 다급하게 코스로프를 잡았더니, 박성원 코치의 호통. “그거 200만원 넘는 거라니까요. 망가지면 큰일 나요.”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상황. 패잔병처럼 물 밖으로 기어 나왔다.

2번째 도전 만에 50m 완영(完泳). 처음에는 크롤영법으로 시작해 중간에는 평영, 마지막에는 개헤엄으로 들어왔다.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자유형(freestyle)이니 상관없다 위안하면서 스톱워치를 쳐다봤더니 1분18초49.


○고갈된 체력과 향상된 부력 사이의 사투

드디어 ‘제로플러스’ 착용. 가장 큰 사이즈(O)라고 했는데도 과연 몸에 들어갈까 싶다. 아레나 이기범 마케팅 실장은 “일본에서 특별 공수한 것으로 국내에서는 단 1벌밖에 없는 사이즈”라고 했다.

‘제로플러스’는 신축성이 떨어져, 입는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10분. 착용 도중 손톱이 걸려 수영복이 찢어지는 경우도 빈번해 특수 장갑까지 끼었다.

발목을 넣은 후, 1cm씩 잡아당겨 수영복을 밀어 올렸다. 수영복이 몸을 꽉 감싸 안은 느낌이다. 선수들의 말처럼 ‘몸의 콘돔.’ 매끈한 유선형이 됐다. 헤엄을 치면 인체의 근육은 미세한 진동을 시작하는데, 이 진동이 저항의 주원인.

수심 2m 로프는 생명줄 허리정도 높이에서 시작한 태릉수영장의 수심은 50m밖 결승선에서는 3m로 깊어진다. 무아지경 스트로크를 하다가 잠시 지면을 딛으려고 하자, 끝없이 잠수. 결국 로프에 몸을 기댈 수밖에 없었다. 태릉 |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첨단수영복들은 근육을 단단히 잡아주기 때문에 진동을 최소화시킨다. 여기에 폴리우레탄 재질이 부력을 증가시키는 효과까지 더해진다.

터질 듯한 몸을 이끌고 입수. 아랫배 부분에 거북이 한 마리가 받쳐주는 듯, 하체가 이전보다 더 떠오르는 느낌이 확연하다. 50m 결승선을 향해 출발. 역시 문제는 호흡이었다. 첨단수영복이 산소마스크 역할까지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헉헉’대다 30m지점에서 포기. 그 때까지 기록은 30초였다. 주변에서는 ‘마의 1분벽’을 깰 페이스였다며, 아쉬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재도전을 시작할 때쯤, 쑤셔 오는 어깨. 시간이 흐를수록 기록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력 소진이라는 마이너스 변인과 첨단수영복이라는 플러스 변인사이의 싸움이 시작됐다. 사력을 다한 최후의 레이스.

40m 지점에서 잠시 물 위에 떠 숨을 돌렸음에도 1분12초14. 삼각수영복보다 기록은 6초 이상 단축됐다. 배형근 코치는 “아예 부력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첨단수영복의 효과가 더 클 수 도 있다”며 웃었다.

2시간 남짓 동안 이래저래 헤엄친 거리는 약 500m. 배 코치는 “훈련 덕 인지, 조금씩 자세가 좋아졌다”고 칭찬했다. 6초의 차이는 노력의 결과일까. 기술도핑의 힘일까. 2010년 1월부터 첨단수영복은 금지된다. 하지만 선수들은 또 다시 하루 최대 1만4000m의 기록단축물살을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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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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