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어’ 이동수의 인생스토리 “월급타는 연극쟁이…살 맛 납니다”

입력 2009-11-30 16:13:08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배우 이동수. 사진 | 김종원기자 won@donga.com

 

스물여덟 늦깎이로 배우 입문 ‘3년봉’이 16만원인적도 있어
서른에 찾아온 연기인생 위기 격려의 힘으로 다시 일어섰죠

   
하루에도 수십, 수백여 편의 작품이 별처럼 탄생하고 소멸하는 세상. 그러고 보면 대학로는 꽤 하드 보일드한 세계다.

살아남는 자보다는 확실히 사라지는 쪽의 수가 압도적이다.

연극 ‘라이어’는 대학로의 간판과도 같은 작품이다. 투박하고 우스꽝스러운 거짓말에 질리지도 않는지, 벌써 11년째 무대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쉬는 날도 없다.

1년 365일 매일 공연하며 토요일엔 무려 3번이나 한다.

1탄이 대성공을 거두자 3탄까지 만들어져 동시 공연하고 있다.

배우 이동수(35)는 라이어(원조 1탄이다)에서 존 스미스로 나온다. 직업은 택시드라이버. 현모양처인 본처와 섹시하고 요염하며 틈만 나면 남자를 침대로 끌고 들어갈 궁리만 하고 있는, 전형적인 ‘세컨드’ 타입의 둘째 부인 사이에서 거짓말 하나로 버티고 있는 사내 역이다.

이동수는 꽤 늦은 나이에 배우가 됐다. 대학에서 기계설계를 전공하던 그는 군 복무 중 ‘나는 배우가 되겠노라’고 마음먹었다. 제대 후 잘 다니던 학교를 때려 치고 부산에서 무작정 상경한 것이 28세. 사극 ‘용의 눈물’(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것이다)에서 엑스트라 병졸로 데뷔했다.

이성계(유동근) 뒤에 기립한 상태로 딱 0.2초 나왔다.

“방송과 영화 단역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돈 떨어지면 노점상도 하고. 그러다 연기를 좀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극단이 주최하는 워크숍 과정에 들어갔는데, 선생들이 다 저보다 어리더군요. 그래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지금도 오늘 아침 일처럼 기억에 선명하다. 2002년 3월의 어느 날, 오후 2시 무렵. 코딱지만한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캐스팅 제의였다. 두 말 않고 “감사합니다”만 외쳤다. 전화를 끊고 진짜로 펄쩍펄쩍 뛰었다.

“그게 ‘유리가면2’였어요. 제대로 된 데뷔였지요. 이 작품 이후로는 다른 걸 돌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유리가면2’ 이후 ‘한여름 밤의 꿈’, ‘월미도 살인사건’, ‘벚꽃동산’, ‘더 플레이 엑스’, ‘밑바닥에서’, ‘블루다이아몬드’ 등 연극과 뮤지컬 출연이 줄줄이 이어졌다.

“주연을 꽤 많이 했고, 현재 하고 있는 라이어는 대학로 최고의 스테디셀러 작품입니다. 어떻습니까?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

“하하하! 라이어하면서 꼬박꼬박 월급이란 걸 받고 있죠. 넘쳐나는 돈은 아니지만 일정 수입을 받으면서 공연을 한다는 건 대학로에서 드문 일이거든요.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 중인데 다행히 생활에 큰 지장은 없네요.”

183cm 장신의 이동수를 펄쩍펄쩍 뛰게 만들었던 데뷔 공연은 두 달 출연하고 10만원을 받았다. 이후 3년 동안 그가 연극판에서 받은 돈은 16만원. 연봉도 아니고 ‘3년봉’이 16만원이었다는 얘기다.

그저 무대가 있고,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이 감사할 뿐, 돈 생각은 언감생심이던 시절이었다.

남들 다 찾아오는 위기가 이동수라고 곱게 돌아가 줄 리는 없다. ‘벚꽃동산’을 할 때, 그는 처음으로 ‘배우를 그만둬야 하나’하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조민기, 김호정, 김정란 등 하늘같은 선배들과 공연했습니다. 제가 막내였죠. 워낙 뛰어나신 분들이라 같이 있자니 기에 눌렸다고 해야 할지. 나중에는 선배님들의 애정 어린 충고조차 상처가 되더라고요.”

 


딱 서른이 되던 해였다. 방 안에 틀어박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자작 1인극을 했다.


Q. 동수야, 연극 안 하면 니 굶어 죽나?
A. 요즘 세상에 뭘 하든 어디 가서 밥 못 벌어먹고 살겠나.


Q. 그럼 니 젤 잘 하는 게 뭐고?
A. 연기.


Q. 그럼 일을 하면서 젤 행복할 수 있는 건 또 뭐고?
A. …

소속 극단인 애플씨어터 전훈 대표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때 전 대표만은 “이동수, 너 잘 하고 있어. 지금처럼만 해”라고 힘을 줬다. 그래서 그는 후배들에게 질책보다는 격려를 많이 해준다. 힘들었던 시절, ‘격려의 힘’을 몸소 배웠기 때문이다.

배우 이동수에게는 소중한 좌우명이 있다. ‘벚꽃동산’ 시절 대선배님이 느닷없이 “동수야, 너를 위해 기도해주마”하고 해 주었던 기도문이다. ‘뜨거운 가슴과 끝없는 겸손을 갖게 하소서’. 기도는 5초 만에 끝났지만, 그 여운은 50년을 갈 듯하다.

“욕심이 딱 하나 있어요. 제가 무대에서 웃을 때, 관객들이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있는 연기. 제가 무대에서 눈물 한 방울을 흘릴 때, 관객들은 웃을 수 있는 연기. 그런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멋지다. 이동수의 눈이 번쩍번쩍 빛난다. 이런 연기를 위해서라면, 다시 한 번 ‘3년봉 16만원’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마저 엿보인다.

무대에서 내려온 그는 더 이상 ‘라이어’가 아니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