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세운 이발소, 83년 동안 제자리

입력 2009-12-02 17:4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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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낙네들이 빨래터에 모이 듯, 남자들의 ‘수다방’이었던 이발소가 사라지고 있다. 80년대까지 전국에 8만 5천여 점포였지만 올해는 1만여 곳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다. 하얀 가운 차림의 이발사들이 뽐내는 숙련 된 면도 기술도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 청파동 만리동시장 골목. 신축 건물들 사이에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초라한 건물이 돋보인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청홍백색의 이발관 표시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난 1927년에 이곳에 지어진 뒤 올해로 83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성우 이용원’이다. 마치 70년대 풍경을 재현해 놓은 영화세트장을 연상케 한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초가집으로 지어졌다가 해방 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5평 남짓한 이발소 내부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한가득 이다. 내부 중앙에 위치한 연탄난로 위에는 커다란 양철통에 담긴 물이 끓고 있고 난로 연통을 고정시킨 얇은 철사 줄에는 뻣뻣한 수건들이 걸려 있다. 푹신한 이발의자 앞에는 뿌연 대형거울이 걸려있다. 거울 밑으로 바리캉이며 철 빗, 면도기 같은 이발기구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한쪽 귀퉁이에는 요즘은 보기 힘들어진 면도칼을 가는 50년 된 낡은 말가죽 혁대가 걸려 있다. 이발소 안은 포마드 기름, 각종 염색약, 크림로션 냄새로 가득하다.

이 이발소는 이남열 씨(61)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이 씨는 외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이발경력만 45년째이다. 1964년에 아버지 밑에서 보조로 일하다가 1971년 정식으로 이발사 면허증을 갖게 됐다. 이 씨는 “70~80년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며 “요즘은 하루 평균 5명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씨는 오로지 가위로만 머리를 자른다. 손님 한명의 머리를 자르는데 사용하는 가위는 모두 5종류나 된다. 이른바 ‘전통이발’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이 씨는 “‘전통이발’ 방식으로 머리를 자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내가 유일하다”며 전통이발 방식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어릴 적 빨래판 위에 앉아 하얀 가운을 입은 이발사 아저씨의 포근함, 꾸벅꾸벅 졸다가도 차가운 비누 솔을 문지를 때면 정신이 번쩍 들던 기억. 우리 동네 이발소가 그리워진다.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shk919@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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