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하정규] 비밀스러운 윤진서의 ‘정사신’ 만 남은 ‘비밀애’

입력 2010-04-04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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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비극적 사랑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함이 있게 마련이다.

의식불명에 빠진 형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 쌍둥이 동생의 이야기를 그린 '비밀애'는 도회적인 금기된 사랑 이야기에 쌍둥이 형제간의 미스터리를 결합한 독특한 멜로 스릴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몰개성, 부실한 연출과 연기, 전체적인 짜임새 부족이라는 기초적인 부실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한 여자를 사랑한 쌍둥이 형제의 비극 '비밀애'(유지태 윤진서 주연)유지태는 연이(윤진서)라는 여자를 사랑하는 쌍둥이 진우,



▶ 남편의 모습을 한 시동생

남편의 멋진 모습이 나오는 화목하고 아름다운 결혼식 비디오를 보고 또 보는 여주인공 연이(윤진서 분).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 진우(유지태)는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고 그녀는 남편을 간호하며 기약 없는 시름의 나날을 보낸다. 해외에 있던 진우의 동생 진호가 오랜만에 귀국하는 공항에 마중 나간 연이는 뜻밖에도 형과 똑같은 모습의 쌍둥이 동생을 보고 놀란다.

힘들고 외로운 병간호에 지친 연이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동생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연이는 점점 이끌리게 되고 결국 뜨거운 정사를 나누며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이 와중에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기적적으로 깨어난 남편의 목소리가 휴대전화를 통해 들려오자 연이는 놀라움과 당황에 휩싸인다.


▶ 주인공들의 몰개성과 연기력의 부재


이 영화에서 우선 지적되어야 할 것이 주인공 캐릭터들의 몰개성이다. 여주인공 연이의 경우, 영화를 본 후 어떤 개성을 가진 여자인지를 한참 생각해 보려고 해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즉 영화에서 나오는 여러 대사나 행동들이 이 여인이 가진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은 이 영화의 가장 치명적인 부실이다.

유지태가 연기한 형 진우나 동생 진호도 마찬가지다. 즉 의지가 강한지, 우유부단한지, 대담한지, 수줍은지, 외향적인지, 내성적인지 도무지 표현이 안 된다.

굳이 정의하자면 이 남녀들은 오로지 비극적인 통속극에 어울리는 '모호하게 우수에 젖은' 아름다운 외모와 매력을 가진 남녀로밖에 정의되지 않는다.

이렇게 개성이 없는 주인공들을 연기하다 보니 윤진서와 유지태의 연기력도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윤진서의 대사 연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일정한 음높이와 크기를 보여준다. 아무리 다급하거나 놀라운 상황이라도 말이다.

유지태의 연기는 영화 내내 약간은 바보스럽게 순진한 특유의 미소나, 그게 아니면 과도하게 일그러진 심각한 표정의 두 가지 대표적인 표정만을 보여준다. 연기력은 연기자의 능력도 있지만 연출자의 지도에 많이 좌우되는데 시나리오상의 캐릭터의 부실에 연출력의 부족에도 기인하는 바 크지 않을까 한다.

결혼 2개월만에 불의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남편 진우를 간호하는 연이의 앞에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진우의 동생 진호가 귀국한다. 진우와 같은 진호의 모습에 연이는 혼란스러운 가운데 미묘한 떨림을 느낀다.



▶ 복잡한 요소들과 부실한 짜임새

이 영화의 비극적 요소들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형이 의식불명 상태에서 동생이 형수를 돌보게 된 것, 둘째 두 형제가 쌍둥이였다는 것, 셋째 두 명이 쌍둥이임을 연이가 과거에 몰랐다는 것, 넷째 형제가 때때로 서로 역할을 바꾸어서 사람들을 속이는 놀이를 즐겼다는 것.

이 영화는 이런 요소들을 적절히 배합해서 멜로 영화이면서도 스릴러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있으며 이런 짜임새는 나름대로 독특하게 영화의 긴장을 끌고나가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보통의 영화에서 쌍둥이 형제는 외모는 비슷하더라도 일부러 머리모양이나 외모를 다르게 꾸미고, 더욱 중요한 것은 두 명의 개성을 확연하게 틀리게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쌍둥이 형제의 외모를 일부러 비슷하게 만들 뿐 아니라 두 명의 성격조차도 거의 구분이 되지 않게 설정했다. 이러한 점이 미스테리함을 극대화하는 면도 있지만, 결국 이 영화의 주인공 형제들의 몰개성을 부각시키고 동생과 연이의 사랑의 필연성과 애절함을 떨어뜨린다.

이외에도 디테일한 현실감이 떨어지는 장면들이 많다. 예를 들어 연이와 동생이 아파트에서 비밀스런 정사를 벌이다가 형이 문을 여는데도 서로 놀라지 않는다. 연이가 빗속에 사라진 형제들을 찾다가 계곡의 다리에서 문제의 '사진 목걸이'를 발견하고는 놀라서 바로 형제들을 찾지 않고 쓸데없이 한참을 들여다보는 장면도 어색하다.

나름 긴장을 이완시키기 위해 가미된 연이 어머니와 신부 간의 연애 이야기나 간호사들의 코믹한 장면들도 억지스럽거나 영화 전체 이야기와 잘 섞이지 않고 겉도는 어색함을 보여준다.

의식불명에 빠진 형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 쌍둥이 동생의 이야기를 그린 '비밀애'



▶ 결국 남는 것은 정사장면?

연이가 동생과 사랑에 빠지려면 단순히 남편이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힘든 세월을 보내야 하는 것 말고 뭔가 형과는 다른 동생만의 색다른 매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주인공의 몰개성이 특징인 이 영화는 이런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하고 결국 금기적이고 '비밀스러운' 정사장면에만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성인 멜로물에서의 정사장면은 어쨌든 필수적이고 중요한 부분. 여배우의 더 많은 노출을 기대한 관객은 실망하고 탄식하겠지만 이 영화에서 정사장면만큼은 적절한 수준과 리얼리티, 표현력 면에서 그나마 훌륭하지 않았나 한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영화는 비극적 결말을 향해 치닫고 계곡의 철제 다리에서 최후의 대결을 벌이는 두 형제.

"형 때문에 시들어가는 연이가 안타까워서 그랬어" 라고 변명하는 동생을 향해 "네가 내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연이가 좋아한 거야"라고 소리치는 형 모두 신파성을 넘어선 깊이 있는 결말을 끝내 보여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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