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의 호기심천국] 대형 홈런 가장 잘 나오는 구종은 뭘까?

입력 2010-04-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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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자로 비거리를 측정해 보고 싶은’ 홈런이 가장 많이 나오는 구종은 무엇일까. 야구인들은 “직구, 슬라이더”로 의견이 엇갈렸다. 물리학적으로는 커브다. 커브는 타자입장에서 공에 언더스핀을 걸기가 유리하다.

“초대형 홈런엔 슬라이더가 딱이야”

투수들 “시들한 변화구 걸리면 장타”
김태완 한대화 “반발력 큰 직구가 답”
학계 “구속 동일땐 커브가 확률 높다”
펜스를 살짝 넘기든 장외로 날리든, 똑같은 홈런이다. 하지만 맞는 순간 하늘너머로 사라지는 대형홈런이야 말로 팬들에게는 색다른 볼거리다. 미국에서는 이런 것을 ‘테이프-메저(tape-measure)’ 홈런이라고 한다. 줄자로 비거리를 측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 메이저리그에서는 미키 맨틀이 1953년 172m짜리 홈런을 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은 알렉스 카브레라 등이 세운 170m. 한국에서는 백인천, 양준혁, 김동주, 이대호 등이 기록한 150m가 최장거리다. 타구의 비거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배트의 속도, 공의 반발력, 공기밀도 등 다양하다. 하지만 동시대의 같은 리그라면 공의 반발은 같다. 쿠어스필드 같은 고지대구장이 없는 한국에서라면 공기의 밀도도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그리고 배트의 속도는 순전히 타자의 능력이다. 외부 조건 가운데는 투수가 던지는 구종 정도가 비거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여러 변인이 동일할 때 가장 멀리 나가는 구종은 무엇일까.


○반발력은 당연히 직구가 좋지!

야구인들의 답변은 크게 두 갈래로 갈렸다. 직구 또는 슬라이더. 22일까지 홈런부문 단독선두(6개)를 달리는 김태완과 ‘해결사’로 이름을 날린 한대화(이상 한화) 감독, LG 서용빈 타격코치 등은 “직구”라고 답했다. “빠르고 회전이 많은 공이 당연히 반발력이 크다”는 것이 이유. 한 감독은 “역으로 가장 무거운 구질은 회전이 없는 너클볼·포크볼”이라고 덧붙였다. 2000년 김동주(두산)의 잠실구장 첫 장외홈런(150m)도 기론(롯데)의 직구(141km)를 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론적인 뒷받침도 있다. 예일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인 로버트 어데어는 ‘야구의 물리학’에서 “콘크리트 벽에 공을 맞출 때 빠른 공이 느린공보다 더 많이 튀어 오르는 것처럼, 배트속도가 일정하다면 빠른 공을 때리는 것이 느린 커브를 때릴 때보다 더 멀리 날아간다”고 했다.

어데어는 배트속도(시속112km)가 일정할 때 96km의 공을 때리면 115m까지 보낼 수 있지만, 160km짜리 공이라면 125m도 가능하다는 그래프도 첨부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구속별로 공의 회전방향·회전수가 동일하다고 가정한 경우다.


○장거리 홈런 볼로는 슬라이더가 최고!

반면, 왕년의 홈런왕 장종훈(한화) 타격코치는 “슬라이더 등 변화구의 회전이 어설플 때 가장 멀리 나간다”고 했다. 1991년 한일슈퍼게임 5차전에서 나가라가와구장의 개장 첫 장외홈런을 터트릴 때도 “분명 직구는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취재기자에 따르면 외야관중석의 지붕 너머로까지 날아간 초대형 홈런이었다. 차세대 홈런타자 최진행(한화) 역시 “직구보다는 슬라이더”라고 답했다.

홈런을 맞는 당사자들이 “슬라이더”를 많이 꼽은 것도 이채롭다. 정민태(넥센), 정민철(한화) 코치, 송신영(넥센) 등은 “슬라이더로 홈런을 맞은 기억이 더 많다”고 했다. 흔히 ‘고퍼(gopher)’ 또는 ‘행잉(hanging) 슬라이더’로 불리는 실투성 공이다. 류현진(한화)은 “나의 경우는 체인지업”이라는 소수의견을 내놓았다.


○이론적으로는 커브가 장거리 홈런 확률 높다!

서울대 물리학과 유재준 교수는 구속보다 회전에 주목했다. “골프에서 보듯 드라이브 보다는 언더스핀이 걸린 공이 더 멀리 나간다”는 것이 대전제였다. 타자 역시 타구에 언더스핀을 걸어야 공을 멀리 보낼 수 있다. 언더스핀이란 공의 진행방향과 반대로 회전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 공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의 압력차에 의해 공이 떠오르는 힘(양력)이 커지고, 비거리가 늘어난다. 이를 마그누스 효과라고 한다.(그래픽 참조)

유 교수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가 가장 멀리 나갈 확률이 높다”고 했다. 커브는 투수입장에서 보면 공의 진행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스핀(드라이브)이 걸린다. 하지만 투수가 던지는 방향과 타자가 공을 치는 방향이 반대이기 때문에, 타자입장에서는 커브가 언더스핀을 걸기 더 편한 공이 된다. 커브볼의 정중앙에서 약간 아랫부분에 반발을 주면, 공은 언더스핀으로 날아간다. 역으로, 직구는 투수입장에서 언더스핀이 걸리기 때문에 타자는 언더스핀으로 치기가 어렵다. 이 경우는 로버트 어데어의 연구와는 반대로 구종별로 구속이 동일하다고 가정한 결과다. 하지만 유 교수는 “구속 보다는 공의 회전이 비거리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스윙궤적에 따라 맞춤형 홈런 구종 달라


현실에서 각자의 대형홈런구종이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론상으로는 구종별로 회전 또는 속도를 동일하다고 가정할 수 있지만 야구장에서는 다르다. 구종별 회전과 속도는 천차만별이다. 직구와 커브는 평균적으로 분당 약 1500회전, 슬라이더는 분당 1000회전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같은 구종이라도 투수마다 회전과 속도가 다르다. 선수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는 이유다. 타자들의 스윙궤적에 따라 자신이 멀리 치기에 적합한 구종이 다른 것도 한 이유다. 2009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에서 김인식 감독은 “추신수의 어퍼 스윙이 종으로 변하는 실바의 투구 궤적과 잘 맞아 떨어진다”며 선발 출장시켰다. 기대대로 추신수는 1회 3점포를 쳤다. “리오스의 공과 스윙궤적이 잘 맞는다”던 조동화(SK) 역시 2007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리오스를 상대로 홈런을 뽑아냈다. 리오스는 정규시즌 234.2이닝에서 단 8개의 홈런만을 허용한 ‘철벽’이었고, 조동화는 121경기에서 단 한 개의 홈런도 치지 못한 ‘똑딱이’였다. 이들에게는 홈런을 친 상대의 구종이 맞춤형이다. 유 교수 역시 “커브라는 답은 여러 스윙궤적들을 모두 고려할 때 ‘확률적으로’ 비거리가 더 많이 나온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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