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니 까짓게’ ‘집에 가지마’…가사 가위질 이게, 최선입니까?

입력 2011-02-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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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이라는 이유로 MBC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노래 ‘집에 가지마’는 KBS와 SBS에서는 문제없이 방송되고 있어 방송사 심의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집에 가지마’를 부른 지디앤탑. 스포츠동아DB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MBC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노래 ‘집에 가지마’는 KBS와 SBS에서는 문제없이 방송되고 있어 방송사 심의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집에 가지마’를 부른 지디앤탑. 스포츠동아DB

■ 방송사 가요 심의 속 숨겨진 1인치

성적 상상력 자극 선정적 표현 아웃
일본어 ‘우동’ 등도 노래 부적격 용어
개콘·웃찾사 타사 간접 광고도 안돼
유행어라도 비속어면 방송불가 판정

심의관 가치 따라 노래 평가도 달라져
최근 빅뱅의 두 멤버가 결성한 듀오, 지디앤탑의 노래 ‘집에 가지마’가 MBC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노래는 SBS와 KBS서는 아무 문제없이 방송되고 있다.

지난 해 12월 발표한 손동운(비스트)과 강민경(다비치)의 듀엣곡 ‘우동’은 아예 방송 심의를 신청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우동은 일상서 흔히 쓰이는 단어지만 일본어(う-どん)이기 때문에 부적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같은 노래를 두고 방송사마다 심의 결과가 다르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단어가 부적격 판정을 받는다. 알쏭달쏭한 방송사 노래 심의. 그래서 특정 노래가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을 때 종종 논란이 일기도 한다.

● 방송마다 다른 판정, 결국 가치관 차이

방송사가 ‘방송불가’ 판정을 내리는 이유의 대부분은 선정성이다. 하지만 같은 노래에 대해 방송사마다 선정성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지디앤탑의 ‘집에 가지마’의 경우 MBC만 선정적이라는 판단을 했다. 랩 가사 중 ‘난 그저 너와 아침을 맞고 싶어/오늘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둘만의 시크릿 파티’ 등의 표현이 성적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KBS와 SBS에서는 문제 삼지 않았다.

SBS 심의팀 관계자는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르지만 일반 상식 수준에서 크게 무리 없는 기준으로 심사하는 것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 ‘개콘’, 특정프로 간접홍보로 ‘방송불가’

래퍼 김진표가 작년 12월 발표한 ‘이별뒤에 해야 할 몇가지’란 노래는 MBC와 SBS로부터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가사 중 ‘개콘을 보며 뒤집어지게 웃기’라는 부분이 특정 프로그램의 간접 홍보라는 이유 때문이다. ‘개콘’은 KBS 2TV ‘개그 콘서트’의 줄임말이다.

통상 특정 상표를 언급한 가사는 간접홍보라는 이유로 ‘당연히’ 방송불가 대상이다. 하지만 김진표의 노래는 KBS서는 방송적합 판정을 받았다. 타사 프로그램을 언급하는 것에 대한 방송사의 배타성이 보이는 부분이다.

지난 해 카라가 부른 월드컵 테마송 ‘위 아 위드 유’는 MBC와 KBS에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당시 SBS가 월드컵을 독점중계하는 것을 두고 MBC와 KBS가 신경전을 벌이던 시기였다. MBC와 KBS는 “한 방송사가 자사 캠페인을 위해 쓰는 노래는 그 방송사의 간접광고 성격이 짙다고 볼 수 있다”고 불가 이유를 밝혔다.

1월 초 발표된 래퍼 김박사의 ‘댓츠 베리 핫’도 MBC서 불가 판정을 받았다. ‘댓츠 베리 핫’은 SBS ‘웃찾사’의 코너 이름이다.


● 일상용어 ‘우동’ 노래 가사로는 ‘방송 불가’

한 음반제작자는 지난해 말 손동운과 강민경의 듀엣곡 ‘우동’을 디지털 싱글로 제작했다가 낭패를 봤다. 그는 발표를 앞두고 우연히 방송관계자에게 ‘우동은 방송불가 판정이 자명하다’는 귀띔을 받았다. 황급히 권장 표준어인 ‘가락국수’로 가사를 바꾸었지만 멜로디를 맞추기도 힘들고 노래 원래의 느낌도 살지 않았다. 결국 방송을 포기하고 아예 심의를 신청하지 않았다.

노래 심의에서 ‘우동’, ‘오뎅’과 같은 일본어는 금지어다. 각각 ‘가락국수’, ‘어묵’ 등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제는 거의 일상화된 말이지만, 국민감정을 고려하고 일본어 범람을 막기 위해 방송사는 불가판정을 내린다.

2004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혼성 2인조 밴드 ‘미스터 펑키’가 ‘떡볶이와 오뎅’이란 노래를 발표했다가 KBS로부터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MBC 심의평가부 관계자는 “2004년 1월 일본대중문화 4차 개방 때 일본어 노래의 지상파 방송을 허용했지만 방송사는 국민 정서를 고려해 자제하고 있다. 일본어 가사도 같은 맥락에서 (방송노출을)자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 유독 노래에만 엄격한 잣대

2010년 8월18일 발표한 개그맨 허경환의 디지털 싱글 ‘자이자이’는 지상파3사 모두 방송불가 판정을 했다. 후렴구에 ‘자이자이 자식아’, ‘입주디(입) 지 터져봐야’, ‘쌩까는’ 등 비속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말들은 ‘개그콘서트’를 통해 유행어가 된 표현. 그러나 노래가 된 순간 방송불가 판정을 받은 것이다.

방송3사의 예능프로그램, 드라마, 토크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가능한 말들이 일단 노래 가사에 등장하면 유독 까다로운 평가를 받는다.

MBC 심의평가부는 이런 부분에 대해 “사실 이율배반적인 면이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가요 심의는 관대하지 않은 것 같다”며 “심의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다룰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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