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영]20세기 마돈나, 21세기엔 레이디 가가

입력 2011-05-24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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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문화부 차장 

스물다섯 레이디 가가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3년 전 미국 팝시장에 데뷔한 레이디 가가는 25년간 토크쇼의 여왕 자리를 지켜온 오프라 윈프리를 제치고 포브스가 선정한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유명인’ 1위에 올랐다. 그의 트위터 추종자는 1034만 명, 페이스북 친구는 3200만 명이며, 매시간 자신의 기록이자 세계 기록을 경신한다.

파격적인 패션으로 그보다 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금발의 레이디 가가는 선배 가수 마돈나를 계승한 것으로 평가된다. 1983년 25세의 마돈나가 데뷔했을 때는 MTV와 뮤직비디오의 시대였다. 가창력과 함께 볼거리가 중요하던 타이밍에 그녀는 관능적인 외모와 춤으로 ‘처녀처럼(like a virgin)’ 등장해 세계 대중음악계를 흔들어 놓았다. 학계는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떠오른 마돈나 현상을 연구하는 마돈나학(Madonnology)을 개설했다.

마돈나가 열어젖힌 여성 파워 시대 알파걸의 대표 주자가 레이디 가가다.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성폭력을 당한 상처를 이겨내며 팝의 여제가 된 마돈나와 달리 레이디 가가는 뉴욕 맨해튼 고급 주택가의 단란한 가정 출신으로 명문 사립 여학교를 나와 뉴욕대 예술학부에 조기 입학했다. 가가는 2008년 발표한 정규 앨범 ‘The Fame(더 페임)’ 한 장으로 그래미상 5개 부문을 수상했다. 최신 싱글 ‘본 디스 웨이’는 아이튠스에 공개한 지 5일 만에 유료 다운로드 100만 회를 돌파해 비틀스를 넘어선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마돈나가 그러했듯 레이디 가가가 주목받는 이유는 가수 이상의 의미를 지닌 문화 현상이기 때문이다. 남성이 가지고 논 메릴린 먼로가 모더니즘, 남성을 가지고 논 마돈나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아이콘이라면 성 구분 없이 외계에서 툭 떨어진 듯한 이 별종은 가상공간의 경험이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는 하이퍼모더니즘의 시대를 알리는 기수로 평가받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미디어는 비디오였다. 하이퍼모더니즘은 디지털 미디어의 시대다. 일상에서 벗어나 MTV와 뮤비를 즐기던 사람들은 이제 일하다, 길을 걷다, 잠자리에서 수시로 접속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블로깅하고 트윗하고 업로드한다. 더 새롭고 더 자극적인 것을 더 빨리 원하는 디지털 세대를 레이디 가가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자극한다.

‘하우스 오브 가가’라는 비주얼팀을 꾸려 살코기나 풍선으로 만든 옷을 입고, 앤디 워홀을 인용하며 데미언 허스트의 피아노를 친다. 브라톱 차림으로 일간지 편집회의에 참석하고 온라인 소셜 게임을 통해 새 앨범을 공개한다. 자칭 ‘몬스터’인 레이디 가가는 ‘리틀 몬스터’로 불리는 팬들을 종횡무진하는 자신의 예술 생활로 끌어들여 명성을 공유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지적했듯 마돈나는 유명해지기까지 5년이 걸렸지만 레이디 가가는 소셜 미디어 덕에 3개월 만에 명사가 됐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사회학을 강의하는 빅터 코로나 박사는 사람들이 일상의 무료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타들의 스펙터클을 열망하고, 종교가 쇠퇴한 자리에 명사(celebrity) 문화가 들어서서 사회 통합 역할을 하는 시대가 왔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명사 문화의 정점에 레이디 가가가 있다. 미국 학계는 ‘레이디 가가와 명성의 사회학’ ‘레이디 가가 연구’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레이디 가가가 디지털 시대를 이해하는 열쇠 하나를 쥐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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