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커버스토리]꺾기도 “개콘 PD까지 공황상태, 비법은 순수(純粹)?”

입력 2012-03-30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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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바라보는 김준호 “4~12세 공략, 우리가 대세”
●‘쌍두사’ 춤의 포인트는 혀가 1초에 10번 내밀기
●“싸구려처럼 왜 저러느냐?” 힐난 받기도 했지만…
●‘꺾기도’팀 최종 목표는 라면 CF!
“별 미친놈들 다 보겠다고요~플레? 감사합다~람쥐!”

무슨 말인지 몰라 공황상태에 빠졌다면 성공이다.

문맥과 상관없이 어미를 변형, 꺾어서 상대방을 공황상태로 만드는 ‘꺾기도’ 무술이 SNS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다’로 끝나는 말에는 ‘다람쥐’, ‘다래끼’를 붙이고 ‘까’로 끝나는 말에는 ‘까불이’, ‘마’로 끝나는 말에는 씨스타의 곡 ‘마보이’를 리듬 있게 덧붙이기만 하면 된다.

질박한 연기의 고수 김준호(37)를 중심으로 월미도 비보이 출신 홍인규(32), 클럽 춤의 달인 쌍둥이 형제 이상호와 이상민(31), 보컬그룹 '이야말로' 출신 조윤호(35), 커피 심부름하다 얻어걸린 장기영(30)이 뭉친 KBS 2TV ‘개그콘서트’의 코너 ‘꺾기도’팀에게 한 수 배우고자 서울 여의도 KBS연구동을 찾았다.

▶ ‘뽀통령’의 새 라이벌 ‘꺾기도’

서른 살 넘은 남자 6명이 모이면 이렇게 시끄러운지 몰랐다. 왁자지껄 수다 속에서 최고참 선배 김준호가 먼저 입을 열자 그제야 분위기가 정돈된다.

“최근 ‘애정남’ 등 풍자 개그로 ‘개그콘서트’가 많이 무거워졌잖아요. 덕분에 우리 개그맨들이 광고를 많이 찍고 있는 것도 맞고, 시청자 연령층도 넓어졌어요.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 아이도 좋아하는 ‘4인용 식탁 개그’가 필요했죠. 저희는 아예 4~12세 어린이들을 공략했죠.” (김준호)

이렇게 큰 반응이 올 줄은 예상 못했다고 한다. 쌍둥이 형 이상호는 “광주에서 열린 공연서 준호 형이 없는 바람에 ‘꺾기도’를 못했더니, 객석에 앉아있던 아이가 엉엉 울더라고요”라며 일화를 전했다.

“한 연예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 인기투표 결과 '꺾기도'가 '감사합니다'를 근소한 차이로 이겼어요. 어린이들 사이에서 '감사합니다'는 지는 해, '꺾기도'는 뜨는 해죠. 하하” (이상호, 이상민)

손뼉까지 치며 신이 난 쌍둥이 형제 이상호와 이상민. 형제는 ‘꺾기도’ 코너에서 수련생들을 놀리는 얄미운 악당 ‘쌍두사’로 등장한다. 코디네이터도 구별 못 하는 똑같은 외모에 현란한 춤은 브라운관 앞 어린이들을 홀렸다. 포털 사이트에는 ‘쌍두사’ 춤의 배경 음악을 묻는 글이 쇄도한다.

“코너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죠. ‘쌍두사’ 춤의 포인트는 혀가 1초에 10번 내밀어야 해요. 요즘 저희 춤의 배경 음악인 ‘아이 갓 마이 아이 온 유(I Got My Eye on You)’가 클럽에서 나오면 사람들이 저희 춤을 따라 춘다고 하더라고요.”(이상호)

설명과 함께 직접 ‘혀 내밀기’를 재현해보는 쌍둥이 형제. 기겁하는 기자 옆에서 김준호는 “모자란 아이들”이라며 놀려댔다.


▶ “PD는 아직도 공황상태, 못 헤어나”

만화 같은 전개에 ‘유치하고 억지스럽다’는 시청자들의 반응도 더러 있다. 포털 사이트 연관 검색어에는 ‘꺾기도 재미없다’라는 말이 올라와 있다.

아직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르는 시청자들을 위해 웃음 포인트 팁을 요청했다.

“예능국 16년 차인 서수민 PD는 지금도 리허설 때마다 공황상태에 빠지죠.”(김준호)

“혹시 영화 ‘타이타닉’ 보셨나요? 명작 ‘타이타닉’도 호불호가 갈리듯 개그에도 당연히 장르가 있어요. 마흔을 바라보는 준호 형이 무대 위서 정신 줄을 놓아버리듯 시청자분들도 생각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보시면 재미있을 거예요.”(이상호)

“개그 공식은 갑자기 화제 전환을 하거나 뜬금없는 이야기를 할 때 웃음이 터진다는 거죠. 사실 무대 위에서 나는 스스로 민망할 때 웃는 일도 있지만 내 웃음이 자체 바람이 돼서 사람들이 웃더라고요. 일종의 전략. 에이~ 이건 기사에 쓰지 마세요. 사람들이 알면 안 돼!” (김준호)

1996년 SBS 5기 공채개그맨으로 데뷔한 김준호는 1998년부터 ‘개그콘서트’를 지켜왔다. 친근한 연기와 단순한 화법으로 구성된 그의 코너들은 “싸구려처럼 왜 저러느냐?”라는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가 개그를 강요하는 순간 그것은 개그가 아닌 강요가 돼요. 그런 면에서 풍자개그는 조심스럽죠. 하지만 제 개그는 단순하게 하는 만큼 단순하게 받아주면 돼요. 마음을 놓고 웃기만 하면 좋은데.”(김준호)

▶ “2012 세종대왕은 ‘꺾기도’ 일세~”

일단 ‘꺾기도’ 1차 권법은 성공했다. 홍인규의 5살 아들 홍태경 군은 장소를 불문하고 문장 끝마다 ‘다~람쥐’를 붙인다고 한다. 귀여운 효자다.

“아빠가 TV에 나오기만을 기다려요. 이번에 어린이집에 입학했는데, 아빠 유행어를 열심히 홍보하고 다녀요. 조금 아쉬운 점은 ‘홍태경다~람쥐’, ‘밥 먹자다~람쥐’처럼 막 갖다 붙이죠. 무조건 아빠를 위해서.” (홍인규)

그뿐만 아니라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어학사전(오픈사전)에도 ‘꺾기도’의 정의가 풀이되어 있다. 미처 몰랐던 ‘꺾기도’팀은 깜짝 놀라더니 곧 흥분 섞인 웃음을 터뜨린다.

날로 높아지는 인기에 김준호는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코너인데, 갈수록 생각을 하게 만드는 코너”라고 말했다. 그래서 ‘꺾기도’팀 은 요즘 조선 세종시대 집현전의 학자들처럼 언어 연구에 한창이다.

“사실 ‘다람쥐’, ‘까불이’같이 이미지와 동작이 귀여운 단어를 찾기가 생각보다 어려워요. 그래서 업그레이드를 고민 중입니다. ‘화난 다람쥐’, ‘슬픈 다람쥐’, ‘기쁜 다람쥐’ 등 여러 상황에 맞는 표현이 나올 거예요. 또 어미만 꺾는 것이 아니라 문장 중간에서 빨리 말 꺾기를 할 겁니다. 더 공황상태에 빠지겠죠? 감사~마귀합니다.”(김준호, 이상민)


▶ ‘꺾기도’ 멤버들이 보내는 귀여운 경고장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부탁했더니 멤버들이 하나같이 CF 이야기를 토해낸다.

“‘꺾기도’가 아직 CF를 못 찍었습니다. 어린이 과자 등 뒷말 이을 상품들 많거든요? 최선을 다해서 2박 3일 동안 찍겠습니다. 아참! 요즘 대세인 ‘제일 잘나가사끼짬뽕’은 저희가 저작권 침해 신고하기 전에 빨리 오세요. 같이 잘 나갈 때 CF 찍어요. 아님, 신라면으로 갈 거예요~!” (일동)

한민경 동아닷컴 기자 mkh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국경원 동아닷컴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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