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Let's Go Baseball] “장하다 지완아”…이종범 눈물에 잠실벌 축축해졌다

입력 2012-08-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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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우승 직후 흘린 이종범의 눈물은 두고두고 회자될 장면이다. 9회말 나지완의 끝내기홈런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이종범은 이용규를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스포츠동아 DB

그라운드에서 흘리는 남자의 눈물

2009년 KS 결승홈런 친 나지완 껴안고 펑펑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기억될 ‘명장면 1순위’
박철순, 은퇴경기서 마운드와 작별키스 감동
역경 딛고 흘린 ‘사나이 눈물’은 별보다 빛나


남자는 좀처럼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우는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남자의 눈물은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 프로야구에서 가장 유명한 눈물은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나왔다. SK 채병용과 KIA 이종범이 주인공이다.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맞고 서럽게 울었던 ‘비운의 투수’ 채병용과, 10번째 우승을 달성한 뒤 결승홈런을 때린 후배 나지완을 비롯해 이용규 등 후배들을 껴안고 울었던 ‘베테랑’ 이종범의 눈물은 한국 프로야구사의 명장면으로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했던 두산 김현수의 눈물, 2002년 비원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삼성의 양준혁이 흘린 눈물도 역사의 저편에 있다.

원년의 스타 박철순의 눈물 시리즈도 있다.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 때 후배를 붙잡고 펑펑 흘린 눈물은 기쁨이었다. 1997년 4월 은퇴경기 때 윤동균 전 감독과 포옹하며 흘린 눈물은 용서였다. 1994년 집단 항명사건으로 각자의 갈 길은 달랐지만 뒤늦게 서로를 이해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그날 관중의 눈물도 기억에 남는다. 최고의 스타였지만 이후 수많은 부상과 재기로 힘들게 살아왔던 박철순이 영혼을 바친 마운드에게 작별의 키스를 할 때 기립박수를 보내던 수많은 관중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My Way)’가 흐르는 가운데 박철순이 마운드에 무릎을 꿇자 OB는 물론 서울 라이벌 LG 팬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수많은 좌절을 이겨낸 ‘전설’의 투혼을 기억하는 감동의 눈물이었다.


○눈물 스토리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요즘 스토리 마케팅이 대세다. 프로야구가 대중에 가까운 이유는 아기자기한 스토리가 많아서다. 남자의 눈물 스토리는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일본 프로야구는 그런 스토리가 많다.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이야기는 일본 프로야구의 큰 자산이다. “하느님 부처님 이나오님”은 포스트시즌의 전설 고(故) 이나오 가즈히사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나오는 1958년 니시데쓰 라이온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저팬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두고 결승 홈런도 때렸다. 1·3차전에 등판해 2패를 기록했던 이나오는 4차전부터 7차전까지 연달아 등판해 기적의 역전승을 따냈다. 5차전 연장 10회에 끝내기 홈런을 때리며 완투를 하자 어느 팬이 경기장 앞에서 큰 절을 하며 “하느님 부처님 이나오님”을 울며 외쳤단다.

“그라운드의 선수들도 울고 마운드의 스기우라도 울고 관중도 울었다.”

1959년 저팬시리즈에서 홀로 4승을 거둔 고(故) 스기우라 다다시에 따라 붙는 스토리다. 그해 4승 무패로 시리즈를 이긴 난카이 호크스의 쓰루오카 가즈도 감독은 에이스인 잠수함투수에게 1∼4차전을 연달아 던지게 했다. 1·2차전 승리투수 스기우라는 3차전 8회 손가락의 물집이 터져 피가 번져 나왔다. 공을 던질 때마다 아팠지만 이를 악물고 연장 10회까지 완투했다. 팀은 3-2로 승리했다. 이때 그 유명한 눈물 이야기가 탄생했다. 스기우라가 공 하나하나를 던질 때마다 아픈 손의 통증을 참느라 울었고 동료들은 득점지원을 하지 못해 미안해서 울었다고 했다. 관중들은 스기우라의 투혼에 감동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고교 스타의 눈물을 프로야구로 연결하는 일본

최근 일본인들의 감성을 끌었던 이벤트는 고시엔대회다. 94회째를 맞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화제를 모았던 선수는 도코학원의 2년생 왼손투수 마쓰이 유키. 8월 10일 1차전에서 22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9이닝 탈삼진 신기록을 세운데 이어 16일 2차전에서도 9이닝 동안 19개의 탈삼진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74cm, 74kg의 평범한 체격이다. 마쓰이는 19일 3차전에서 12탈삼진으로 4-1 승리를 따냈지만 다음날 고세이 학원과의 준준결승에서 15개의 탈삼진을 기록하고도 0-3 완투패하며 울고 말았다. 2경기 연속해서 18연속이닝 탈삼진, 10연속타자 탈삼진 등의 신기록을 세우고 19∼20일 이틀간에는 무려 296개의 공을 던졌다. 고비를 넘기지 못한 마쓰이는 마운드에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그의 역투를 도와주지 못한 3학년 선배들은 그것이 미안해서 또 눈물을 흘렸다. 이번 대회의 가장 인상적인 패전 장면이다. 일본 프로야구는 이처럼 어린 선수들이 흘린 눈물로 감동 스토리를 만들며 팬들의 기대를 모은 뒤 프로야구로 그 인기를 유도하는 선순환 구조다. 반면 우리는 고교·대학야구의 기대주들에 대한 스토리가 거의 없다.

제10구단 창단과 관련한 찬반양론 때 반대파들은 우리 고교야구 팀이 일본에 비해 엄청 적은 현실을 얘기하며 시기상조라고 했다. 새로운 야구팀을 많이 만들어내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 더욱 시급한 일은 지금의 선수들이라도 잘 보살피는 것이다. 팬과 매스컴의 관심이 없는 휑한 스탠드에서 학부모들의 안타까운 응원만 메아리치는 아마추어 야구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 어린 선수들도 분명 감동 스토리가 있다. 단지 그것을 많은 이들이 몰라줄 뿐이다. 지금 우리 프로야구가 할 일은 꿈나무들의 스토리를 발굴하고 프로에 입단하기 전에 팬들에게 널리 알리는 시스템의 도입이다.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발굴이 제10구단 탄생의 전제조건이다.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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