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Let’s Go Baseball] 은퇴 시기? 나이 보다 몸이 먼저 알더라

입력 2012-09-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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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시즌 LG에선 42세 선수가 둘이나 뛰게 된다. 프로 20년차가 되는 투수 류택현(왼쪽)과 타자 최동수다. 두 선수는 강렬함보다는 꾸준함으로 프로야구에 족적을 남기고 있다. 스포츠동아DB

OB들이 말하는 ‘은퇴 적령기’

나이 들수록 순발력·파워에 시력도 뚝
투수들은 한계투구수 줄면 은퇴 고민
종아리 등 잦은 부상 야구인생 적신호

71년생 쌍둥이 베테랑 류택현-최동수
꾸준한 자기관리 내년까지 현역 연장


LG가 내년에도 베테랑 최동수와 류택현을 안고 가기로 했다. 나란히 1971년생으로 1994년 프로에 데뷔한 만큼 내년이면 20년째가 된다. 42세에 선수로 뛴다는 것은 축복이다. 두 선수는 MVP급 시즌을 보냈거나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지만, 누구나 보고 배울 만한 자기관리로 선수생명을 연장해가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조기퇴직과 정년으로 현업에서 물러난 전문가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평균수명은 늘어나는데 일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야구선수에게 늙는다는 것은?

야구선수는 어떻게 자신이 나이를 먹었는지 알 수 있을까. 개인별로 편차는 있지만 은퇴한 선수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윤곽은 나온다. 상당수가 나이를 먹으면 ‘발’이 예전 같지 않다고 얘기한다. 김영덕 김응룡 김성근 등 베테랑 감독들은 “선수가 달리기를 싫어하면 끝”이라고 했다. 1992년을 끝으로 삼성에서 은퇴한 김용철의 말. “발목 부상으로 관뒀다. 뛰지 못하니까 순발력이 떨어졌다. 공이 빤히 보이는데도 배트가 따라가지 못해 유니폼을 벗었다.” 1991년 빙그레에서 은퇴한 유승안도 비슷했다. 왼 발목 수술 후 거의 2년간 달리기를 못했다.

1988년 OB에서 은퇴한 유지훤은 다른 이유를 들었다. ‘눈’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구를 더 잘 쳤는데, 어느 날부터 변화구의 각도를 눈이 따라가지 못했다. 여름에 가까워질수록 그늘만 찾았다”고 밝혔다. 야구선수들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스포츠비전’이다. 움직이는 물체를 식별하는 능력이다. 나이를 먹으면 시력과 함께 스포츠비전도 떨어진다. 원년 스타 김우열도 결국 중심성 망막염이라는 눈 이상으로 야구와 이별했다.

전성기가 지나면 순발력과 지구력, 파워도 저하된다. 흔히 홈런타자는 배트 중심에 맞았는데도 평소 외야 펜스를 넘어가던 타구가 그 앞에서 잡히면 은퇴를 고민할 시점이라고 한다. 발 빠른 타자는 도루를 꺼릴 때가 그 시점이다. 투수는 한계투구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한창 때 120개를 던져도 줄지 않던 스피드가 70∼80개 부근에서 확 떨어지면 은퇴가 가까워진 것이다. 컨트롤도 무뎌진다.

부상이 잦아져도 신호가 온 것이다. 특히 종아리 부상이 많은 선수들은 자신의 야구인생을 돌아봐야 한다. 메이저리그에 이런 격언이 있다. ‘선수가 나이를 먹으면 먼저 파워가 사라지고, 그 다음에는 발이 사라지고, 마지막에는 친구가 사라진다.’ 스타 선수는 미디어와 팬을 많이 몰고 다니지만 은퇴 무렵이면 외톨이가 된다.


○베테랑 선수 보호하기 어려운 야구만의 특성

선수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을 젊게 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팀 내 위치가 올라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한 것만 찾는다. 대신 후배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커진다. 구단도, 감독도 선참 선수들을 경계하는 이유다. “베테랑 3∼4명이 마음먹으면 팀 분위기가 망가진다. 선수들이 함께 뛸 때 뒤에서 고참이 ‘야, 천천히 뛰어’라고 하면 그 운동은 하나마나다”고 이상국 전 해태 단장은 말했다. 우리 구단과 감독들은 베테랑 선수의 이런 영향력을 무서워했다.

한정된 포지션을 놓고 새로운 선수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생긴다. 베테랑에 밀려 유망주가 기를 펴지 못하면 구단으로서나 감독으로서나 큰 손실이다. 이 경우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그래서 투수보다는 야수가 장수하기 더 어렵다. 투수는 선발, 중간, 마무리 등 보직이 다양화돼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자신이 맡은 부분만 확실히 책임지면 나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야수는 다르다. 8개 포지션에는 반드시 주인이 있어야 한다. 나머지는 보조 역할이다. 뛰지 못하는 베테랑은 불만이 많아진다. 연봉도 걸림돌이다. 구단은 과거보단 미래를 중시한다. 그래서 고액연봉자는 장수하기 어렵다. 구단이 못 견디고, 선수도 자존심 때문에 포기한다.


○늙은 노새가 힘은 없어도 가는 길은 잘 안다?

최근 야구계의 가장 흥미로운 소문 하나는 김응룡 전 감독의 현장 복귀 결심이다. 본인의 의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주위’라는 소문의 주체들은 그렇게 말한다. 요즘 프로야구 현장의 대세인 젊은 감독들을 두고 야구계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나도는 상황이라 그 소문의 배경이 더욱 흥미롭다.

일본에선 70대 감독과 투수코치가 버티는 주니치가 올 시즌 화제다. 다카키 모리미치 감독은 1941년생, 곤도 히로시 투수코치는 1938년생이다. 주니치는 센트럴리그 2위를 달리고 있다. 야구 지도자에게는 빼어난 체력이 필요하진 않다. 선수들과 함께 다닐 수 있는 힘만 있다면 문제가 없다. 현장에서 수많은 경기를 치르면서 판단하고 실행해왔던 베테랑 감독의 노하우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다. 인간 관리자인 감독에게 세월이 주는 지혜와 부드러워진 귀는 커다란 자산이다. “늙은 노새가 힘은 없어도 가는 길은 잘 안다.” ‘아직도 한창’이라고 말하는 50대 후반 어느 야구인의 말이다.

전문기자 marco@dobga.com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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