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배구대표팀 박기원 감독(위). 스포츠동아DB
승점 7점으로 C조 최하위(6위)로 처져 월드리그 예선 강등이 유력했던 한국이었다.
C조 6개 팀 가운데 하위 6위 일본(3승7패 승점 9점)과 5위 포르투갈(4승6패 승점 11점)이 강등의 희생양이 됐다. 포르투갈은 최종 홈 2연전에서 한국에 완패하며 승점 1점도 따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C조에 단 한 장 주어진 6강 결선리그 진출 티켓은 일본을 3-2로 꺾은 캐나다(8승2패 승점 23점)에 돌아갔다. 캐나다는 2위 네덜란드(7승3패 승점 22점)를 승점 1점 차로 따돌리는 뒤집기로 기쁨이 두 배였다.
한국의 기적을 만든 주인공은 땜질용 선수 서재덕이었다.
당초 22명 대표팀 1차 엔트리에서는 들어 있었지만 최종 엔트리에 뽑힐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본인도 그랬다. 6월1일 월드리그 첫판 일본전에서 문성민이 부상을 당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센터 박상하도 군에 입대, 논산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받는 바람에 선수가 모자랐다. 박기원 감독은 급히 후보를 물색했다.
서재덕과 류윤식(대한항공)이 후보였다. 핀란드와의 홈 2연전을 앞두고 발탁하려 했으나 소속팀 KEPCO의 신영철 감독이 “서재덕은 아직 몸 상태가 아니다”고 알렸다. 시즌이 끝난 뒤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지 않아 몸무게가 100kg을 넘는다고 했다.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부랴부랴 여권을 준비해 캐나다원정부터 합류시켰다.
6월15일 캐나다와의 원정 1차전에서 경기 막판 등장했다. 무릎에 물이 고이는 증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닌 박철우를 대신했다. 2득점했다. 실수도 많았다. 경기 감각이 떨어진 탓이었다. 그날 밤 코칭스태프는 새벽까지 회의를 했다. 당시 대표팀은 3연패 중이었다.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다. 슬럼프인 박철우를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다.
노진수 코치와 김경훈 트레이너가 서재덕을 적극 추천했다.
그때부터 출전시간이 많아졌다. 차츰 국제대회에 대한 감각을 찾았다. 6월29,30일 네덜란드와의 홈 2연전에서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가능성을 보여주더니 마침내 포르투갈과의 원정에서 잠재력이 폭발했다. 1차전에서 전광인과 함께 운명의 4세트에 20점 이후 합작으로 5점을 뽑아내더니 2차전에서는 양 팀 합쳐 최다득점을 했다. 알토란같은 점수였다. 공격성공률이 무려 63%였다. 4세트 22-24로 뒤져 월드리그 잔류의 불씨가 사그라지려던 순간 서재덕이 기적을 만들었다. 직선강타와 상대의 범실로 듀스를 만들었다.
26-26에서 서브 에이스로 승리의 디딤돌을 놓았다. 매치 포인트는 센터 박상하의 전광석화 속공이었지만 서재덕이 4세트에 뽑은 12점이 없었다면 승리도 없었다.
레프트 전광인(20점)과 주장인 센터 이선규(10점)도 힘을 보탰다.
한국은 1세트를 듀스 끝에 34-32로 따내며 기선을 제압했고 2세트도 25-23으로 낚았다. 3세트를 내주면서 잠시 흔들렸던 한국은 4세트 극적인 승리로 월드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박기원 감독은 "힘든 상황에서 사명감을 갖고 투혼을 발휘한 선수들이 너무 고맙다. 오늘 승리의 수훈갑은 단연 서재덕"이라고 했다. 2013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KEPCO의 지명을 받을 것이 확실한 전광인과 서재덕 덕분에 한국은 2014년 월드리그에서 또 다시 본선진출을 노린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