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체험 Whatever] 40분에 13개 클럽 뚝딱…4억짜리 ‘트랜스포머’ 허걱!

입력 2014-04-15 06:4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총중량 20톤, 차량 한 대 가격이 4억 원에 이르는 투어밴은 골프대회의 응급실 같은 존재다. 골프채를 만들고 수리하는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10분 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서귀포|주영로 기자

■ 골프대회의 응급실 ‘투어밴’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들로 가득한 세상이다. 스마트 폰은 구입한지 6개월만 지나도 구형 취급을 받고, SNS에는 하루에도 수천 개의 정보가 쏟아진다. 더 이상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 궁금한 건 못 참는다. 영역과 분야에 상관없이 모든 체험을 위해 기자들이 발 벗고 나섰다.


무게 20톤의 대형 트럭…연 운영비만 1억원
실내는 장비 상담실 갖춘 ‘작은 공업사’ 연상
수백개 샤프트·헤드 등 골프의 모든 것 완비

4인1조 투어팀…무결점 클럽 제작 ‘신의 손’
40분이면 아이언·우드까지 13개 클럽 완성
본지기자, 30분간 낑낑대다 겨우 1개 만들어

“365일 중 200일 이상 필드위 생활하지만
좋은 장비 받은 선수들 성적 내줄 때 뿌듯”


“헤드가 깨졌어요. 어떡하죠?”

10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개막한 KLPGA투어 롯데마트 여자오픈 1라운드 티오프(경기 출발시간)를 30여 분 남기고 강민주(24)가 헐레벌떡 투어밴으로 뛰어 들어왔다. 급한 상황이다. 드라이버의 헤드가 깨졌으니 그대로 경기에 들고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캘러웨이골프 투어밴의 클럽피터 강태호 대리가 해결사로 나섰다. ‘뚝딱 뚝딱’, ‘윙∼’. 기계음이 울린 지 20여 분 만에 새 드라이버가 완성됐다. 자칫 드라이버 없이 경기에 나서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앞두고 있던 강민주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티박스로 향했다.

흔한 광경은 아니지만 투어밴에서는 이런 장면이 심심찮게 펼쳐진다. 특히 대회를 앞두고 이 같은 응급 상황은 종종 볼 수 있다. 투어밴은 응급실인 동시에 만물상자다. 선수들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다. 투어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지 직접 체험해 봤다.


● 투어밴 한 대 가격은 4억원

겉에서 본 투어밴은 웅장했다. 9.5톤 초장축 트럭을 개조해 만든 차량은 마치 ‘트랜스포머’와 같다. 캘러웨이골프 투어밴의 책임자인 이태희 팀장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어봤다.

투어밴의 무게는 약 20톤에 이른다. 차량의 공간 확보를 위해 개조를 하면서 무게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차량의 기본 가격은 약 6000만원 정도. 그러나 캘러웨이골프 투어밴은 개조에 약 3억5000만원 정도가 더 들어갔다. 투어밴 한대를 만드는 데 4억원이 넘는다.

큰 몸집만큼이나 운영비 또한 만만치 않다. 제주도의 경우 선적비와 보험, 유류비 등에만 500여만 원 이상 경비가 든다. 1년 간 약 30여 개 대회를 커버할 경우 운영비로만 1억 원 이상을 쓰게 된다.

내부로 들어서면 마치 작은 공업사를 연상시킨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 상담실과 왼쪽 작업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오른쪽 상담실에는 테이블 2개와 몇 개의 의자가 놓여져 있다. 선수들이 장비에 대한 상담을 받기도 하고 가끔은 휴식공간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왼쪽의 작업 공간에서 골프채가 만들어진다. 이곳에는 없는 게 없다. 선수에게 필요한 모든 게 숨어 있다.

각종 기계가 설치 된 선반의 아랫부분을 열면 각종 용품으로 가득하다. 샤프트는 종류별로 약 200여 자루, 드라이버와 아이언은 헤드 별로 약 300개, 웨지 100개, 골프공 200더즌(12개들이 박스), 모자와 장갑, 우산, 레인커버, 스파이크는 물론 음료수와 물, 컵라면 등의 비상식량까지 보관돼 있다.

투어밴의 운영은 보통 4인1조로 움직인다. 주로 선수들과 상담을 진행하는 팀장과 클럽을 만드는 피터 2명, 그리고 골프공, 장갑 등을 지원하는 액세서리 담당자가 한 팀이다. 규모가 큰 대회의 경우엔 최대 6명이 움직일 때도 있다.

이 팀장의 설명 도중 투어 프로 박현진(25)이 급하게 투어밴으로 들어왔다. 퍼터의 라이각을 1도 정도 세워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클럽 피터가 퍼터를 받아 라이각을 체크한 뒤 곧바로 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2∼3분 만에 선수가 원하는 장비로 새로 태어났다.

이 팀장은 “이런 순간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다”면서 “투어밴에서는 선수들에게 꼭 필요한 장비를 제때 공급하는 것은 물론 수리와 조정까지 진행하고 있다. 우리의 도움으로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 더 큰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남모를 고충은 있다. 1년에 30개 이상의 대회를 따라 다녀야 하는 만큼 200일 이상을 집 밖에서 생활해야 한다.

1. 퍼터의 라이각을 조정하기 위해 캘러웨이 투어밴의 이태희 팀장(오른쪽)과 의견을 나누고 있는 박현진 프로. 2. 투어밴 안에 구비된 비상용 골프용품. 3. 주문받은 클럽을 만드는 투어밴의 클럽피터들. 4. 클럽피터(왼쪽)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언의 라이각 조정 실습을 받고 있는 주영로 기자. 서귀포|주영로 기자



● 드라이버 한 자루 만드는 데 30분

투어밴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선수에게 클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기자는 드라이버 만들기에 도전하기 전 가장 기초적인 그립 교환부터 체험을 시작했다.

그립은 골프채를 잡는 손잡이 부분으로 고무재질로 되어 있다. 선수들은 약 3∼6개월에 한번 꼴로 교체한다. 투어밴에서 이뤄지는 작업 중 가장 간단하다.

그립 교환의 첫 번째 순서는 수명이 다한 그립을 칼을 이용해 벗겨내는 작업이다. 이때 주의할 점은 칼날이 깊숙하게 들어가 샤프트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작업임에도 섬세한 손놀림을 필요로 한다.

헌 그립을 벗겨낸 다음엔 샤프트를 감싸고 있는 테이프를 제거하고 그 위에 새 테이프를 붙인다. 그 다음부터는 조금 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접착제와 윤활유 역할을 하는 솔벤트를 그립 안쪽에 부은 다음 솔벤트를 테이프 위에 뿌려 골고루 적셔준다. 마지막으로 그립을 빠른 속도로 헤드 방향으로 밀어 장착하면 된다.

어설펐지만 그립 교환을 지켜본 클럽피터는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솜씨다”며 합격점을 줬다.

이제 본격적인 드라이버 만들기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첫 도전인 만큼 강태호 대리가 자세한 설명과 함께 시범을 보여주었고, 옆에서 그대로 따라 했다.

첫 순서는 샤프트의 길이를 측정하고 자르는 커팅 작업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45인치로 잘랐다. 커팅 기계의 ‘윙’하는 굉음은 생각보다 커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이뤄지는 만큼 정교함을 요구한다.

자른 샤프트에 헤드를 끼운 뒤 밸런스를 측정한다. 측정기에 올려놓고 무게 추를 움직이면서 정확한 밸런스를 찾는 작업이다. 스윙 웨이트로 불리는 밸런스는 스윙 시 느껴지는 무게감을 일컫는다. 드라이버 만들기의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클럽 전체 길이로 헤드 쪽이 무거울수록 스윙 웨이트가 커지게 되는데, 최근의 추세는 스윙 웨이트를 가볍게 유지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 가벼운 클럽은 스윙 때 헤드의 감각을 느낄 수 없게 되고, 반대로 너무 무겁게 느껴지면 다운스윙 시 클럽 헤드가 늦게 떨어져 슬라이스와 같은 미스샷이 자주 발생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선수 또는 아마추어 골퍼의 스윙을 측정한 후 그 스피드에 맞는 정확한 스윙 웨이트를 찾아주는 게 중요하다. 테스트에서는 스윙웨이트를 ‘D0’에 맞췄다.

밸런스 측정이 끝나면 헤드를 완전하게 샤프트에 장착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에폭시(접착제)를 잘 섞어 헤드와 샤프트의 연결 부위에 골고루 바르고, 접착제가 굳기 전에 샤프트를 헤드 안쪽으로 끼우면 된다.

이 단계까지 진행이 완료되면 접착제가 굳을 때까지 약 5분간 기다린다. 일반적인 피팅의 경우 접착제를 바른 후 약 30분 정도 기다리는 반면 시간과 싸워야 하는 투어밴에서는 초강력 접착제를 사용해 5분이면 완성된다.

헤드와 샤프트의 결합이 끝나면 마무리 작업이 진행된다. 헤드에 무게 추를 끼우고, 마지막으로 그립을 끼워 작업을 마치게 된다.

숙련된 클럽피터(5년 이상 경험자)가 드라이버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분 내외. 아이언과 우드까지 13개의 클럽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40분∼1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기자가 드라이버를 만드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아쉽게도 제품의 완성도가 떨어져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서귀포|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na1872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