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시대… 감독 권위가 사라졌다

입력 2014-07-17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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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루크의 ‘항명‘으로 속내가 편치 않을 SK 이만수 감독. 프로야구 초기 수많은 전설을 만들었고 대한민국에 10개자리 밖에 없는 프로야구 팀의 감독이 됐지만 달라진 시대환경과 선수들의 의식구조가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을 안기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SK 용병 스캇 항명 파동… 우리야구의 슬픈 자화상

프로 초창기 해태 V9 신화 바탕은 감독 카리스마
98년 용병제·99년 FA 도입 후 제왕적 권위 위기
용병·FA 선수 컨트롤 할 새 리더십 필요성 대두
감독들 선수와 소통 못하자 프로야구 질적 하락
스캇의 항명…감독을 대하는 SK 팀문화의 단면

프로야구 감독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다.

엄격한 규율과 지도자가 명령하면 선수가 무조건 복종하는 것만 알아온 우리 프로야구계에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SK의 외국인선수 루크 스캇과 이만수 감독의 ‘7·15 항명사건’이 그것이다. 선수가 감독에게 “거짓말쟁이(Liar)” “겁쟁이(Coward)” 라는 거친 말까지 내뱉었다. 상황엔 좀 차이가 있지만 지난 5월에는 롯데 선수들이 구단주 대행을 몰래 만나 권두조 수석코치를 보이콧 하겠다며 실력행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자에 대한 ‘쿠데타’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추상같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 초창기 해태 V9 우승신화 뒤엔 ‘제왕적 리더십’

프로야구 초창기만 해도 감독이나 지도자의 권위는 무소불위 그 자체였다. 아마추어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사회전반을 지배하는 상명하복의 문화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운동선수들은 이런 면에서 확실했다. 선배를 잘 모시고 지도자를 선생님 혹은 아버지로 여겼다. 감독은 팀에서 제왕이나 다름없었다. 감독 명령을 따르지 않는 선수는 도태되거나 2군으로 쫓겨나 은퇴해야만 했다. 문제점도 많았지만 승리와 팀을 위한 희생을 중요하게 여겼던 시대의 흐름이었다. 1994년 OB 선수들의 집단이탈 사건과 1982년 해태 코치의 심야 집단탈출 사건은 제왕적 감독의 명령과 복종 사이에서 발생했던 파열음이었다.

해태는 20세기 시대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팀이었다. 선후배의 엄격한 규율과 감독의 카리스마로 해태는 9번 우승이라는 신화를 쌓았다. 다른 팀들도 그런 해태의 야구를 벤치마킹 하려고 노력했다.


● 외국인선수제-FA제도로 변화…선수들 쌍방 소통을 원하다

1998년 외국인선수 제도, 1999년 FA제도가 도입되면서 프로야구를 지배하던 시대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국적 정서를 모르는 외국인선수들의 등장과 행동은 많은 해프닝을 낳았다. 이들에게 ‘제왕적 감독’은 먹히지 않았다.

해태시절 한국시리즈 무패를 자랑했던 김응룡 감독이 삼성으로 와서 2001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처음 실패한 것은 발비노 갈베스라는 외국인투수를 손에 넣지 못해서였다. 그해 두산 김인식 감독은 타이론 우즈를 달래고 얼러가면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 정상에 섰다. 이를 지켜본 우리 선수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감독의 카리스마에 휘둘리던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리더십을 내심 요구했다.

FA제도는 이 같은 흐름에 큰 영향을 줬다. 선수들이 어느 정도 기량과 연차를 가지면 원하는 팀과 감독을 고를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야구를 해야 할 만큼 경제적으로 절박하지도 않았다. 풍요의 시대에 선수들은 개성과 나를 강조했다. 스포츠의 특성상 복종은 필요하지만 왜 그런지 지도자들에게 설득을 요구하며 자신이 선택을 했다.


● 카리스마와 소통 사이의 간극…추락하는 감독의 권위

예전 야구에 익숙한 많은 지도자들은 요즘 선수들의 태도에 불만이 많다. 한 코치는 “코치가 단점을 고쳐주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그냥 내버려 둔다”고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프로야구 수준이 떨어진 것은 이 같은 일이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코치는 야구단의 가장 전문적인 기술자다. 이들의 조언은 선수에게 해가 되지 않지만 선수들은 쉽게 자기가 해오던 것을 버리지 못한다. 설득과 이해라는 부분에서 예전의 지도자들은 젊은 선수들과 대화의 방법을 찾지 못했다. 선수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않으면 귀를 닫아버렸다.

감독과 선수의 사이도 달라졌다. 서로가 공감하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팀과 억지로 끌려가는 팀의 차이가 커져버렸다. 요즘 선수들은 부상이나 다른 이유를 핑계로 쉽게 경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눈앞의 성적에 목을 걸어야 하는 감독의 입장에서 보자면 애가 탈 노릇이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다보면 갈등은 더욱 나쁜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다.

SK 루크 스캇의 행동은 단순히 외국인선수와 한국인 감독 사이에서 벌어진 해프닝이 아니다. 그동안 SK의 우리 선수들이 어떻게 감독을 대해왔는지 그 팀의 문화, 현재 우리 프로야구의 맨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추락하는 감독의 권위에도 날개가 있을까.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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