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인터뷰] 정준하 “‘무한도전’ ‘뮤지컬’ ‘가장’… 다 야무지게 해야지!”

입력 2015-09-26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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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이자 뮤지컬배우 정준하가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더니 최민수의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에게’를 틀었다.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다”라며 1절을 들려준 뒤 “어렸을 적 들국화, 유재하, 김현식은 내 꿈이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시절 밴드 ‘가로수’ 활동을 하기 위해 친구들과 돈을 모아 목동 YMCA를 빌려 공연을 하기도 했고 매니저 시절에는 김원준, 변진섭, 신승훈, 김건모 등 가수들을 만났다. 음악을 향한 꿈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 현재 방송활동으로도 벅찬 스케줄을 해내고 있음에도 그가 뮤지컬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에서 ‘썩을 놈’ 석봉이 역을 맡은 정준하는 정신 없는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까지 MBC ‘무한도전’ 가요제 연습과 뮤지컬 연습이 겹쳤다. 또 촬영 차 아프리카 가봉에 음식 배달을 했고, 나이로비에 가서 아들(?) 코끼리 도토를 만나 시청자들에게 훈훈한 정을 전했다. 밤을 새는 것을 밥 먹는 듯 한 탓에 피곤해 보였지만 개의치않았다.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겐 위안과 희망이었다.

“나이를 먹다 보면 ‘내가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란 걱정을 가장 많이 하게 돼요. ‘무한도전’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무대는 언제까지 설 수 있을지 걱정이죠. 그래서 지금 하는 것 자체가 제겐 큰 행복이에요.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젊었을 때 ‘마흔이 되면 젊음이 사라지겠지. 지금 받고 있는 사랑도 없어지겠지. 진짜 다 끝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도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고 관심을 주신다는 게 감사해요. 무대 위에 있으면 제가 살아 숨쉬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말로 못할 위안과 희망을 얻어요. 참 감사한 시간입니다.”

그가 연기하는 석봉은 안동 이씨 종손 집안의 장남으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3년 만에 내려와 동생 주봉이와 유산 쟁탈전을 벌인다. ‘석봉’은 무능력한 장남이다. 가방 끈은 짧고 사업은 하는 족족 실패한다. 그 동안 ‘무한도전’에서도 ‘눈치 없는 형’, ‘정 과장’ 등 다소 바보스러운 역할을 맡았던 그는 “내가 잘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라 좋았다”라고 말했다.


“’무한상사’에서는 회사에서 짤리는 ‘정 과장’이고 ‘하이킥’에서는 백수 ‘이준하’였고 여기서는 ‘석봉’이잖아요. 세 사람이 환경은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이에요. 그런데 저는 착하고 순한 이 인물들이 좋더라고요. 정 과장은 아내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었고 이준하도 무능력하지만 효심 있는 아들이었고요. 석봉이도 되바라진 사람은 아니잖아요. 이 캐릭터들을 잘 표현하려고 하니 그런 감성들이 절로 생겨요. 그 사람들을 연기할수록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석봉 캐릭터를 보면 요즘 ‘N포세대’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뭔가를 하려고 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아 절망하는 인물이다. 취업부터 시작해 꿈조차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바라보며 정준하는 “막연하게 꿈을 쫓으라는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가끔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것이 ‘스펙’도 없는 제가 ‘꿈’에 대해 강의를 하고 다닐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하자’는 거예요. 자존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거죠. 저도 실패 엄청 많이 했어요. 뜻대로 다 되고 성공하는 사람이 세상 어디 있겠어요. 매일 ‘내 인생은 여기가 끝인가 보다’라고 산 적도 있고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있을 때도 많았어요. 방송이 잘 안 풀릴 때도 좌절한 적도 많았는데 어느 날 ‘나를 위해 세상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져요. 막연한 이야기지만 물질이 없고 상황이 힘들다고 하더라도 극복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했으면 다들 하실 수 있어요. (웃음)”

추석을 맞아 명절에 관한 질문도 했다. 정준하도 추석만큼은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그는 “추석용 방송은 미리 다 찍어두기 때문에 다행히 명절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 때라도 부모님과 아내를 잘 도울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명절에는 그 역시 손을 걷어붙이고 전과 부침개를 ‘야무지게’ 부친다. 특히 그는 “아버지가 황해도 분이라 이북 음식을 만든다”며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아버지 고향이 황해도 신천이에요. 한국 전쟁 때 할머니 손에 이끌려 내려오셨대요. 안타깝게도 형제 중 아버지만 내려오셨어요. 누나가 여섯인데 그때 못 내려오는 바람에 가족이 헤어진 거죠. 그래서 명절 때 아버지를 보면 마음이 짠해요. ‘더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우연찮게도 ‘배달의 무도’ 찍을 때 이북에 사시던 사연의 주인공을 만난 거예요. 그래서 가봉 대통령 경호실장이신 박상철 씨를 만났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눈물을 참고 참아도 눈물범벅이 되더라고요.”


정준하가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끔찍이 생각하는 이유는 어렸을 적 맞벌이를 한 부모님 때문에 할머니 손에 애지중지 자라 ‘가족’이라는 따뜻한 울타리의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이라는 글자만 봐도 뭉클해진다. 이들 자체는 내겐 큰 에너지가 된다”라고 말했다.

“부모님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돼요. 칠순이 넘었는데도 적적하다며 택시를 몰고 다니는 아버지와 여행을 다녀도 불편한 곳 없는 어머니를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래도록 건강해서 제가 계속 효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합니다.(웃음)”

이제는 한 집안의 가장이기도 한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고 있다. 2012년 승무원이었던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아들 ‘로하’ 군을 둔 그는 “아직도 ‘니모’(아내의 애칭)과 로하가 내 곁에 있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꿈을 꾸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내는 승무원을 할 때부터 친절했어요. 천사예요, 천사. 항공사에서 가장 친절한 승무원 1위로 뽑히기도 했으니까요. 저한텐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 같기도 해요. 일본사람이라 한국의 명절문화가 익숙하지 않을 텐데 힘든 내색 한 번 없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고맙고, 한편으로는 너무 미안해요. 제가 ‘방배동 사랑꾼’ 역할을 톡톡히 해야 하는 까닭이죠.”

정준하에게는 또 다른 가족이 있다. 명절에도 빠지지 않고 만나는 ‘무한도전’ 멤버들이다. ‘무한도전’ 녹화일이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갖는다.

“10년을 함께 보낸 동료들이라 이젠 내 식구나 다름없어요. 방송에 나오는 ‘무한뉴스’의 내용도 대부분 사석에서 만나 나눴던 이야기예요. 자주 만나니까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유)재석이는 깜짝 놀랄 정도로 우리의 모든 것을 간파하고 있어요. 우리끼리 ‘유스패치’라 부를 정도예요. (웃음) 그만큼 멤버들이 ‘무한도전’에 큰 애착을 갖고 있어요.”

민족 대명절 ‘추석’을 맞으며 정준하는 “핵가족 시대이긴 하지만 그래도 명절을 오면 왠지 모르게 가족이 생각나지 않나. 이제 쌀쌀한 가을로 넘어가는데 곁에서 힘이 돼 주는 사람은 가족인 것 같다. 이날만큼은 다른 걱정, 근심은 생각하지 말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다. 또 이번 추석을 통해 ‘가족’을 되새겨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더불어 가족들과 함께 ‘형제는 용감했다’도 꼭 보시길 바라며!(웃음)” 라고 추석 인사를 전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야무진,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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