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박은석 “ ‘마을’ 장희진 죽인 범인 누구냐고요?”

입력 2015-10-28 0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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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은석은 “무대에서 연기하다 앵글 안에서 연기하는 건 또 다른 숙제였다”라며 “‘연기’라는 것을 하는데 또 다른 기분이었다”라고 말했다.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저도 몰라요, 감독님이 끝까지 안 알려주신대요.(웃음)”

SBS 수목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에서 미스터리한 미술선생 ‘건우’ 역으로 열연 중인 박은석에게 던진 첫 질문이었다. 도대체 김혜진(장희진 분)을 죽인 사람이 누구냐고.

연기하는 배우도 궁금해 죽겠다. 박은석은 “우리 배우들도 궁금해 죽겠다. 작가님과 감독님만 알고 있다”라며 “나도 모든 캐릭터들을 의심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저도 제 캐릭터를 보면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웃음) 학교에서는 굉장히 반듯한 선생님인데 밖에서는 ‘주희’(장소연 분)랑 갑자기 키스를 하다가 지갑을 꺼내서 돈도 훔치잖아요. 게다가 가영(이열음 분)이랑 뭐가 있는 것 같고 김혜진이랑도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고요. 주변에서 ‘도대체 너 뭐야’라고 묻는데 뭐라고 답할 수가 없더라고요. 단지 뭔가 의심스러운 녀석이라고 답할 뿐이죠.”

질문을 하면서도 조심스러웠다. 현재 방영 중인 이 드라마는 ‘아치아라’라는 마을에 여자 시체가 발견되면서 의심스러운 주변인들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어지고 있기 때문. 박은석 역시 “아, 어떻게 답하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요”라며 조심스레 답을 이어나갔다.

박은석은 우연찮게 ‘마을’의 오디션을 보게 됐고 캐스팅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을 때 합격 소식을 들었다. 당시 대본을 재미있게 봤다는 그는 “이 연기가 영상으로 들어가면 어떨지 궁금했다. 요즘 틈틈이 방송을 챙겨보는데 사운드나 영상이 대단하더라. 처음엔 내 연기 모니터를 하려고 봤는데 다른 장면들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본을 보면서 ‘왜?’라는 질문이 많이 나왔어요. 장면마다 건우의 모습이 너무 다르잖아요. 학교 학생인 유나(안서현 분)에게는 한없이 너그럽다가 가영이에게는 유독 세게 나가고요. 10년 연상인 주희랑 사귀는데 그 뒤에는 비밀이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사랑인지, 계략인지 뭔지 모를 관계도 의심스러워요. 게다가 사라진 김혜진이랑 뭔가 있었던 것 같고요. 학교 안에 있을 땐 약자를 위한 강자가 되다가 밖에서는 한 탕 해보려는 사람 같고. (웃음)”

대본을 보면서 박은석은 “건우는 결핍이 있는 사람”이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아직 드라마에서 드러나지 않은 건우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밝혀지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 말하면서.

배우 박은석.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제겐 이번 드라마가 새로운 도전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동안 섰던 연극 무대는 시작과 끝, 감정 노선, 극적 변화를 다 알고 연기를 하니까 캐릭터의 행동이나 대사가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캐릭터가 주요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목표도 뚜렷하고요. 그런데 여기(드라마)에서는 제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몰라요. 감독님께서 ‘범인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익숙하지 않은 연기로 한치 앞을 모르는 이야기를 향해 달려가니 신선해요. 하하. 그래서 제 캐릭터를 모르겠다고 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예요. 이 인물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요. 제가 설마 범인은 아니겠죠? (웃음)”

박은석은 대중들은 아직 잘 모르는 배우일지 모르지만 대학로에서 꽤나 유명한 배우다. 본인은 부끄러워하며 사양했지만 ‘대학로 아이돌’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는 2013년을 시작으로 무대에 오르며 배우의 길에 발을 디뎠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참 뚜렷하고 개성 강한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다. ‘프라이드’에서는 자유분방한 성소수자인 ‘올리버’나 ‘레드’에서 로스코의 조수인 ‘켄’, 현재 ‘엘리펀트 송’에서는 정신과 환자 ‘마이클’ 등 명확한 캐릭터이지만 호기심이 생기는 역할을 많이 맡아왔다. 이에 그는 “나의 일상생활과는 다른 인물들을 연기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어떻게 보면 저 역시 작품 속에서 얻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것 같아요. ‘프라이드’도 단순히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게 아니라 그들의 억압된 감정과 권리를 위한 싸움 등을 그린 거잖아요. 아마 제가 이 역할을 안 했다면 전 모르고 살아왔겠죠. ‘프라이드’는 제 삶에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대본이나 다른 문학 작품을 보고 그 캐릭터를 연기하면 학습의 밀도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게다가 저는 몇 달 동안 그 캐릭터와 같은 삶을 사니까 그 인물의 삶, 상처, 사연 등 깊숙한 곳을 살펴보게 되죠. 그러면서 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 같아요. 제가 받았던 상처나 사연 등을 생각해보게 돼요.”

슬며시 그의 사연을 들려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어린 시절 미국에서 살았던 그는 “내가 살던 세상은 포장된 삶이었다”라고 입을 떼었다.

배우 박은석.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제 삶이 와장창 무너진 적이 있었어요. 사람들의 양면성에 실망했다고 해야 할까요. 21살에 인간 관계가 완전히 비틀어져버렸어요. 친했던 친구들과 사이가 틀어졌고 동시에 첫사랑과도 결별을 하는 시기였어요. 그렇게 ‘관계’라는 것이 무너지다 보니 피부에 느껴지는 것들이 불완전한 감정뿐이었어요. ‘인종차별’까지는 아니어도 괜히 그렇게 느껴지는? 그 만큼 제 삶의 엄청난 타격을 입었죠. 그래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3~4개월 정도? 그래서 어머니께서 치료의 개념으로 연기 학원을 등록해주셨어요. 3개월을 다녔는데 사람 앞에 서는 게 긴장되고 하지만 안에 살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연기를 하면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냥 한국에 왔어요. 벌써 10년이 다 됐네요.”

한국에 오자마자 그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살아왔다.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틈틈이 연기를 해왔다. 드라마 촬영장에서 수 시간을 대기하며 보조출연도 했고 오디션을 보며 연기자의 꿈을 키워갔다. 박은석은 “앞은 안 보여도 열정은 있었으니까”라며 웃었다.

“너무 진부한 말인데 의지가 있으면 길이 있다고, 저는 진짜 연기에 인생을 걸었어요. 이거 조금 하다가 다른 거 하지 할 거면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지만요. 올해 32살이에요. 이제는! 더 열심히 연기해야죠. 부모님도 제 이런 모습에 뿌듯해 하세요. 특히 요즘은 드라마를 인터넷으로 바로 보실 수 있으니까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자만하는 건 아니지만 10년 동안 그 확신과 믿음을 갖고 온 제 모습을 보면 자부심이 조금 생겨요. 아주 조~금요.”

현재 박은석은 드라마와 함께 연극 ‘엘리펀트 송’을 연습 중이다. 연극 ‘엘리펀트 송’은 정신과 의사 로렌스의 실종 사건을 둘러싸고 병원장 그린 버그 박사와 마지막 목격자 마이클 간의 숨막히는 두뇌게임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섬세한 감정과 카리스마를 표현해야 하는 ‘마이클’ 역에 도전한다.

“’마이클’은 엄마의 사랑을 못 받은 아이예요. 가장 기본적인, 원초적인 사랑을 못 받은 아이죠. 상대적으로 저는 엄마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라 ‘마이클’이란 캐릭터가 궁금해졌어요. ‘저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대본도 좋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좋았어요. 제가 작품을 선택할 때는 그림이나 색(色)이 보이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그랬나봐요. 어렸을 때 꿈이 픽사(Pixar)에서 애니메이터가 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하하. 아무튼, 제가 했던 공연 중에 ‘레드’는 완전 새빨갛고 ‘엘리펀트 송’은 약간 차가운 하얀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마을’도 대본을 보면서 미쟝센이 돋보일 극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런 작품이 저는 좋더라고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니 “사기 치지 않은 배우”라는 재미있는 답변을 내놨다. 박은석은 “깜냥이 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게 관객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무대에 올라가는 것은 배우가 관객들에게 사기를 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늘 준비된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가고 싶은 곳은 할리우드”라는 큰 꿈을 말하기도 했다.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배우가 되면 지금 할리우드에서 활동하시는 선배님들처럼 연결 다리가 되고 싶어요. 한국 배우들의 해외 진출을 더 넓히는데 기여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브로드웨이는 가고 싶지 않냐고요? 당연히 가고 싶죠. 한국 배우들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 싶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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