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토픽] ‘여우’ 신태용이 숨겼던 칼…‘스리백’ 절묘했다

입력 2016-01-2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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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축구대표팀.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8강전까지 한번도 쓰지 않은 스리백 카드
예상 못한 전술 변화에 카타르 속수무책
수비형 MF 2명 ‘더블 볼란치’ 첫 시도도

올림픽대표팀 신태용(46) 감독은 선수시절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렸다. 얄미울 정도로 영리하게 플레이해서 생긴 별명이다. K리그 통산 최초로 60골-60도움을 달성하는 등 공격형 미드필더로 각광을 받았다. 그의 본능은 지도자가 돼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순간 감춰두었던 칼을 꺼내들었다. 그의 필승카드가 적중했고, 한국은 개최국 카타르를 제물삼아 세계 최초로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 모두를 놀라게 한 스리백


카타르 도하에서 펼쳐지고 있는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은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을 겸한다. 이 대회 3위까지만 리우올림픽 본선 출전권이 주어진다. 신 감독은 목표 달성을 위해 1승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27일(한국시간) 도하 자심 빈 하마드 경기장에서 열린 카타르와의 대회 4강전에서 스리백을 기본으로 한 3-4-3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지난해 12월 제주도 전지훈련에서부터 이번 대회 요르단과의 8강전까지 단 한 차례도 선보이지 않은 포메이션이었다. 그러나 신 감독은 조별리그에서부터 카타르의 경기력을 지켜보면서 8강 토너먼트 이후 맞대결하게 된다면 한 번쯤 가동해도 좋겠다고 미리 구상해놓고 있었다.

이 전술의 기본은 2015남미선수권대회(코파아메리카) 결승에서 칠레가 잘 보여줬다. 신 감독은 칠레의 경기 영상을 미리 준비해 8강전을 마친 뒤 선수들에게 나눠줬다. 특히 수비수들이 집중적으로 이 영상을 보면서 카타르에 대비했다. 신 감독은 “사실 스리백보다 포어 리베로(포백을 기반으로 하지만 수비 시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이 중앙수비로 가담하는 전술)를 생각했다. 그런데 스리백이 생각보다 더 잘 됐다. 그래서 전반은 아예 스리백으로 운영했고, 후반에는 포어 리베로를 적절히 섞었다”고 설명했다. 공격력이 뛰어난 카타르였지만, 예상치 못한 한국의 전술에 대응력이 떨어졌다. 한국은 수비 숫자를 늘린 덕분에 개인기가 좋은 카타르 공격수들을 협력수비로 봉쇄할 수 있었다.


올림픽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끝까지 숨긴 필승전략


신 감독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2승1무·C조 1위)를 마친 직후 “우리는 아직 보여줄 게 남았다”는 말로 8강 토너먼트부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임을 암시했다. 그러나 요르단과의 8강전에선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이 없었다. 조별리그에서 구사한 다이아몬드 형태의 4-4-2 포메이션 그대로였다. 선수기용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게다가 전반을 1-0으로 앞서고도 후반 상대의 압박에 고전했다. 후반에 급격히 경기력이 떨어지던 조별리그에서의 약점도 되풀이했다. 이 때문에 지켜보는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4강전은 확연히 달랐다. 스리백뿐 아니라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을 쓰는 더블 볼란치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경험이 없는 황기욱(20·연세대)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기용한 것도 눈에 띄었다. 황기욱은 1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수비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크게 기여했다. 스피드와 개인기가 발군인 황희찬(20·잘츠부르크)과 문창진(23·포항)은 일찌감치 교체멤버로 준비시켰다. 신 감독은 준결승 전날 둘을 따로 불러 “너희가 후반에 사고를 쳤으면 좋겠다”며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결국 황희찬과 문창진은 후반 막판 연속골로 신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도하(카타르) |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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