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남길. 사진제공|NEW
걱정 없이 영화 출연 승낙했는데
살얼음 같은 긴장감·체력적 부담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울컥 울컥
“배우들이 영화 찍으면서 ‘행복하다’고 하지 않나. 정말 거짓말이다. 꼭 행복하지만은 않다.”
배우 김남길(36)의 말 속도가 빨랐다.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제작 CAC엔터테인먼트)를 촬영하며 여러 경험을 했고, 그만큼 많은 생각을 품게 된 듯 보였다.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말도 많은 모양이다. 질문 하나 던졌을 뿐인데 답변이 길게 이어졌다.
“촬영장은 그 자체로 실제 재난현장 같았다. 늘 부상 위험에 노출됐고, 살얼음 같은 긴장 속에 고성까지 오갔다. 극도로 긴장된 현장이었다. 정말 힘들었다.”
김남길은 ‘몸 쓰는 연기’에는 일가견이 있다. 2년 전 주연한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으로 해상 격투 장면을 거뜬히 해냈던 그다. 원전 폭파 참사를 다룬 재난영화 ‘판도라’의 출연을 제안 받았을 때 그는 “액션을 좋아하고, 운동 신경도 좋으니 큰 걱정 없다”고 여겼다. 돌아보면 너무 쉽게 생각했다.
“‘해적’과 비교하면 1000배는 더 힘들었다. 하하! 체력적인 부담도 크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울컥울컥했다.”
김남길은 영화에서 희망을 상징한다. 아버지와 형에 이어 대물림처럼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을 하지만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을 친다. 가족, 연인, 친구로부터도 “철없는 남자”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정작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이 닥치자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다.
“영웅도 아니고, 영웅이 되고자 하는 남자도 아니다. 공권력이나 제도적으로 나라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질문은 우리 모두의 고민일 것이다. 내 힘으로 나와 내 가족을 지키려는 이야기다.”
‘판도라’는 재난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지만 신파의 감성을 지나치게 주입한 탓에 완성도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래도 여전히 화제의 영화로 꼽힌다. 그 제작 규모와 소재가 만들어내는 화제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특히 현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는 압권이다.
이런 반응에 김남길은 “컨트롤타워의 부재는 꼭 우리만 겪는 상황도 아니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제작비 150억원 규모의 대작을 내놓는 입장인데도 덤덤했다. 의연한 듯도 보였다. “조바심이 크고 야망도 있던 시기”를 지나면서 얻은 감정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할 땐 중국에서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덕분에 일본에서도 한류 인기를 좀 얻었다. 그런데 군대에 다녀오니까 전부 사라졌다. 하하! 자연스러운 일이다. 젊은 스타도 많잖아.”
인기에 크게 휘둘리지 않으려다보니 자연히 그의 시선은 영화로 향했다. 지난해 전도연과 ‘무뢰한’을 함께 했다. 이번 ‘판도라’에 이어 천우희와 출연한 ‘어느 날’, 스릴러 ‘살인자의 기억법’ 등 두 편의 영화를 연이어 내놓는다. 단편영화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도 구상하고 있다. “문화예술이 가난을 구제하지 못해도 가난을 위로할 수 있다는 글을 보고 용기를 냈다”는 그는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관객에 소개하는 기회를 내년부터 시작한다”고 알렸다.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은 김남길은 대중의 눈에 띄지 않는 순간에도 이처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30대 중반을 넘기지만 결혼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유도 워낙 다양한 쪽으로 관심사가 뻗어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은 일이 더 중요하다. 결혼?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아직 내 마음은 소년이가보다.”
● 김남길
▲1981년 3월13일생 ▲사이버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2003년 MBC 31기 공채 탤런트 데뷔 ▲2005년 MBC ‘굳세어라 금순아’로 주목 ▲2008년 영화 ‘미인도’ 주연 ▲2009년 MBC ‘선덕여왕’으로 스타덤 ▲2013년 손예진과 KBS 2TV ‘상어’ 출연, 2014 년 손예진과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 주연, 866만 관객 동원 ▲2014년 음악영화 ‘앙상블’ 제작 ▲2015년 영화 ‘무뢰한’으로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