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LG-삼성…상생, 라이벌, 그리고 전쟁의 역사

입력 2016-12-16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016년 스토브리그는 FA 시장의 흥미진진한 전쟁터로 기록될 듯하다. 삼성이 먼저 LG의 선발 한 축인 사이드암 우규민(31)을 4년 65억원에 영입하며 선제 펀치를 날리자, LG가 삼성 마운드의 축인 좌완 차우찬(29)과 4년 95억원에 계약하며 카운트 펀치를 되받아쳤다. 같은 해 FA 시장에서 상대 팀 주력 선수를 ‘핑퐁게임’처럼 주고받은 것은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일이다. 말이 ‘주거니 받거니’이지, 구단 입장에서 보면 ‘소리 없는 전쟁’이요, ‘자존심 싸움’이었다. 여기에 LG는 우규민의 보상선수로 이미 내야수와 외야수를 볼 수 있는 최재원(26)을 지명해 야구계를 술렁이게 했다. 삼성은 조만간 차우찬의 보상선수를 LG에서 지명하게 된다. 그래서 호사가들은 LG와 삼성의 이번 FA 영입전쟁을 두고 “사실상 2대2 트레이드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MBC와의 원년 개막전 당시 프로야구 사상 첫 홈런을 기록했던 삼성 이만수.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1980년대-원년 개막전 충돌한 유구한 라이벌

따지고 보면, 양 팀은 싸움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팀들이다.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상대로 맞붙었으니 말이다. 1982년 3월 27일 서울운동장(동대문구장). 당시 팀명은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였지만, 훗날 LG가 MBC를 인수했으니 삼성과 LG는 KBO리그 최초의 경기에서 맞대결한 주인공인 셈이다.

물론 MBC 청룡의 이름으로 살아간 1980년대까지만 해도, 양 팀이 특별한 라이벌 의식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릴 일은 그다지 없었다. 승리라는 목표 아래 매 경기 지지고 볶는 사이이긴 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적도 없었고, 재계 라이벌도 아니어서, 두 구단끼리 감정이 상할 일은 크게 없었다.

그 시절 양 구단은 트레이드도 종종 성사시키는 상생의 관계였다고 보는 편이 맞다. 1985년 1월 31일 ‘원조 일본킬러’ 이선희(삼성)와 ‘쌕쌕이’ 이해창(MBC)을 트레이드하며 처음으로 거래의 물꼬를 텄고, 1988년 12월 20일엔 2루수 김동재가 삼성에서 MBC로 현금 2000만원에 트레이드되기도 했다.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LG. 사진제공|LG 트윈스



● 1990년대-앙숙의 시작

그러나 1990년 럭키금성(LG)이 MBC를 인수한 뒤 양 팀은 앙숙관계로 발전했다. 묘하게도, LG가 프로야구판에 뛰어들자마자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했다. 그런데 시리즈 전적 4승무패로 LG가 우승을 차지했다. ‘일등주의’ 삼성으로선 좀처럼 잡히지 않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후발주자 LG가 첫 해부터 가볍게 낚아채자 배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삼성은 준우승을 이끈 정동진 감독을 가차 없이 해고했다.

1990년대는 LG의 시대였다. 1994년에도 우승을 거두는 등 ‘신바람 야구’로 인기를 끌었고, 프로야구를 선도했다. 삼성이 1993년 플레이오프에서 LG를 누른 것이 역습의 추억이지만, 1997년 플레이오프에선 다시 LG가 삼성을 꺾었다는 점에서 LG가 승자의 자존심을 지킨 시대였다.

그 사이 크고 작은 트러블과 감정싸움이 이어졌다. 특히 1997년 어린이날을 전후해 대구에서 벌어진 3연전에서 ‘부정 방망이’ 시비로 양 팀의 감정싸움은 극에 달했다. 5월 3일 삼성이 9-3으로 승리하고, 5월 4일엔 삼성이 정경배의 만루홈런 2방 등으로 27-5 대승을 거뒀다. 5월 5일에도 삼성의 13-1 대승. 3연전에서 LG 마운드가 홈런 17방을 얻어맞고 49점을 내주며 초토화되자 당시 LG 천보성 감독은 삼성이 사용한 미국산 미즈노 배트에 대해 “부정 방망이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고, 삼성 백인천 감독은 이에 발끈하며 욕설로 맞받았다. 결국 KBO가 미국과 일본까지 방망이를 보내 조사를 한 뒤 “적합 판정”을 내리자 LG는 물론 다른 구단들도 이 배트를 구입해 쓰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약 한 달 뒤인 6월 22일 대구에서 LG가 9점차로 앞선 9회초에 2루 도루를 하자 삼성 벤치에서 비아냥댔고, LG 3루코치인 조 알바레즈가 삼성 벤치를 향해 욕설을 하자 백 감독이 덕아웃을 박차고 나와 둘이 그라운드에서 멱살잡이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백 감독은 1990년 양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을 때 LG 사령탑이었다는 점에서 세간에서는 이들의 싸움을 더욱 흥미롭게 지켜봤다.

이런 앙금은 1999년 말 다시 폭발했다. 사상 최초 FA(프리에이전트) 제도가 시행된 그해 말 삼성이 LG 간판포수인 김동수를 영입하면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김동수가 FA 우선협상기간에 여행을 떠나 LG가 협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타구단 협상이 시작되는 시점에 삼성과 3년 8억원에 사인했다. 당시만 해도 8억원은 상상도 못한 파격적인 금액으로 “이러다 프로야구 망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지금까지 FA 계약 최고액 기록을 경신할 때마다 ‘이러다 프로야구 망한다’고 하지만 세상에 가장 쓸 데 없는 걱정은 재벌 걱정이라는 말처럼 프로야구는 망하지 않고 있다).

그러자 협상 테이블조차 제대로 차리지 못한 LG는 “삼성이 김동수를 빼돌렸다”며 “삼성에서 받은 보상금을 2000시즌 삼성전 때 모두 메리트로 걸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실행에는 옮기지 않았고, 홧김에 내뱉은 말이긴 했지만, 그 만큼 당시 LG는 노골적으로 삼성에 적개심을 드러냈다.

2002년 한국시리즈 당시 삼성 김응룡 감독-LG 김성근 감독(오른쪽).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2000년대-해빙 무드에서 다시 점화된 감정싸움

2002년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양 팀은 다시 격돌했다. 이 한국시리즈는 양 팀의 희비쌍곡선을 가르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당시 삼성이 4승2패로 LG를 꺾고 창단 후 22시즌 만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지만, 1990년과는 정반대로 이번엔 LG가 준우승의 돌풍을 일으킨 김성근 감독을 가차 없이 해고했다.

막혔던 우승의 혈을 뚫은 삼성은 승승장구했다. 2005~2006년 2년 연속 우승 고지를 밟았고, 2009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가을잔치 무대에 나서는 전성시대를 열었다. 반면 1990년대에 잘 나가던 LG는 그 패배 이후 10년간 가을잔치에 나가지 못하는 지독한 암흑기를 겪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양 팀의 라이벌 의식 또한 희미해져갔다. 더 이상 삼성의 상대는 LG가 아니었고, LG 역시 기나긴 암흑기 탈출이 당면과제였다.

그 사이, LG가 2012년 말 정현욱을 4년간 28억6000만원에 영입하면서 삼성 FA 선수를 처음으로 획득했다. 1999년 말 삼성이 김동수를 잡았던 것을 생각한다면, FA 시장에서 13년 만의 반격쯤으로 평가할 수도 있지만 이미 극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삼성이기에 충격파는 크지 않았다.

2012년 말에는 깜짝 소식도 들려왔다. 12월 17일 삼성이 현재윤 손주인 김효남을 건네고, LG가 김태완 정병곤 노진용을 내주는 3대3 트레이드를 성사시킨 것이었다. MBC에서 LG로 팀 간판이 바뀐 뒤 양 팀끼리 사상 최초로 단행한 트레이드였다. 거꾸로, 그 전까지 양 팀은 트레이드 한 번 하지 않았던 앙숙관계였다면, 이때부터 해빙의 무드가 형성됐다. 당시 삼성 송삼봉 단장과 LG 백순길 단장은 고향(대구)을 매개체로 죽이 맞는 밀월관계를 구축했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만들어갔다. 삼성은 2011~2014년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에 성공했고, LG는 이 트레이드 직후 2013년 가을잔치에 나서며 참혹한 암흑기를 청산했다.

그러나 양 팀의 해빙기는 그 트레이드 이후 4년 만에 다시 끝난 듯하다. 지난 시즌 후 양 구단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운영주체가 제일기획으로 넘어간 삼성은 예전처럼 자금이 썩 풍족하지 못한 상태다. 천하를 호령하던 삼성은 선수들이 줄줄이 이탈하면서 올 시즌 가을잔치에 탈락했고, 9위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LG는 하위권 전력이라는 평가를 뒤집고 4위에 오른 뒤 플레이오프까지 치고 올라가는 반란을 만들었다. 삼성이 LG보다 순위가 아래로 내려간 것도 2000년대 들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즌 후 삼성은 홍준학 단장을, LG는 송구홍 단장을 임명하면서 새 출발을 다짐했다. 그리고 FA 시장에서 초보 단장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쩐의 전쟁’을 시작했다.

소문부터 심상치 않더니, 삼성이 먼저 FA 우규민을 4년 총액 65억원에 영입하면서 “삼성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LG가 30억원을 더 얹어 차우찬을 획득하는 역공을 펼치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식 보복으로 맞불을 놓았다. 양 팀은 이에 대해 “비즈니스일 뿐이다. 감정싸움할 일은 아니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지켜보는 세상 호사가들에겐 흥미롭기 그지 없는 자존심 싸움이다.

LG와 삼성, 삼성과 LG. 모처럼 불이 붙었다. 벌써부터 야구계와 팬들은 “내년 시즌 잠실과 대구에서 양 팀이 만날 때 차우찬과 우규민이 선발 맞대결을 펼친다면 흥행 만점 아니겠느냐”며 2017년의 봄을 기다리고 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