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수다①] ‘프리랜서’ 조우종 “간 콩알만 했는데 지금은 편해”

입력 2016-12-23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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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종이 프리랜서로 나선 데에는 “KBS에서 필요한 인재인가”라는 고민이 컸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정글”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뭐든 시켜만 달라”고도 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방송사 월급통장 버리고 정글로 뛰어든 ‘조 우 종’

전현무, 오정연 등 KBS 간판 아나운서들이 줄줄이 퇴사할 때도 “끝까지 남아 사장이 되겠다”며 ‘충성심’을 드러냈다. 호기로운
‘선언’을 내놓은 지 불과 1년. 조우종(40)도 사표를 던졌다. KBS라는 울타리, 평생 안온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도 있는 거대
방송사의 월급 통장을 버리고 정글의 세상으로 나왔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한 편도 없던 시간이 몇 주간 이어졌다. 그야말로 “백수”. 마음고생 탓인지 몸무게도 확 줄었다. 기대에 찬 포부를 늘어놓기 바쁜 여느 프리랜서 아나운서들과도 비교가 됐다.

그런
조우종과 함께 한 ‘여기자들의 수다’는 인터뷰라기보다 10년여쯤 엇비슷한 직업으로 살아온 이들의 공감대를 나누는 자리에
가까웠다. “3∼4년마다 한 번씩 슬럼프가 왔고, 그 때마다 사표를 고민했다”는 그의 말을 들을 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KBS사장 하겠다고 말한 것은
사명감 절반, 쇼맨십 절반
폭탄발언이었지만 나름 비장했는데…


-당신의 프리랜서 선언은 남의 일 같지 않다. 10년차 직장인의 고민이 엿보인다고 할까.

“하하! SNS나 문자메시지로 사표를 낸 경험을 묻는 사람이 많다. 자신도 사표를 낼지 고민한다는 회사원 팬들의 고민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 사연도 구구절절하다.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이래라 저래라 어떻게 말해. 다만, 결심을 했다면 그대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멀리 보면 결심한 대로 하는 게 후회가 덜하다.”


-왜 관뒀나.

“12년간 한 직장에 다니면 3년 혹은 4년 주기로 슬럼프가 온다. 그러고 보니 올림픽이랑 똑같네. 특히 오랫동안 진행한 프로그램이 종영하면 슬럼프가 더 크다. 하지만 관두고 싶다가도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니, 꿈을 접었다. 막상 관두려고 하니까 간이 콩알만 해지더라.”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 텐데.

“신중한 성격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걷는다고 하지만 나는 두드리고도 건너지 않는 성격이다. 사표를 결심하고도 1년이 더 걸렸다. 미련이 남아서다. 작년 연예대상 시상식 이후 경영진의 만류도 있었다. 리우올림픽은 꼭 맡아 달라고도 했고. 회사에서 나를 원하나? 내가 정말 필요한 인재인가? 고민을 오래 했다. 그러다 내 존재감에 대한 공허함을 느꼈고.”

방송인 조우종.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조우종은 매주 일요일 오전 KBS 2TV 퀴즈프로그램 ‘1대 100’ 녹화를 진행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올 때면 유난히 햇살이 눈부셨다. 그럴 때마다 회사를 뛰쳐나가고픈 마음이 동했다. 그래도 참았다. 자타공인 KBS ‘간판 아나운서’로 평가받고 있어서였다.

“책임감 같은 게 있었다. 작년 시상식에서 사장을 하겠다고 말한 것은 사명감 절반, 쇼맨십 절반이었다. 폭탄발언이었지. 그래도 내 나름 비장했다. 어떻게 수습할 거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지금 내 마음은 편하다.”

-이영표와 하는 축구 중계를 더는 못 보나.

“내가 필요하다면 다시 불러 달라고 말했다. 월드컵 중계나 지난 올림픽 골프 중계로 내 당위성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KBS 스포츠 중계팀과는 전우처럼 지냈다. 브라질만 두 번 갔으니까. 40일 넘도록 합숙하면서 정이 깊이 들었다. 사표 낼 때 마음에 걸린 사람은 이영표다. 내가 (관계를)깨는 건가 싶었다. 종종 영표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있다. 하하!”


-프리랜서 선언하면 3년간 KBS에 출연 못하는데.

“두 달 지났으니 2년 10개월 남았다. 건물 주차증과 사원증을 반납하라고 계속 연락이 온다. 왠지 모르게 반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꾸 생겨 아직 안 했다. 지금 회사(FNC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고 회사 출입을 위해 지문인식을 등록했다. 이제 주차증 반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퇴직금 정산은? 회사 생활 12년차이면 목돈일 텐데.

“받아서 빚 갚았다. 나도 내 집 마련이 절실한 세대다. 전세금 올려줘야 해서 재직 도중 중간정산을 한 번 받았다. 그런 지 얼마 안 된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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